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사·육아 분담 안한 별거기간 연금 분할 청구 못해"
실질적인 혼인 기간 따져 산정해야
법률상 혼인관계가 유지된 기간이라도 배우자와 별거하면서 가사나 육아 등 부부로서의 역할을 전혀 분담하지 않은 기간에 대해서는 노령연금 분할 청구를 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판사 신명희)는 A씨가 국민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노령연금감액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했다.
1983년 10월 B씨와 결혼한 A씨는 2005년 10월 B씨와 협의 이혼했다.
1988년 1월 국민연금에 가입한 A씨는 이혼한지 1년 4개월 만인 2007년 2월 노령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해 연금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B씨는 이혼한 전 배우자에게 분할연금을 청구할 수 있는 60세가 된 뒤 2020년 12월 국민연금공단에 A씨의 국민연금 가입 기간 중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부분의 노령연금에 대한 분할연금 지급을 청구했다.
국민연금법 제64조(분할연금 수급권자 등)는 혼인 기간(배우자의 가입기간 중의 혼인 기간으로서 별거, 가출 등의 사유로 인하여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존재하지 아니하였던 기간을 제외한 기간을 말한다)이 5년 이상인 이혼한 배우자가 60세가 되면 배우자였던 노령연금 수급권자에게 균등한 비율로 나눈 연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법 부칙에 따라 1959년생인 B씨가 분할연금 수급권을 취득하는 것은 62세가 된 2021년 2월부터라고 보고 분할연금 지급결정을 한 뒤, A씨에게 'B씨에 대한 분할연금 지급으로 인해 노령연금액이 월 59만9950원에서 월 30만3170원으로 줄어든다'고 통지했다.
이에 A씨는 "1994년 4월부터 2005년 10월까지는 B씨와의 사이에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국민연금심사위원회에 심사청구를 했지만 기각됐고, 다시 국민연금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청구를 한 결과 B씨의 주민등록초본상 '거주불명'으로 등록된 2002년 8월부터 12월까지의 기간에 대해서만 수급권 제외 결정을 받았다.
결국 A씨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A씨와 B씨의 혼인 기간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A씨가 제출한 혼인관계증명서에는 두 사람의 혼인 기간이 1983년 10월 17일부터 2005년 10월 6일로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협의이혼 의사확인서에 첨부된 이혼신고서의 '실제 이혼 연월일' 란에는 '1994년 4월 20일부터 별거'라고 기재돼 있었고, 두 사람의 아들 2명은 '1994년 4월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이후부터 2005년 10월까지 11년 6개월 동안 아버지와 동거하거나 혼인관계를 유지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부는 일단 A씨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A씨의 국민연금 가입기간 206개월 중 B씨와의 혼인 기간이 5년 이상이고, A씨의 노령연금 수급권이 발생한 이후 B씨가 분할연금 수급연령에 도달한 점이 인정되는 만큼 B씨에게 분할연금 수급권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별거하기 시작한 1994년 4월 20일 이후의 기간은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기간이기 때문에 A씨가 처음 국민연금에 가입한 1988년 1월부터 1994년 4월 19일까지만 혼인기간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결국 재판부는 "피고(국민연금공단)가 원고(A씨)에 대해 한 분할연금지급에 따른 연금액 변경처분 중 원고와 B씨 사이의 혼인기간(1988년 1월 1일부터 1994년 4월 19일까지) 이외의 기간에 대한 연금액 변경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6년 12월 분할연금에 관해 정한 국민연금법 제64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법률혼 관계에 있었지만 별거나 가출 등으로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기간을 일률적으로 혼인 기간에 포함시켜 분할연금을 산정하도록 한 것은 입법형성권의 재량을 벗어났다는 판단이었다.
이혼 배우자에 대한 분할연금제도는 재산권적인 성격과 사회보장적 성격을 동시에 갖고 이 가운데 재산권적 성격은 노령연금 수급권도 혼인생활 중에 협력해 이룬 부부의 공동재산이므로 이혼 후에는 그 기여분에 해당하는 몫을 분할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인정되는 것이므로 부부공동생활 중에 역할분담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가사·육아 등을 분담했는지를 따져 실질적인 혼인 기간을 토대로 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이었다.
이후 해당 조항이 개정돼 혼인 기간을 산정할 때 별거, 가출 등의 사유로 인해 실질적인 혼인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기간을 제외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재판부는 이 같은 헌법재판소 결정과 법이 개정된 연혁을 언급하면서 "이 사건 대상기간(별거를 시작한 때부터 이혼한 때까지) 동안 원고와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달리하면서 가사·육아 등 원고와의 부부공동생활에서 아무런 역할을 분담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라며 "특히 두 아들은 '어머니가 1994년경 집을 나간 이후 형제들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한 사실이 없고 할머니가 형제들의 양육과 가사일을 도맡아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경우에까지 이 사건 대상기간이 혼인 기간에 해당함을 전제로 B씨에게 그에 대한 분할연금 수급권을 부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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