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이 못 지킨 그 공약…'구중궁궐' 청와대 나왔다 [尹, 새로운 국민의 나라 ⑦]
제왕적 대통령·권위주의 탈피하겠다는 의도
경호·비용 문제에 부딪히며 번번히 무산돼
尹, 용산공원도 개방하며 '용산 시대' 완성
"청와대는 임기 시작인 5월 10일에 개방하여 국민들께 돌려드리겠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2022년 3월 20일 기자회견에서)
과거 경복궁 후원, 일제 총독부 관저 등으로 쓰였던 청와대는 북악산 자락,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공간에 위치해있다. 청와대 건물들의 비효율적 배치로 민(民)의 소리는커녕 비서들과의 소통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비서들이 근무하는 여민관 사이의 거리가 상당해 대면보고를 위해서는 자전거를 타거나 차량을 이용해야만 했다. 그래서 청와대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권위주의 상징, '구중궁궐(九重宮闕)'로 비유됐다.
'집무실 이전' 공약이 대통령선거 단골 소재로 자리 잡은 건 이 때문이다. 집무실 이전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 형태를 벗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면 통치의 방식이 달라지고 정치가 바뀐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었다. 김영삼·김대중·이명박 대통령은 광화문 청사로의 집무실 이전을 공약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세종시로의 이전을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당시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고 하면서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를 발족했다. 하지만 경호와 비용 문제 등 현실적 어려움을 이유로 역대 대통령의 '탈(脫)청와대' 공약은 번번히 무산됐다.
이를 실행에 옮긴 건 윤석열 대통령이 유일하다. 역대 대통령들이 집무실 이전 좌절을 겪은 뒤 제한적이나마 청와대 개방을 추진한 것과 달리,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식 당일 청와대를 완전 개방했다. 집무실은 용산으로 이전했다. 윤 대통령도 당초 '광화문 시대'를 염두에 뒀으나, 경호와 보안 취약점이 지적되면서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방안을 정치권과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철해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3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역대 정부에서도 현재 청와대 공간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전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며 "그러나 경호상의 문제 등으로 번번이 좌절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기 시작이 50일 남은 시점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너무 서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알고 있다"며 "그러나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렵다고 또 다시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다면 이제 다음 대통령은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할 것"이라며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내린 결단이다.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기 위한 각오와 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헤아려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용산을 이전지로 택한 배경에 대해서는 "용산 국방부와 합참 구역은 국가 안보 지휘 시설 등이 구비되어 있어 청와대를 시민들께 완벽하게 돌려드릴 수 있고, 경호 조치에 수반되는 시민들의 불편도 거의 없다"며 "용산 지역은 이미 군사시설 보호를 전제로 개발이 진행되어 왔으며 청와대가 이전하더라도 추가적인 규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 속으로' 들어간다는 탈(脫)권위와 소통의 상징을 내려놓지 않으면서, 사용의 편리성까지 갖췄다는 것이다.
이렇게 '용산 시대'는 개막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시행한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은 '용산 시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비록 도어스테핑은 각종 설화로 지난해 11월 중단됐지만, 대통령 집무실 이전부터 파격적 소통 방식을 택하기까지 제왕적 대통령제 및 권위주의를 벗어나려는 윤 대통령의 노력으로 평가됐다.
'용산 시대'는 용산 미군기지 반환부지가 '용산어린이정원'으로 재탄생하면서 완성됐다는 평가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용산 미군기지 중 대통령실 청사 앞 30만㎡(9만평) 부지에 조성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실 이전 발표 당시 공원 조성 계획도 함께 밝히면서 "과거 서울에 없었던 50만평의 공원을 시민에게 돌려드리는 거다. 이렇게 공원을 조성하면 잔디밭에서 결혼식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는 120년 동안 일반인의 접근이 불가능했던 '금단의 땅'을 국민 품으로 돌려줬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대통령실은 "외국군 주둔의 역사를 끝내고 미래로 나아가는 주권회복의 상징적 장소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개방행사 축사에서 "우리나라에는 미래 꿈나무인 어린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넓은 잔디밭 하나 제대로 없다"며 "그래서 이곳 넓은 잔디밭과 주변 시설을 어린이를 위한 공원으로 조성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집무실 이전으로 인한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게 '비용' 문제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밝힌 집무실 이전 비용은 496억원이었지만 국방부 청사 주변 정비와 관저 공사, 합동참모본부 이전 비용 등 집무실의 용산 이전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이 1조원 이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대통령실은 "산출 근거가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며 집무실 직접 이전 비용은 윤 대통령이 당초 밝힌 496억원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하지만 합참이 최근 청사 수도방위사령부 부지로 옮기는 데 2393억원 가량이 필요하다는 선행 연구 결과를 국방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야권에서는 집무실을 이전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이라며 공세하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의 대통령실 도·감청 의혹도 제기됐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은 지난달 8일(현지시각) 미국 국방부의 기밀 문서가 SNS에 대량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주요 동맹국들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관련 내용도 담겼고, 대통령실의 '기밀 대화'도 포함돼 논란이 됐다.
대통령실은 우리 정부 측의 교감을 통해 유출된 정보 대부분이 위조됐다는 점을 확인했으며, 양국 간의 굳건한 신뢰 관계를 재확인했다고 해명했으나, 야권에서는 "졸속 이전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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