[르포] 망가진 배터리 뜯어내 주행 시험… 전기차 '정비 신기술' 연구하는 이곳
전기차 정비 기술 국산화 목표… 29종 장비로 각종 시험
'전기차를 15년 타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전기차의 배터리가 망가지면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
최근 수많은 전기차가 시장에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전기차가 고장 났을때 우리는 그 어디에서도 30년, 50년 경력의 전문가를 찾을 수 없다. 오랜 기간 숙련된 내연기관차 전문 수리공들은 전기차가 낯설고, 전기차를 만드는 제조사 조차도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지 못하다.
이미 시작된 '전기차 시대'에서의 숙제는 이제 보급이 아니라 '수리'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발 빠른 내연기관 대체를 위해 충전 시설 등 다양한 인프라 구축이 이뤄지고 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과 직결된 유지·보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3일 찾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 이하 생기원) 제주본부는 이같은 전기차 정비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다. 생기원은 전국 8개 지역에 본부를 두고 있는데, 국내 전기차 보급률 1위인 제주 본부에 전기차진단센터를 두고 '전기차 정비'와 관련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한다. 전기차 유지 보수와 관련한 연구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봤다.
전기차진단센터로 진입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초록색 점이 잔뜩 박혀있는 커다란 모니터였다. 화면에는 제주 지역 지도 위에 초록색 점들이 도로를 따라 촘촘하게 박혀있는데, 이는 제주 지역에 운행 중인 전기차 택시 100대를 실시간으로 나타낸 데이터다.
이렇게 측정된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주행 시 생기는 성능과 문제점 등을 생기원의 정비기술과 연결하기 위한 표본의 역할을 한다. 승용차 대비 주행거리가 월등히 높은 택시를 통해 보다 방대한 양의 표본을 쌓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홍영선 생기원 제주본부 미래모빌리티 실증센터장은 "실제 주행 상황에서 생기는 문제점, 효율, 성능 등 데이터를 수집해 유지 보수 플랫폼을 통해 생기원이 개발한 진단 기술과 원인 분석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투입시킨다"고 말했다.
배터리 팩의 성능을 시험하는 장비도 구축돼있다. 흡사 대형 전자레인지처럼 생긴 이 장비는 실제 배터리를 내부에 넣고 온도와 습도를 제어하면서 성능을 시험해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 고장이 나는지, 배터리가 어느 수준까지 견디는지 등을 총체적으로 시험한 후 쌓인 데이터는 추후 유지보수 플랫폼에서 배터리 진단시 활용된다.
배터리 팩 성능 시험 장비 옆에는 코나 EV가 높이 들어올려져 있었는데, 이 곳에서는 배터리 노후화 시험을 위해 배터리 팩 교체 등 작업이 이뤄진다. 노후화된 배터리로 갈아 끼웠을때 기존보다 성능이 얼마나 떨어지는 지 등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 차량을 만드는 곳이다.
노후 배터리로 교체된 시험 차량은 외부와 연결된 주행 성능 평가 공간에서 시험이 이뤄진다. 시험실에 들어서자 아이오닉 5 한 대가 선풍기 같은 기계에 둘러싸인 채 생소한 철판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이 곳에서는 주행 재현을 통해 전비 측정, 동력 테스트 등 전기차의 성능을 총체적으로 평가한다. 외부 환경과 최대한 동일한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바퀴 주변에 바람을 발생시키고, 온도도 제어한다.
주행 재현 시험을 시작하자 아이오닉5의 바퀴가 빠르게 구르면서 차 주변에 바람을 발생시키는 기계가 시끄럽게 돌아갔다. 속도가 높아질수록 아이오닉5 앞에 설치된 큰 모니터 속 그래프가 빠르게 움직였는데, 이는 경사도나 속도에 따라 시험하고자하는 사이클 그래프가 값을 나타내는 것으로 시험 중 변화하는 값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우중 생기원 연구원은 "좌측으로 표시된 그래프는 시험하고자하는 사이클 그래프이며, 위쪽은 속도를 나타낸다"며 "주행 시험을 시작하게 되면 그래프가 지속적으로 바뀌고, 이 데이터를 라벨링해 연구를 수행할 때 사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생기원은 이 시험을 통해 향후 노후화된 전기차에서 어떤 고장이 발생할 지를 미리 예측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차에 고장난 부품을 장착해보기도 하고, 배터리를 갈아 끼우기도 하면서 다양한 속도와 상황 등을 마련해 전기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장 데이터를 쌓는 것이다.
제조사 역시 전기차 제조 후 성능 시험을 거치지만, 제조사가 제품 개발이 목적이라면 생기원은 향후 전기차 시대 정비 기술을 미리 대응하고 연구하겠다는 차원이다.
김 연구원은 "연구할 때 가장 좋은 부분은 고장이 발생해줘야 하는데, 시험 중 그런 사례가 나오기는 어려워 배터리 팩을 교체하기도 하고 EPCU를 교체하기도 하며 다양한 상황을 만들어보고 있다"며 "생기원은 애프터산업, 즉 전기차가 노후화되면서 어떤 고장이 발생하는지, 만약 고장이 발생하면 어떤 특성으로 데이터가 수집되는지 등을 분석하기 위해 이런 장비를 구축한다"고 설명했다.
전기차 진단 '신기술' 개발해 국산화… "빨리 파악해 빨리 정비할 수 있도록"
생기원 제주본부의 비전은 전기차 기술 '국산화'다. 각종 장비를 통해 전기차에서 생길 수 있는 고장 및 문제점을 파악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와 관련한 정비 '신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만큼 이곳에서 개발한 기술들은 공공데이터로서 국내 전기차 정비 기술 수준을 높이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생기원 제주본부는 특히 제주도 내 폐업하는 수많은 정비업체들에 기술을 지원하고, 제주를 '탄소제로섬'으로 구현하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목표다. 제주지역은 10년 전부터 전기차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전기차 보급으로 발생할 수 있는 충전, 정비 등의 문제를 보다 빨리 직시한 도시다.
홍 센터장은 "제주도 내 수요 조사를 해본 결과 2015년~2020년도에 걸쳐 1,2세대 전기차 사용자들은 운행비 절감, 충전 인프라 등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됐다고 느낀다"며 "하지만 정비는 여전히 어떻게 해야할지 정리가 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기차 노후화, 정비와 관련해 사전에 대응책을 찾고 진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는 전기차 유지와 보수가 빠른 시간안에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해내는 것이 목표다.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짧은 시간 안에 문제점을 파악해내고, 정비시간을 단축시켜 국내에 '안전한' 전기차 보급을 앞당기기 위해서다.
홍 센터장은 "배터리 신기술, 제품에 대한 신기술이 아니라 생기원 제주본부는 진단에 대한 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분석하고 연구한다"며 "현재까지 진행하면서 쌓인 데이터는 2TB(테라바이트) 정도로 분석하기에는 충분한 양을 확보했고, 이를 통해 유지보수 플랫폼을 구축해 어떤 상태의 전기차라도 고장을 판단하고 예측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송영길의 '깡통 휴대폰' 제출…오히려 구속사유 늘어난 것" [법조계에 물어보니 141]
- 홍준표 "30년 정치인생 두 번의 실수…탄핵 대선 출마와 당대표"
- 근무 중 50대 내연녀와 수시로 성관계, 허위수당까지 챙긴 경찰관
- ‘마구잡이 영입의 비참함’ 첼시 8200억 어디로? [머니볼]
- 안산국제거리극축제, 기상 상황으로 정상 진행 어려울 듯
- 여야의정 협의체 2차 회의 열었지만, 여전히 '평행선'
- 한동훈 "이재명 위증교사 재판, 통상적인 결과 나올 것"
- 거주자외화예금 51억 달러↓…원·달러 환율 상승 탓
- 극장가에 부는 팬덤 열풍, 이번엔 뮤지컬 스타다 [D:영화 뷰]
- ‘골반 통증’ 김도영, 천만다행 “호주전 출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