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 "CBAM 대응해야 하는데"···환경부 '탄소배출DB' 구축의 걸림돌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개정안 상정
CBAM·ISSB 대응 위해선 LCI DB 구축 필요
공정별 데이터 유출 우려 있어 산업계 신중론
정부가 제품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파악하기 위해 기업에 관련 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면서 산업계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각국에서 온실가스 관련 무역 규제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공시 강화의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는 만큼 정부 차원에서 탄소 배출 정보를 모아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산업계는 기업의 영업비밀 침해 가능성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6일 정부에 따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 2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환경부가 환경성평가목록 데이터베이스(LCI DB)를 구축하기 위해 제품 생산 기업이나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마련한 것이 골자입니다. 이 개정안은 지난달 25일 환노위에 상정됐습니다.
이 법안을 이해하려면 우선 ‘LCI DB’가 무엇인지 짚어야 합니다. LCI DB는 전과정평가(LCA)를 위해 필요한 데이터베이스입니다. LCA는 제품 관련 원료 채취부터 수송, 생산, 폐기 등 사용 ‘전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책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개정안이 발의된 이유는 LCA가 탄소 배출량을 책정하는 주요 방법론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제품이 생산될 때부터 버려질 때까지 발생한 탄소를 모조리 책정함으로써(LCA 방법론) 이를 기반으로 자동차, 2차전지, 철강 등의 탄소배출량을 규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전문가들은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운용할 때도 LCA 방법론을 기반으로 탄소량 추정치를 계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합니다. CBAM은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의 품목에 일종의 ‘탄소세’를 매기도록 한 제도를 말합니다. 물론 이 세금은 2026년부터 매겨질 예정이지만, 당장 오는 10월부터 EU에 철강 등의 제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은 제품별 탄소 배출량을 보고해야 합니다.
따라서 LCA의 기반이 되는 ‘LCI DB’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입니다. 특히 환경부는 이번 개정안의 통과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1999년부터 LCI DB를 운영해왔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자료 제출을 꺼려왔습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LCI DB 국제 공유 플랫폼에 등록한 DB는 17건(2022년 기준)으로 일본(3892건), 독일(3541건), 중국(2542건)에 비해 턱없이 적습니다. 현행 LCI DB로는 CBAM 같은 해외 통상 규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탄소배출량 산정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선 LCI DB가 없으면 외국의 온실가스 관련 무역 규제에 대응하기 더 어려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국제회계기준(IFRS)재단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에서 올 6월 발표하는 국제 ESG 공시 기준 최종안 대응 측면에서도 탄소 배출 DB 구축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입니다. 개정안에서 LCI DB 구축을 위해 환경부가 제품 생산 기업이나 관련 연구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재계는 ‘정부의 자료 제출 요구권’이 기업의 영업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LCI DB를 구축할 때 정부가 요청하는 자료의 ‘성질’ 때문입니다. LCI DB엔 공정 관련 데이터가 들어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어떤 원료를 썼는지, 배합비율은 어떻게 되는지 등 민감한 정보를 정부에 제공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산업계에서 나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최근 환경부에 “자료 제출 요구권을 규정하는 것이 기업의 민감한 정보나 영업상 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환경부와 국회도 기업의 우려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원료 배합 비율 등 세세한 정보 대신 유·무기화합물 등 간략한 정보만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영진 의원실 관계자도 “정보 제공에 대한 기업들의 부담, 그리고 정부가 정책을 만드는 데 있어서 얼마나 정보가 필요한지 함께 고려해 절충점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선 우리나라가 제조업 중심 국가라는 점을 들어 다른 나라보다 앞장서 LCI DB 관련 법률 등 환경 규제를 신설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유럽 등의 동향을 보고 대응하는 것이 낫지, 먼저 우리가 나서서 관련 규제를 만드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세종=심우일 기자 vita@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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