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감독교체 칼바람 뒤에 남은 숙제

이준목 2023. 5. 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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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선임에서 지원까지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 필요

[이준목 기자]

 수원의 이병근 전 감독
ⓒ 연합뉴스
 
프로스포츠에서 감독은 성적부진에 항상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다. 하지만 감독에게만 책임을 묻거나 감독 하나 바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K리그1에는 최근 감독교체의 칼바람이 잇달아 불었다. 강등권까지 추락한 수원 삼성은 이병근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당했다. 전북 현대도 김상식 감독이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필 편지를 남기며 자진 사임했다.

하지만 감독교체 효과는 빠르게 나타나지 않았다. 수원은 이 감독 퇴진 이후 최성용 감독대행 체제에서도 슈퍼매치(FC서울전) 포함 3연패를 당하며 대행 체제의 한계를 드러냈다. 다급해진 구단은 새 감독을 물색한 끝에 지난 4일 제8대 감독으로 김병수 감독의 선임을 발표했다. 수원은 김병수 감독의 선임이 확정된 후 최성용 대행의 마지막 경기였던 11라운드 인천전에서 1-0으로 승리하며 마침내 개막 이후 리그에서 처음으로 1승을 따낼 수 있었다.

전북은 김상식 감독이 물러난 이후 김두현 코치가 대행을 맡았다. 김 대행은 이미 김상식 감독이 퇴장으로 자리를 비운 기간에도 팀을 지휘했던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전북은 지난 5일 FC서울과의 11라운드에서도 1-1로 비기며 분위기 반전에는 실패했다. 김상식 감독 체제에서 지적되었던 답답한 경기력은 여전히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여전히 스쿼드 수준은 K리그 최정상급으로 꼽히는 전북이 과연 어떤 후임 감독을 모셔올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현재 전북은 3승 2무 6패 승점 11로 10위, 수원은 1승 2무 8패 승점 5로 최하위인 12위다. 리그를 호령하던 두 명문구단이 나란히 강등권에 놓인 것은 K리그팬들에게도 낯선 풍경이다.

감독들은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구단은 남아 있고 축구는 계속되어야한다. 그렇다면 실패를 통해서도 교훈을 얻는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수원의 몰락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수원은 K리그에서 4회(1998, 1999, 2004, 2008년)나 우승을 차지한 강호였지만, 2008년 우승을 마지막으로는 14년째 리그에서 무관이다. 삼성스포츠단 운영주체가 제일기획으로 넘어간 지 세 시즌 만인 2016년 창단 뒤 처음 파이널B 무대로 추락했고, 최근 5년간은 6-8-8-6-10위에 그쳤다. 지난해는 구단 역사상 첫 승강 플레이오프(PO)까지 떨어졌다가 간신히 기사회생했지만, 올해는 아예 다이렉트 강등을 걱정해야 할 처지까지 내몰렸다.

이 기간 수원의 특징으로 제일기획 이관 이후 합리적인 경영을 표방하며 투자가 크게줄었다는 것과, 구단에서 선수로 뛴 경험이 있는 자팀 레전드들을 감독으로 영입하는 순혈주의(리얼 블루) 정책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결과적으로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다. 수원은 스타 선수들의 유출을 막지 못하며 전력이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때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넘쳐났지만 수원이지만, 현재 주전급중에서 K리그1의 다른 빅클럽에 가도 주전이 보장된다고 장담할 수 있는 선수는 거의 없다. 지난 시즌 수원의 유일한 국가대표이자 1부리그 잔류를 이끌었던 오현규(셀틱)의 유럽 이적 이후 그의 빈 자리를 메울 만한 선수를 데려오지 못한 것도 현재 수원의 한계를 보여준다.

또한 수원은 서정원 감독이 물러난 2018년 이후 수원은 5년간 3명의 정식 감독(이임생, 박건하, 이병근)과 3명의 대행체제(이병근, 주승진, 최성용)를 거치며 '감독들의 무덤'으로 전락했다. 사실상 2대 차범근 감독을 끝으로 2010년대 이후로는 수원 지휘봉을 잡고나서 아름답게 물러난 감독은 사실상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얼블루 정책 이후 리그 우승계보가 끊긴 것은 물론, 심지어 이임생(591일)→박건하(587일)→ 이병근(364일) 감독은 잇달아 구단 역대 최단명 사령탑 기록을 갈아치우는 불명예의 주인공이 됐다.

김병수 감독은 2대 차범근 감독 이후 13년만에 처음으로 수원과 연결고리가 없는 외부인사 출신 감독이다. 그는 강원FC 시절 특유의 포지셔닝 축구로 '병수볼'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전술가이기도 하다. 경험과 성과가 어느 정도 검증된 지도자를 데려왔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한편으로 시즌 중반에 부임하여 별다른 전력보강이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반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 이상 감독만 방패막이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수원 구단의 투자와 운영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북의 혼란과 김상식 감독의 사퇴는, 수원의 상황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이례적이었다. 김상식 감독은 프로스포츠 사상 손꼽힐 정도로 '성공한 감독이 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조건'을 갖춘 인물이었다.

전북은 최강희-모라이스 감독 체제를 거치며 리그를 호령하는 '왕조'였고, 김상식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코치-감독까지 전북이 이뤄낸 영광의 역사를 모두 함께한 '레전드 중에서도 성골'이었다. 개인과 팀의 스펙, 팬들의 지지, 충분한 지도자 수업 기간 등 뭐 하나 모자랄 게 없었다. 김상식 감독과 비견될만한 인물은 프로야구에서 2010년대 초중반 삼성 왕조를 이끌었던 류중일 전 감독 정도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감독 김상식'이 보여준 성과는 선수나 코치 시절과는 정반대였다. 물론 부임 이후 리그와 FA컵 우승 각 1회, 리그 준우승 1회등 올시즌 이전까지 표면적인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김상식 감독 부임 이후 전북은 점차 예전의 공격적인 축구철학과 개성을 잃어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무리한 세대교체와 팀 레전드들에 대한 홀대 논란이 이어지며 민심을 잃었다.

특히 김상식 감독은 '프로스포츠에서 팬들을 결코 적으로 돌려서는 안된다'는 가장 뼈아픈 반면교사를 남겼다. 그동안 성적부진이나 팀운영을 놓고 팬들의 비난을 받았던 지도자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김상식 감독은  팬들과의 관계가 가히 역대급으로 최악이었다. 말기에는 전북 팬들이 홈에서 응원을 보이콧하고 대놓고 감독 퇴출을 요구할 만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물론 일부  전북팬들의 도를 넘은 행태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김상식 감독 역시 팬들과의 갈등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었다. 가장 든든할 아군이 되어야할 팬을 적으로 돌린 가는, 김상식 감독의 퇴진을 더 빨리 앞당기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레전드로 남을수 있었던 김 감독은 전북과 15년간의 화려한 동행을 가장 씁쓸한 모양새로 마무리하게 됐다.

한편으로 수원과 전북의 감독교체를 둘러싼 혼란은 각각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교훈을 남긴다. 구단이 사령탑을 바라보고 선임하는 기준과 방향성부터 정확하게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전북-수원 외에도 FC서울이나 인천 유나이티드 등 K리그에서 매년 감독을 자주 교체하는 혼란을 겪었던 팀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때로는 감독 개인의 역량에 따라 팀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그 감독을 선임하고 경질하는 것은 모두 구단에 달렸다. 그 구단이 지향하는 바와 목표에 부합할 만한 역량을 감독이 갖췄는지, 감독을 지원할 수 있는 장기적인 계획과 체계가 갖춰졌는지에 따라 역사는 바뀔 수 있다.

그동안 구단 대신 '욕받이' 역할을 도맡았던 감독들은 이제 물러났다. 하지만 흔들리고 있는 팀에 새 감독이 등장했다고 갑자기 성적이 급반전될 것이라는 기대는 무리한 환상에 가깝다. 전북과 수원 정도면 1부리그 잔류정도가 목표가 아닌 더 큰 야망을 품고 K리그를 이끌어야할 구단들이다. 앞으로는 소모품처럼 '국면전환용'으로 지도자만 희생시키는 관행에서 벗어나 감독 선임에서 지원까지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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