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명품 제국 LVMH의 권좌는 누구에게? '순양' 뺨치는 승계드라마 시작됐다
세계 최고의 부자는 누구일까? 경제 종합정보 매체 블룸버그는 세계최고 부자들의 순자산 순위를 매기고, 매일 뉴욕증시 결과를 반영해 업데이트한다. 이 순위에서 1위를 달리던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지난 연말 한 프랑스인에게 1위를 내줬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크리스챤 디올, 모엣샹동, 헤네시, 티파니 등을 거느린 LVMH의 회장. 그는 2,050억 달러 (276조 7천억 원)의 자산을 갖고 있어 1,630억 달러인 일론 머스크에 한참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그가 이끄는 LVMH그룹은 패션-가죽, 보석-시계, 향수-화장품, 고급 유통, 호텔-레저 등 명품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브랜드 75개를 망라하고 있다. 술에는 돔 페리뇽, 헤네시, 모엣샹동, 아르드벡, 글렌모란지, 샤또디껨 등 25개 '하우스'(LVMH는 소속 브랜드들을 이렇게 부른다.)가 있다.
패션/가죽에는 루이비통, 크리스챤 디올, 로로피아나 등 14개 하우스, 향수/화장품에는 겔랑, 켄조 등 15개 하우스, 시계-보석에는 티파니, 태그 호이어, 쇼메, 불가리 등 8개 하우스가 소속돼 있다. 그야말로 명품의 제국이라 할 만하다. LVMH의 기업가치는 지난 4월 말 유럽에서 처음 시가총액 5천억 달러(약 668조 원)를 돌파하며 세계 시가총액 10위권에 진입했다.
회장님의 1녀 4남… 엄마는 달라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74)에게는 자녀가 5명이다. 첫째가 딸, 그 아래로 아들이 넷인데, 아들 넷 중 아래 셋은 재혼한 부인이 낳았다. 지금의 가족은 아래 사진과 같다. 사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최연장자가 베르나르 아르노 본인이고, 그 옆의 여성이 지금의 부인 엘렌 메르시에-아르노다. 사진상 왼쪽 3명이 그녀가 낳은 아들이다. 아버지 베르나르 우측엔 첫 부인이 낳은 자녀 둘이 있다. 베르나르 바로 오른쪽 여성이 자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델핀, 그 오른쪽은 나이로는 두 번째이지만 아들 중엔 가장 위인 앙투안이다.
후계구도에서 가장 앞선 건 장녀? 장남?
1975년생인 델핀은 맥킨지 컨설턴트로 활동을 시작해 2000년 LVMH에 입사했다. 2003년 LVMH에서 최초의 여성이자 최연소로 이사회 멤버가 됐다. 모에 헤네시, 크리스챤 디올 등에서 일을 배우다가 2013년에 루이비통 부사장으로 옮겨 경험을 쌓았다. 현재 다섯 자녀 중 유일하게 LVMH이사회(board of directors)와 경영위원회(executive committee) 양쪽에 이름이 올라있다.
얼굴 모습과 체형, 풍기는 분위기나 태도 등에서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1977년생으로 아들 중 맏이인 앙투안도 여전히 살아있는 후계 카드다. 2012년부터 이탈리아 명품구두업체 베를루티(Berluti)의 CEO를 맡아 회사를 크게 키웠다. 이번에 누나 델핀에게 디올 CEO자리를 넘기기 몇 주 전, 아르노 가문의 LVMH 지분을 관리하는 상장사의 CEO가 돼서 주목받기도 했다. 누나 델핀과 함께 LVMH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앙투안은 사회와 정치의 분위기를 아버지 베르나르에게 전하는 커뮤니케이션 사령탑 역할을 한다. 최근 빈부격차 확대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프랑스 여론지형을 감안해, LVMH가 얼마나 세금을 많이 내고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지 진보좌파 신문에 광고캠페인을 하자고 아버지를 설득한 것도 앙투안이다.
현부인(둘째 부인) 엘렌 메르시에는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다. 베르나르가 첫 부인과 이혼한 1990년에 베르나르와 처음 만나 결혼했다. 그녀가 낳은 세 아들은 아직 LVMH 이사회 멤버는 아니지만 각자 중요 계열사에서 경험을 쌓으며 아버지의 단련과 검증을 받는 중이다.
알렉상드르 아르노(30)는 2021년부터 티파니&Co.의 제품과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랜 보석명가인 티파니를 블랙핑크, 제이 지(Jay Z) 등 세계대중문화의 스타들과 연결해 젊은 브랜드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트위터 공동설립자 잭 도시 등 젊은 명사들의 인맥이 탄탄하다.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티파니 뉴욕 플래그십 스토어의 재개관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그전에는 여행용 캐리어 업체 리모와(Rimowa)를 맡아 능력을 발휘했다. 리모와를 인수해 LVMH 계열사로 만들자고 아버지 베르나르에게 제안하고, 독일로 날아가 리모와 소유주를 직접 설득했다. 베르나르 회장이 2017년 리모와를 인수하면서 알렉상드르를 CEO로 앉힌 건 그 때문이다. 알렉상드르는 스트릿 패션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는 등 다양한 시도로 리모와를 젊은 감각으로 되살려냈다.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엘렌 메르시에의 재능을 가장 잘 이어받아, 무대에서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을 연주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프레데릭 아르노(28)는 시계업체 태그호이어의 CEO를 맡고 있다. 아버지가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자식들의 입학을 그토록 원했던 모교 '에콜 폴리테크닉'의 학부를 나온 유일한 자녀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 학교는 프랑스 최고 수준의 이공계 엘리트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프레데릭이 이 학교에 붙었을 때 아버지 베르나르의 기쁨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도준이 서울법대에 합격했을 때 진양철 회장의 기쁨에 빗댈 수 있다.
프레데릭은 아버지를 닮아 말은 임원들에게 시키고 주로 듣는 스타일이며, 때로는 10분 이상 가만히 듣기만 해서 임원들이 진땀을 뺀다고 한다. 아버지 베르나르의 취미인 테니스의 실력이 출중하다 하며, 어머니와 함께 무대에서 종종 함께 연주할 정도로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다.
막내 장 아르노(24)는 루이비통 시계부문의 마케팅과 개발 담당 디렉터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MIT에서 금융수학을 공부했지만 바로 윗 형인 프레데릭의 영향으로 시계 비즈니스를 택했다고 한다.
누가 은퇴 소리를 내었는가?… 그러나 꾸준히 준비해 온 승계
올해 1월, LVMH의 경영성과 발표 회견에서 맨 앞줄에 앉은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베르나르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번 로저 페더러와 테니스 쳤을 때 한 세트에서 1점 땄는데, 다음번엔 좀 더 잘 칠 수 있을 거다."
후계자 결정하는 칼자루는 내가 쥐고 있으며 나는 아직 정정하다는 걸 과시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권좌를 지금 내줄 생각은 꿈에도 없으면서도 '내가 떠난 이후'를 걱정하는 건 제왕적 권력자들의 공통 숙명인가 보다.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뒤에서는 오래전부터 후계 문제를 고민하고 준비해 왔다고, 주변인물들을 취재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한다.
계기는 절친의 20년 전 비명횡사였다. 장 뤽 라가르데르(Jean-Luc Lagardère)는 미사일 등 군수산업부터 출판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업을 이끄는 그룹의 총수였고, 베르나르와 짝을 이뤄 테니스를 치는 사이였다. 2003년 75세였던 그는 골반 수술을 받았는데 감염 관리가 잘못돼 이틀 만에 혼수상태에 빠지고, 그 며칠 뒤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들 아르노 라가르데르를 몹시 아꼈지만 아들은 파일럿이나 가수가 되기를 꿈꾸던 청년이었고, 그룹의 경영을 맡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아들은 하나 둘 계열사를 팔았고, 라가르데르 그룹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피 말리는 밥상머리 교육… 매달 90분의 '오찬 오디션'
올해 초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들의 보도에 따르면, 베르나르는 LVMH 본사 사옥 내 식당으로 다섯 자녀를 한 달에 한번 소집해 점심식사를 한다. 오찬 시간은 정확히 90분. 베르나르 본인이 아이패드에 정리해 온 토론 주제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베르나르는 식탁을 돌며 자녀들 각각에게 질문을 던진다. 특정 경영진에 대한 견해를 묻기도 하고, 샴페인용 포도밭 이슈에서 텍사스의 핸드백 생산공방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한다. 성인이 된 자녀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밥상머리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드라마 속 진양철 회장처럼 화 내고 소리 지르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식들이 밥이나 제대로 넘어갈까 싶다. 사실상 구술시험 상대평가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캐시미어 입은 늑대'... 그는 어떻게 명품의 제국을 일궜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부사, 자신한테 반기를 드는 자는 피붙이도 용서하지 않는 철혈 기업가가 바로 드라마 속 진양철이다.
현실의 베르나르 아르노도 그렇다. 업종이 화려한 명품이라 우아해 보이지만, 그 역시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돈의 전쟁으로 전리품을 쌓아 올려 지금의 LVMH라는 제국을 만든 사람이다. LVMH는 원래 그가 만든 그룹이 아니다. 치열한 지분싸움으로 빼앗은 것이다.
LVMH는 루이비통과 샴페인 회사 모엣 헤네시를 합병한 회사로, 원래의 창업자는 앙리 라카미에다. 라카미에는 루이비통의 증손녀 남편이라는 인연으로 1977년 65세 때 루이비통에 영입됐다고 한다. 그의 경영 아래 루이비통은 해외로 확장하고 증시 상장도 성공하는 등 세를 불렸다. 1987년에는 명품 주류 회사인 모엣 헤네시를 합병해 LVMH를 설립했다. 이때 덩치를 키우기 위해 크리스챤 디올을 갖고 있던 베르나르 아르노를 주주로 합류시키는데, 이게 결과적으로 라카미에에게는 운명적 패착이 됐다.
베르나르 아르노는 1949년에 태어났다. 1971년 프랑스 최고의 이공계 대학인 에콜 폴리테크닉을 졸업한 그는 처음엔 아버지의 건설회사 경영을 도왔다. 3년 뒤엔 아버지를 설득해 건설공사 부문을 팔고 부동산 개발로 업종을 바꾸는 한편 섬유회사를 인수했다. 그러던 1984년, 섬유와 소매 부문의 유력 그룹이었으나 부실화된 부삭 생프레레(the Boussac Saint-Frères)의 새 인수자를 정부가 찾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상징적 금액인 단돈 1프랑으로 부삭 그룹의 새 주인이 된다. 빚더미 부실그룹이었지만 부삭엔 보물이 묻혀있었으니, 바로 디올(Dior)과 봉 마르쉐(Le Bon Marché) 백화점이었다.
그는 2년 만에 부삭 그룹에서 9천 명을 해고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터미네이터'라는 악명을 얻었다. 디올과 봉마르쉐를 제외한 계열사와 자산은 모두 팔아버렸다. 그게 1986년이다.
앙리 라카미에는 누구도 적대적 인수를 시도할 수 없는 크고 강한 명품그룹을 만들기 위해 디올의 오너인 베르나르 아르노에게 1987년 LVMH참여를 제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집안에 늑대를 끌어들인 자충수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베르나르는 기네스를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여 LVMH그룹의 경영권을 차지하는 싸움을 걸었고, 결국 1989년에 최종 승리해 라카미에를 축출하고 회장 자리에 오른다. 베르나르 아르노에게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라는 별명이 붙게 된 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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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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