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내릴 건 다 내렸다"...대출 금리, 인하 멈추고 '관망세'
40대 회사원 박모씨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대출금리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한 시중은행에서 전세대출 3억원을 받았는데 당시 3.7%였던 금리가 1년새 5.5%로 1.8%포인트나 올랐다. 매월 나가는 이자만 138만원으로 1년 전(93만원)보다 45만원이 불었다.
박씨는 “올해 2월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 대출금리가 조금은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지난해 11월 5%대를 찍더니 계속 오르기만 한다”며 “전셋값은 1년새 30%가 빠졌는데 대출 이자는 더 늘어나니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기에는 대출 금리를 빠르게 올리던 은행들이 금리 인하기에는 더디게 내린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과 4월 연속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지만 대출을 받은 금융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은 크게 줄지 않고 있어서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한달새 시중은행 전세대출금리는 오히려 높아졌다. 5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농협)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전세대출금리(2년 고정)는 3.49~5.93%로 한달 전(3.46~5.92%)보다 소폭 상승했다.
주택담보대출 혼합(5년 고정 후 변동)금리는 4.09~5.87%다. 한달 전(4.18~6.22%)에 비해 상단은 5%대로 내려왔지만, 하단이 여전히 4%대다. 주담대 변동금리는 3.70~5.88%로 한달 전(3.69~5.94%)과 비슷했다. 신용대출 금리(금융채 6개월물)는 4.61~6.11%로 한달 전(5.09~6.15%)과 비교하면 하단이 4%대로 내려왔지만 상단은 6%대를 유지하고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자금조달 비용이 여전히 높다는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은행 주택담보·전세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자금조달비용지수(코픽스ㆍCOFIX)는 지난 3월 신규 취급액 기준 3.56%로 전월보다 0.03%포인트 상승했다. 코픽스는 지난해 11월(4.34%)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전세·신용대출의 준거금리인 은행채 6개월물 금리도 지난 3일 3.574%로 한달 전(3.539%)보다 소폭 올랐다. 은행이 대출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조달한 자금 ‘원가’가 늘어나니 대출 금리도 떨어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올해 초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 압박, 사회공헌 확대 요구에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선제적으로 낮춘 영향도 있다. 대출금리는 코픽스와 같은 준거금리에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산정하는 가산금리를 더하고 우대금리를 빼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한은의 기준금리 연속 동결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를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대출금리를 내린 만큼 당분간은 추가 인하 없이 ‘관망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로선 내릴 건 다 내렸다고 봐야 한다”며 “Fed나 한은이 더이상의 추가 인상을 하지 않는 게 확실해져서 자금시장이 더 안정화된다면 조달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에 대출금리도 더 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대출금리 조정 속도에 대한 관리ㆍ점검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4일 '은행권 경영ㆍ영업 관행ㆍ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은행 금리산정에 대한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금리산정이 합리적이고 일관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적극 공개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 공동으로 은행별 대출금리 조정ㆍ변동의 일관성과 합리성 점검 결과를 비교ㆍ분석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아울러 금리 인상ㆍ인하기에 은행이 취급하는 대출의 기준금리와 가산금리, 우대금리를 시계열로 비교ㆍ분석할 수 있도록 공시 항목을 세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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