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英 찰스 3세 시대 마침내 개막
수세기 이어진 전통 속 일부 의식 변경
국·내외 초청 하객만 2300명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시대가 열렸다. 그는 6일(현지시간) 영국과 14개 영연방 왕국의 군주가 됐음을 전 세계에 공식적으로 알렸다.
영국에서 국왕의 대관식이 열린 것은 지난해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이후 70년 만으로 여왕 서거 후 찰스 3세 즉위 8개월 만이다.
찰스 3세는 카밀라 왕비와 이날 오전 10시 20분께 '다이아몬드 주빌리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했다. 2.1km의 해당 구간은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을 흔들며 '왕의 행렬'을 지켜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찰스 3세 왕세자 부부가 11시를 전후해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도착 후 영국 국교회 최고위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집전하는 대관식이 시작됐다.
'인정(Recognition)' 의식으로 캔터베리 대주교가 찰스 3세가 영국의 "의심할 여지 없는 왕"임을 선포했다. 대관식의 시작을 알리는 첫 순서다.
이날 대관식은 윌리엄 1세가 1066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시작한 이래 1000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을 따랐지만 일부 의식에서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다.
두 번째 순서인 '맹세(Oath)' 의식 가운데 켄터베리 대주교가 '섬기는 소명'을 주제로 집전한 예식에서 찰스 3세는 국왕으로서 정의와 자비를 실현할 것을 맹세하면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의 본보기로서 나는 섬김 받지 아니하고 섬긴다"고 말했다.
찰스 3세는 성경에 손을 얹은 채 "모든 종교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목은 70년 전 대관식 때는 없었다. 불교,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교, 시크교 등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대관식에 참석해 찰스 3세에게 비종교적인 대관식 물품을 전달한 것도 대관식 사상 처음이다.
또 영어와 함께 웨일스어, 스코틀랜드 게일어, 아일랜드어로 찬송가가 울려 퍼졌으며, 여성 사제가 처음으로 성경을 낭독하고 흑인 여성 상원 의원, 카리브해 출신 여성 남작이 대관식에서 역할을 맡았다.
찰스 3세는 서약을 하고 나서 1300년 에드워드 1세 지시로 제작된 대관식 의자에 앉아 웰비 대주교가 손, 가슴, 머리에 성유를 바르는 의식을 치렀다. 이 의식은 신과 왕의 사적인 순간으로 여겨져 장막으로 가려졌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수여한 2.23㎏ 무게의 '성 에드워드 왕관'을 썼다. 커밀라 왕비는 별도로 성유 의식을 마친 후 찰스 3세의 증조할머니인 메리 왕비가 1911년 대관식 때 썼던 왕관을 쓴다. 왕비 역시 왕관을 새로 제작하는 관행을 깼다.
이에 영국 왕실 일가를 포함해 국가원수급 인사 100여명 등 전 세계 203개 국가에서 온 하객들의 "신이여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라는 외침이 여러 차례 울려 퍼졌다. 이날 대관식에 초청받은 국내외 하객은 모두 2300여명에 달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 참석한 8000명보다 대폭 줄었다.
대관식은 찰스 3세 부부가 오후 1시께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나서며 종료됐다. 2분간 사원에서 종이 울려 퍼졌고, 그사이 런던탑을 비롯한 영국 전역 13개 지역과 해군 함정 등에서 21발의 예포가 발사됐다.
찰스 3세 부부는 2시간 동안 이어진 대관식이 끝나고 1760년 제작된 '황금 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돌아갔다. 마무리 행렬에는 250마리의 말과 영연방 군인 4000명이 함께했다. 국왕 부부는 오후 2시 30분께 발코니 밖으로 얼굴을 비추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왕실과 갈등을 빚다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난 해리 왕자도 대관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부인 메건 마클과 아들 아치, 딸 릴리벳은 아치의 생일이 대관식 날짜와 같다는 이유로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올해 1월 자서전 '스페어'를 출간하면서 아버지 찰스 3세와 형 윌리엄 왕세자와 사이가 더 틀어진 해리 왕자는 이날 대관식에서 윌리엄 왕세자보다 두 줄 뒤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해리 왕자는 찰스 3세 국왕 부부가 윌리엄 왕세자와 그의 아내 케이트 미들턴 왕세자빈을 비롯한 왕실 인사들과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인사할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편 이날 대관식에 수만명이 거리로 나와 큰 환호를 보냈지만 한쪽에선 '내 왕이 아니다'라는 구호도 나왔다. 군주제 폐지 시민단체 '리퍼블릭'은 "군주가 아닌 국민 대표가 국가 원수가 돼야 한다"며 대관식 시위 동참을 하기도 했으며 '리퍼블릭' 대표가 이른 아침 트래펄가 광장 주변에서 체포됐다. 런던 경찰당국은 이날 런던에 경찰인력 1만1000여명을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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