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포위망’에 갇힌 中, ‘스파이 색출’ 맞불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반간첩법개정안 7월 시행…영업활동·정보수집 위험할 수도
日 제약사 고위 임원 구속·대만 야당 부주석 1년 만에·기소
해외 경영컨설팅업체·회계법인 사무소 압수수색·조사 실시
중국이 국가안보를 빌미로 ‘스파이 색출’에 총력전을 펴는 모양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3연임 이후 통제를 강화해온 중국 당국이 ‘반(反)간첩법’을 확대 개정해 적용 범위를 크게 확장해 일본인 등을 스파이 혐의로 구속한데 이어 외국 기관·기업들의 중국경제 정보접근마저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금융시장 정보업체인 완더(萬得)정보기술(·Wind)은 국제 연구기관·외국계 정보업체와 재계약을 거부한데 이어 일부 자료에 대해 해외 사용자의 접근을 차단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3일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소식통들은 완더가 기업의 지분구조·최종 통제권자 같은 기업등록 내용, 특정 도시의 토지거래 같은 거시경제 자료 등에 대한 해외 사용자의 접근을 막았으며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온 주택판매 같은 일부 자료에는 지난해 9월부터 중국 밖 지역 사용자의 접근이 차단됐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완더가 '법규 준수'를 이유로 계약이 만료된 국제 연구기관·외국계 정보업체와 재계약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WSJ는 “시 주석이 국가안보를 강조한 것이 반간첩법을 적용하는 추세와 관련이 있다”며 "시 주석이 '발전과 안보를 더 잘 조화시켜야 한다'고 한 발언을 ‘외국인 투자유치보다 위협을 막는 일이 우선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중국 기업들에 제재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맞불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완더는 그동안 기업등록과 특허출원, 조달시장을 비롯한 학술저널, 중국통계연감 등의 각종 중국경제 정보를 국내외 분석가와 투자자에게 제공해왔다. 완더가 제공한 데이터베이스(DB)에 기반해 중국 시장에 투자해온 외국 투자가와 기업들은 사업차질이 불가피해진 것은 물론 외국 연구소들의 중국경제 연구도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경영컨설팅 업체, 회계법인 등에 대해서도 압수수색과 조사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주로 다국적 기업이 중국에 대한 투자위험도를 평가할 때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곳이다. 중국 공안(경찰)당국이 지난달 미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Bain&Company)의 상하이(上海)사무소를 ‘급습’해 직원들을 조사하고 컴퓨터와 전화기 등을 압수해 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공안의 방문 목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미 기업신용조사업체 민츠그룹(Mintz Group) 베이징(北京)사무소를 압수수색하고 중국국적 직원 5명을 연행했다. 뉴욕과 상하이에 기반을 둔 연구서비스 업체인 캡비전(Capvision) 상하이사무소도 지난 몇 달간 중국 공안의 집중 적인 조사를 받았다.
이런 판국에 중국 국회격인 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상무위원회가 2차회의를 열고 ‘반간첩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의 핵심은 간첩행위의 범위를 대폭 넓혔다는 점이다. 간첩행위의 정의에 “간첩조직과 대리인에게 빌붙는 행위”를 포함했다. 비밀정보를 넘기는 구체적인 행위가 적발되지 않아도 교류가 있는 기관이나 인사가 ‘간첩’ 또는 ‘간첩 대리인’으로 적시될 경우 처벌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여기에다 빼돌리면 처벌받는 기밀의 범위에 ‘기타 국가안보와 이익과 관련된 문건, 데이터, 자료, 물품’까지 넣었다. 법적으로 ‘비밀’로 분류되지 않은 자료라고 하더라도 유출할 경우 처벌대상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이 아닌 제3국을 겨냥한 간첩행위도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개정안은 간첩행위 단속을 위한 행정당국의 법집행 관련 직권을 확대해 ▲데이터 열람, ▲재산정보 조회, ▲출입국 금지 등도 가능하도록 했다. 아울러 국가기관과 비밀을 다루는 기관, 중요한 정보 인프라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네트워크 공격행위도 간첩행위로 명시했다. 왕아이리(王愛立) 전국인대 상무위 형법실 주임은 “현행법의 간첩행위 범위가 좁고 안보·방범제도가 미비해 행정집행 권한이 부족한 점 등에 초점을 맞춰 관련 법규를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간첩활동에 대한 엄중한 단속도 지시했다. 천이신(陳一新) 국가안전부(국가정보원에 해당) 부장은 지난달 24일 베이징 국가안전국 시찰에서 "베이징은 침투, 전복, 사보타주(고의 파괴공작), 적대세력의 분리주의 활동, 간첩활동을 단속하는 주요 전장“이며 ”베이징 국가안전국의 업무는 막중한 책임과 고된 임무가 따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베이징 국가안전국이 핵심기밀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천 부장의 지시는 군사와 외교, 경제 등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는 미·중 패권경쟁 심화, 대만해협 긴장상황 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비밀스러운 국가안전부의 시찰활동은 과거에는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며 "천 부장의 현장시찰은 중국이 극심한 지정학적 긴장에 직면해 방첩 노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이뤄졌다"고 전했다.
특히 반간첩법에 저촉될 수 있는 행위가 광범위하고 중국 정부가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처벌될 여지가 있는 탓에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중국 관영지 고위 간부가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1년 만에 기소됐다. 공산당중앙 선전부가 발행하는 광명일보(光明日報)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온 둥위위(董郁玉) 평론부 부주임이 지난해 2월 일본 외교관과 베이징 중심가 둥청(東城)구의 신차오노보텔호텔(新僑諾富特飯店)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 함께 체포돼 기소됐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검찰원은 지난해 8월 3일 체포한 대만인 양즈위안((楊智淵)을 국가분열 혐의로 지난달 기소했다. 그는 2019년 대만 민족당 부주석을 맡았고, 2020년에는 급진 대만 독립파인 '일변일국행동당'에 입당해 지방의원 선거에도 출마한 바 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날이다. 대만 자유시보(自由時報)는 "양즈위안이 지난해 1월 9일 대만에서 중국 푸젠(福建)성 샤먼(厦門)으로 입국했으며, 양즈위안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던 중국 당국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맞춰 그를 체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만 대륙위원회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이 정상적인 교류 재개를 고대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대만인들을 무작위로 체포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일 뿐 아니라 대만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반간첩법이 강화되면 외국 기업이나 직원들도 영향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한국에서는 합법적인 영업활동이나 정보수집이라 해도 중국 방첩당국이 국가안보나 국가이익에 관련됐다고 판단하면 적발될 수 있다. 더욱이 자의적 운용을 막을 명확한 근거가 없는 만큼 최근 일본인 구속 사태와 같은 일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3월 베이징에서 일본의 제약업체 아스텔라스제약의 중국법인에서 근무하던 50대 일본인 고위 임원이 반간첩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면서 일본 기업의 중국 주재원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에 따르면 아스텔라스제약 고위 임원은 회사의 홍콩 및 베이징 사무소에 장기간 주재했고, 베이징 소재 일본기업 단체인 ‘중국 일본상회’의 부회장도 지내 현지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두 번째 베이징 근무를 마치고 지난달 귀국하기 직전 반간첩 혐의로 구속되는 바람에 현지 주재원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이에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장관은 지난달 친강(陳剛)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반간첩 혐의로 중국에 억류된 일본 제약회사 직원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나 친 부장은 “법대로 하겠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위드 코로나’에 따른 입국격리가 사라지면서 중국 출장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반간첩죄에 대한 주의가 요구된다. 로이터에 따르면 중국 주재 외국 기업들은 "국가안보를 해치거나 국가이익에 중대한 피해를 초래하는 경우 출국금지를 가할 수 있다"고 한 반간첩법의 모호한 문구와 강화된 감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고로기 이치로 칸다외국어대 교수는 “일본 기업은 온라인 회의를 활용해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줄이거나 일본 직원이 (중국에) 상주하지 않고도 사업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등 직원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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