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가리비의 눈은 최대 200개, 이게 말해주는 것

김현진 2023. 5. 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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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작가 에드 용의 <이토록 굉장한 세계> 를 읽고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편집자말>

[김현진 기자]

한동안 챗GPT의 등장으로 떠들썩했다. 챗GPT는 대화형 인공 지능 서비스로 채팅을 하듯 원하는 내용(질문)을 입력하면 이에 대한 답변을 제공한다. 이 답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상황과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할수록 원하는 답을 얻을 확률은 높아진다. 질문이 정교할수록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인공 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고들 한다. 그때 인간에게 절실한 능력은 '좋은 질문하기'일 거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질문은 생각의 방향을 결정하고 사고의 틀을 한정할 수 있다. 질문이 답 혹은 결과의 성패와 직결되기도 한다. 올바른 질문을 찾아 고민하며 낯선 지식을 발굴해낸 책을 만났다. 

AI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알 리 없는 '이토록 굉장한 세계'

에드 용은 블로그를 통해 자연계의 경이로움을 알리는 연구 결과와 과학적 발견을 발 빠르게 소개해왔다. 2016년 미생물 세계를 탐사한 첫 책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고, 주목할 만한 과학 작가로 떠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로 알려진 그는 신작 <이토록 굉장한 세계>(양병찬 옮김, 어크로스)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동물의 감각을 다룬다.
 
▲ 책 <이토록 굉장한 세계> 에드 용은 이 책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동물의 감각을 다룬다.
ⓒ 어크로스
 
지구는 광경과 질감, 소리와 진동, 냄새와 맛,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모든 동물은 현실의 충만함의 극히 일부만을 향유할 수 있다. 각각은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 거품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광대무변한 세계의 미미한 조각에 불과하다. - 19쪽

저자는 인간이 감각할 수 없는 환경세계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를 소개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평범한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없던 냄새와 빛, 진동과 소리, 전기장을 간접 체험하면서 나를 둘러싼 세계의 장막이 한꺼풀 벗겨지는 것 같았다.

깡충거미는 네 쌍의 눈을 가지고 있다. 한 쌍의 보조 눈이 움직임을 탐지하고 또 다른 한 쌍의 중앙 눈이 그것을 선명하게 바라본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물체를 바라보는 거미의 시각은 같은 공간에서 동일한 시각적 현실을 체험하더라도 우리의 시각 경험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가장 놀라운 건 가리비의 눈이다. 부채 모양의 껍데기 각각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수십 개에서 최대 200개까지의 눈이 배열되어 있다. 하지만 입력된 시각 정보를 처리할 정도로 뇌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 개별 눈이 무언가를 탐지하더라도 해당 물체에 대한 시각적 이미지를 생성하지 못한다. 무언가가 있다는 건 알지만 볼 수 없는 가리비의 시각은 촉각에 더 가까워 보인다고 에드 용은 말한다.

깊은 바닷속 가만히 앉아 100개의 눈으로 풍경을 보는 가리비를 떠올려 보라. 각각의 눈이 그 앞을 지나가는 작은 물체들을 탐지할 테다. 비록 그러한 움직임이 시각적 이미지로 현란하게 그려지지 못할지라도 100개의 눈으로 매 순간 바닷속을 더듬으며 촉각 장면을 만들고 있을 가리비를 상상하노라면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인다. 

어둠 속에서 색을 구분하는 나방이나 코에 붙은 별 모양 돌기에 느껴지는 촉각으로 먹이를 찾는 별코두더지, 어떤 시각수용체보다도 100배 더 민감한 털로 공기의 흐름을 감각하는 거미와 귀뚜라미, 소리(청각)로 먹이를 찾는 올빼미나 반향정위(메아리)로 길을 찾는 박쥐까지. 인간이 제약을 받는 환경에서 남다른 민감성과 예민함으로 세상을 감각하는 동물들이 있음을 이 책은 알려준다.

인간은 이러한 생물과 지구라는 환경을 공유하지만 각자가 경험하는 환경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에드 용의 책에 따르면 각각의 생명체는 자신이 감각하는 방식으로 환경을 짓는다. 모든 생명체는 지구라는 동일한 행성에 살고 있지만 각자 고유한 감각의 집(환경세계)에서 사는 셈이다. 그 중 인간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집도 많다는 사실을 <이토록 굉장한 세계>를 통해 배웠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문자로 접한 내용이지만 생소한 감각을 사용하는 동물의 생활을 엿보는 건 잘 만든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것만큼 흥미진진했다. 애정하는 <나의 문어 선생님> 같은 다큐멘터리를 열 편쯤 본 것 같달까.

시각 중심의 인간인지라 다른 감각을 사용하는 동물의 느낌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저자의 생생한 문장 덕분에 낯선 세계를 탐험하고 돌아온 기분이다. 그리고 겸손해진다. 감각할 수 없는 더 크고 넓은 세계가 있다는 발견은 나라는 사람을 한없이 작아지게 만든다.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다른 동물에게는 자연스러운 감각이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제한적이어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33쪽

에드 용이 다른 동물의 색다른 감각에 시선을 돌리고 신선한 발견에 다가갈 수 있었던 데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려 했던 노력이 작용했다. 그는 인간 중심의 사고가 아닌 다른 동물의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았다. 해당 감각을 필요로 하는 동물의 (감각 기관의) 구조나 상태, 주변 환경에 집중하면서.
이런 노력은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로 이어졌다. 매번 질문의 방향을 조금 더 바꿔 보려는 저자의 태도가 그의 빼어난 문장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우리는 "동물의 후각이 얼마나 우수한가?"라는 질문을 중단해야 한다. 그보다 나은 질문은 "특정 동물에서 냄새가 얼마나 중요할까?"와 "해당 동물이 후각을 어디에 사용할까?"일 것이다. - 53쪽

책을 읽고 얻은 또 하나의 배움은 좋은 질문의 필요성이다. 답으로 향하는 길은 여럿이고, 어떤 길로 가느냐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답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치밀하게 고민한 질문이 탁월한 답을 향해 나아간다.  

에드 용(과 책에 인용된 과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의 질문과 색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의미 있는 답을 찾는 길이 심사숙고한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걸 보여준다. 과학 연구에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발굴하듯 이 책에서는 올바른 질문이 훌륭한 가설 역할을 한다.

책의 결말은 인간 중심의 생각과 행동이 다른 감각을 사용하는 동물의 세계를 얼마나 훼손하고 있는지에 다다른다. 우리가 만든 빛과 소음이 어떤 동물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으며 그 결과 우리의 환경 또한 제한된다고.

하지만 저자는 비관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고 그는 말한다.   
 
다른 환경세계를 탐험하는 능력은 우리의 가장 위대한 감각 기술이다. (…) 인간-리베카-은 자외선 시각, 자기수용, 반향정위, 적외선 감각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동물들이 무엇을 감지하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었고, 아마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 것이다. - 531쪽

인간에게는 다른 환경세계를 탐험하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우리와 다른 대상에게 공감하고 감응할 수 있다. 이 놀라운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떠오른 질문을 정교하게 다듬어가다 보면 직면한 문제에 대한 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많은 문제의 해결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 데서 시작된다. 어떤 감각에 대해 존재조차 몰랐던 나와 같은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당신에게도 미래를 향한 근사한 질문이 남겨지길 바라면서.

《 group 》 시민기자 북클럽 : https://omn.kr/group/bookclub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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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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