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도시의 벽이 곧 갤러리"…사진으로 세상을 바꾸는 제이알 개인전
공공장소에 내건 대형 사진 프로젝트로 명성
사진(寫眞)의 한자어는 풀이해보면 '진실을 베낀다'는 뜻이다. 프랑스 출신 사진작가이자 거리예술가 제이알(JR·40)은 그 '진실'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고아한 전시장이 아닌 전 세계 거리의 벽을 자신의 갤러리 삼아 종횡무진하는 그는 국적과 나이 외엔 알려진 정보조차 없는 미지의 인물이지만, 작품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하고 선명하다. 그가 대규모 개인전 '제이알: 크로니클스(JR: CHRONICLES)'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2019년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을 시작으로 제이알의 지난 20년간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이번 전시는 독일 뮌헨 쿤스트할레를 거쳐 롯데뮤지엄으로 이어진 제이알의 아시아 첫 전시다. 제이알은 "이번 전시가 회고전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작업한 작품을 되짚어보며 개인과 공동체가 변화를 이뤄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라피티 작가로 활동하던 제이알은 2001년 파리 지하철에서 우연히 삼성 카메라를 습득한 것을 계기로 동료들의 작업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피사체로서의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그는 초기 작업에서 자신이 촬영한 사진을 건물 외벽에 붙인 뒤 프레임을 씌워 전시장의 작품처럼 선보여 화제가 됐다. 이 기획은 곧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발전해 특정 지역에서 주민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고 설치 과정에서도 주민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반영해 협력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예술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제이알은 2005년 '세대의 초상' 프로젝트로 명성을 얻었다. 앞서 2004년 그는 파리 교외 몽페르메유의 게토(집단거주지)인 리 보스케(Les Bosquets)의 어린아이들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확대 인쇄한 작품을 그곳 벽에 붙이며 자신의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이듬해, 그가 전시를 개최했던 지역에서 이주민을 중심으로 참혹한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이 지역 중학생이던 지에드 벤나(Zyed Benna)와 부나 트라오레(Bouna Traore)가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해 몸을 피하다가 프랑스 전력공사 송전소 변압기에 추락해 감전사한 사고가 발생했고, 이는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도시 외곽에서 차별과 경제적 빈곤을 안고 살던 이민자 청년들은 일제히 거리로 나섰고 당시 프랑스 전국의 차량 1만여대와 건물 300여채가 불에 타는 등 방화와 폭력이 사회를 뒤덮었다.
이때 제이알은 다시 리 보스케로 돌아와 지역 청년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청년들의 초상을 촬영하고 이를 확대 출력한 뒤 사진 속 인물의 이름, 나이, 주소를 적어 거리에 내걸었다. 이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브라카쥐, 레드리'는 총으로 상대를 겨눈 듯한 청년의 모습을 담았지만, 실제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카메라다. 단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들고 있는 카메라가 무기로 보이게 하는 대중의 인식 기저에는 편향된 미디어가 쏟아내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작가는 냉정하게 되묻는다.
2007년 진행한 '페이스 투 페이스' 프로젝트에서 제이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택시운전사, 교사, 운동선수 등 같은 직업을 가진 양 지역 주민들의 사진을 촬영한 뒤 크게 출력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벽 양쪽에 대형 초상사진을 나란히 전시했다. 지역 간 왕래가 없으니 미디어를 통해서만 서로를 인식했던 사람들은 사진만 봐서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인지 팔레스타인 사람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이 작업 역시 미디어로 인한 왜곡된 대중의 인식에 경종을 울렸다.
작가는 2008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로 향했다. 현지 여성의 눈과 얼굴을 찍은 사진을 크게 확대해 빈민가 언덕 곳곳의 주택 40채 외벽에 이를 부착했다.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의 얼굴과 눈이 리우데자네이루 도심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성은 영웅이다'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폭력의 대명사가 된 지역에서 전쟁, 범죄, 강간, 정치적 또는 종교적 광신주의의 희생자가 된 여성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묻혀있던 이들을 가시화해 전시했다. 이 전시는 이후 케냐, 캄보디아, 인도, 시에라리온 등으로 이어지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앞서 파리 루브르 박물관, 팔레 드 도쿄, 로마와 이집트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대표적 명소에서 착시효과를 이용한 야외 설치작업 '아나모포시스'를 선보였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롯데타워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을 소재로 한 신작을 공개했다. 갤러리 창에 설치한 작품은 관객 시선을 거쳐 바깥 세계와 연결된 느낌을 선사한다. 작가는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 풍경을 두고 이를 보는 관객들이 전시장 내부에서 균열을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된 듯한 경험으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시각적 재미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는 예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늘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시는 8월 6일까지,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뮤지엄에서 진행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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