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성+인물' 성착취 AV 미화, 왜 심각한 문제일까

이이슬 2023. 5. 6.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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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민·김인식 PD 인터뷰
넷플릭스 예능 '성+인물'
폭력·착취적 AV 미화 논란
제약 없이 제작된 OTT 예능 비판
반성 없는 제작진, 자충수 된 해명

"AV(Adult Video·성인물)가 많은 사람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 성범죄율을 낮추는 것 같아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성+인물'에 출연한 일본 여성 AV 배우는 이같이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이 결여된 실언에 가까운 이 발언을 편집 없이 내보낸 제작진이 가장 큰 문제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성+인물'은 왜 '문제작'이라는 질타를 받고 있나.

정효민·김인식 PD가 만든 '성+인물'은 지난달 25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방송인 신동엽, 가수 성시경이 성과 성인문화 산업 속 인물을 만나 탐구하는 프로그램을 표방했다.

'성+인물'은 공개 전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왔다. 성행위를 하는 성인비디오(AV) 출연 강요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인권 관련 문제 등 여러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를 고려하지 못한 기획이라는 지적이다.

지적하고 보자면 한도 끝도 없는 '성+인물이다. SBS '동물농장' 진행자인 신동엽의 하차까지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셌고, 제작진은 "신동엽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사실 제작진이 고개를 숙여야 할 대상은 신동엽이 아니다.

정효민·김인식 PD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아시아경제와 만나 '성+인물'에 대한 쏟아지는 비판과 논란에 답했다. 두 PD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꼼꼼히 찾아본 듯했지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듯했다. 단지 방송이 성(性)을 소재로 다뤘고, 일본 AV 배우들을 출연시켰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힘 빠지는 제작진의 답변에 곳곳에서 한숨이 터졌다.

'성+인물' 스틸[사진제공=넷플릭스]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제작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토록 거센 비판에 직면할 줄 예상 못 했다는 반응이었다. 이는 수개월 전, 기획 단계에서 거듭했어야 할 진지한 고민이 생략된 까닭이다. 유명 MC와 만드는 섹스 코미디쯤으로 가볍게 치부한 태도가 문제로 지적된다. 사회 분위기를 고려한 제약도 검증도 없이 '찍어내기' 식 예능을 만들어낸 플랫폼도 안일했다는 목소리가 뜨겁다.

유의미한 답변을 기대하고 마주한 제작진은 "글로벌 OTT 넷플릭스에서 만국 공통인 성에 대한 예능을 다루고 싶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아쉬운 태도를 보였다. 온라인상 시청자들의 쏟아지는 비판 중에서 굵직한 몇 가지를 정리했다.

女성적 대상화 비판 AV, 왜 다뤘나

'성+인물' 제작진은 19금 개그, 섹스 코미디를 예능 콘텐츠로 가볍게 풀겠다는 의도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면서 웃음의 소재로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AV가 우리나라에서 불법이고 일본에서 합법인지 여부보다 중요한 대목이다.

정효민 PD는 "그런 의견을 수용하고자 했다"며 "아이템을 다룰 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AV를 어떻게 다룰지 많이 고민했다. 일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AV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다. AV를 다루지 않고는 일본을 다루지 말아야 했고, 골고루 다뤘어야 했다"고 말했다.

"AV 시장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갖는지, 가능성은 얼마나 있는지 충분히 들어보고자 했다. 남성의 시각에서만 소비되는 게 아니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성인이라면 즐기고 향유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성+인물' 공개를 앞두고 게재된 예고편 속 "AV가 성범죄율을 낮춘다"는 발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크게 논란이 됐다. 이에 관해 정 PD는 다소 맥락에 맞지 않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콘텐츠가 공개되기 전 '짤'(온라인상 가공된 이미지)로 소비되는 건 예능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AV 배우가 일을 왜 선택했고, 기쁨과 괴로움을 무엇인지 등 최대한 정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짤로 소비되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젠더문제·가치관이 문제? 까막눈 제작진

정효민(왼쪽) 김인식 PD[사진제공=넷플릭스]

성(性)을 왜 예능으로 다뤘을까. 정효민 PD는 "성에 대해 생각하는 기준이 모두 다르다.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꼭 도전하고 싶은 분야였다"고 했다.

제작진은 전작 '마녀사냥'을 언급하면서 "기존 미디어에 없지만 정리되는 부분을 담고 싶었다"며 "결국 좋은 담론을 향해 전체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좋은 담론'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묻자 난감한 답변을 내놨다.

"성별로 의견이 많이 나뉘지 않나. 남초·여초 커뮤니티로 나뉘고 있는데, 고민을 많이 했다. 콘텐츠가 공개되고 살펴보니 나이와 성별도 영향을 미치지만, 그보다 개인의 가치관과 수용 정도에 평가가 달라지더라. 이야기하면서 '다르다' '틀렸다' 미워하기보다 어떤 지점에서 합의 볼 수 있는 성인들의 이야기를 하는 장이 마련되지 않을까."

'성+인물' 문제의 본질은 젠더 갈등도 개개인의 가치관의 문제도 아니다. 성차별에 관한 도덕적 차원의 문제라는 점이 가장 큰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제작진은 본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개인의 가치관'으로 치부하는 아쉬운 태도를 보였다. 이에 관해 다시 물었다.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시청자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정 PD는 "19금 콘텐츠를 소재로 다룰 때 당연히 걱정되는 부분"이라며 음주·영화·드라마에 빗댔다. "어디까지 가져갈 것인지 고민을 계속하게 된다. 유럽에서 음주가 허용되는 나이는 14~16세이고, 우리나라는 19세다. 일본은 20세, 미국은 21세다. 공원에서 음주도 허용되는 정도가 나라마다 다르다. 이를 고려할 때 도덕적 비판과 법률적 판단에서의 위법과 합법은 문화적으로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 맥락에서 조심스럽게 수용 가능한 정도를 찾아갔다."

착취적 방식으로 유지되는 AV 산업 미화 비판

'성+인물' 스틸[사진제공=넷플릭스]

제작진은 일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AV 산업을 빼놓고 논할 수 없어서 다뤘다고 해명했다. 이 산업이 여성을 대상화하고, 폭력적·착취적 방식으로 유지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는 분위기를 고려했는지 물었다.

"그 부분에 대한 고민도 담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예능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런(공개된 콘텐츠) 정도였다. 착취가 벌어지는 산업은 아닌가, 왜 묻지 않았느냐는 지적은 인정한다. 다만 성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럴 두고 묻는 게 결례가 될 수도 있다고 봤다. AV를 판타지가 아닌 실제로 보여주고 싶다는 여성 배우의 말은 그쪽 산업에서 금기시되는 말일 수도 있다. 판타지를 깨는 발언이라서다.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의 고민을 예능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에서 담아보려는 저희 노력이었다고 봐달라."

법률적, 사회 통념상 허용에 대한 갑론을박도 이어졌다. 정 PD는 "우리나라에서 AV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건 불법의 영역에 들어가지만, 개인이 보는 건 불법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는 제작도 합법이고, 전 세계적으로 제작이 합법인 나라가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AV에 관해 김인식 PD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다른 법적 테두리에 있다. 음란물로 규정되는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 사회 통념에 따를 수도, 법원에서 판단하는 영역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AV 전체를 우리나라에서 합법인지 불법인지 이야기하기보다 음란물로 규정됐을 때의 배포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했다.

제약 없이 만들어진 OTT 예능 괜찮나

제작진에게 '성+인물'의 기획부터 제작까지 일련의 과정에 관해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정효민 PD는 "1년 반 전에 출발했다"며 "방송사에 있다 나와서 제작사를 설립했고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 관계자와 이야기하면서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제작사(스튜디오 모닥)를 차린 직후 이야기한 아이템은 글로벌하게 성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각기 다른 문화를 다뤄보고 싶다고 이야기하고서 흘러갔는데, 넷플릭스 예능 '코리아 넘버원'을 먼저 했다. 그 과정에서 넷플릭스가 미드폼 형식의 새로운 예능을 준비해볼 수 있다는 제안을 해왔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1년 반 전에 기획한 아이템이 떠올랐다. 이는 기존 예능의 사이즈인 70~100분, 12편 이야기로 담아낼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20~30분 분량의 나라별 에피소드로 구성한다면 충분히 완결성 있겠다고 봤다. 한국과 다른 다양한 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빠르게 섭외와 답사, 촬영과 편집이 이뤄졌다."

'성+인물' 스틸[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와 소통 과정에서 가이드 삼은 부분을 물었다. 어떻게 조율하며 '성+인물'을 만들어갔냐고 묻자 정 PD는 "자주 소통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맞춰갔다"고 답했다. 이어 "나라나 아이템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며 의사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김인식 PD는 "연차가 낮은 PD로서 기존 방송국에 있을 때 주로 특정 예능이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분위기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주제의 콘텐츠가 있다. 많은 주제를 다양하게 인정하고 즐겨주시면 어떨까. 성이라는 주제에 많은 의견이 나올 수 있지만, 또 어떤 사람은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예능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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