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무서워" 이혼女 울린 아이 한마디…면접교섭의 그늘
“어린이날도, 어버이날도…”
5일 수화기 너머 송모(41)씨의 말끝이 흐려졌다. 가정의 달이지만 송씨는 두 아들을 만날 수 없다. 2008년 결혼한 송씨는 전남편과 사이에서 두살 터울의 형제를 낳았지만 남편의 폭언 등을 견디지 못해 2016년 이혼을 결심했다. 송씨에게 양육권을 인정했던 1심과 달리 2020년 2심 재판부는 남편을 양육자로 지정했다. 소송 중 남편이 형제를 데려가 키우고 있는 점이 반영됐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었지만, 소송이 길어지면 아이들이 힘들 거란 생각에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송씨는 곧 결정을 후회하게 됐다고 했다. 법원이 면접교섭일을 명시했지만, 실상은 10분 남짓한 하굣길 만남 뿐이었다. 전 남편이 아이들과의 접촉을 막은 탓이다. 면접교섭이행명령을 신청하려다 마음을 접었다. “긴 이혼소송을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다시 송사에 휘말릴까 꺼려졌다”는 게 이유였다. 가정법원과 법률구조공단에 상담을 청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와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졌다. 급기야 지난달엔 첫째 아들로부터 “엄마가 무서워. 안 보고 싶다”는 말까지 듣게 됐다. 송씨는 “전 남편이 애들한테 안 좋은 감정을 주입하고 있다. 점점 엄마에 대한 기억이 사라져서 영영 아이들을 못 보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고 울먹였다.
경기도 광주에 사는 권모(41)씨는 반년 가까이 9살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이혼 뒤 전 부인이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등의 이유를 들며 대부분의 면접교섭일에 응하지 않은 탓이다. 2020년 7월 권씨가 법원에 면접교섭이행명령을 신청하자 전 부인이 태도를 바꿔 가까스로 아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법원이 상황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신청을 기각하자 비협조적인 태도가 재현됐다고 했다. 그사이 아들은 권씨에게 “엄마 좀 그만 괴롭혀. 더 커서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내는 등 태도가 달라졌다. 지난해 12월 대구가정법원은 두번째 이행명령 신청을 받아들였지만 권씨는 웃을 수 없다. 전 부인이 아들의 자필 탄원서를 첨부해 항고장을 냈기 때문이다. 탄원서엔 “아빠랑 4년 뒤에 만나고 싶다. 자꾸 법원에 신고해서 무섭다”는 내용이 적혔다. 권씨는 “아빠만 보면 달려오던 아이였는데 양육권자의 가스라이팅으로 점점 변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명무실’ 우려 직면한 면접교섭
그러나 양육권자가 면접교섭에 대한 태도를 바꿔가며 만남을 방해해 법원의 조치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 경우가 빈발하고 있다. 송씨처럼 자녀들까지 가세해 ‘부모따돌림’을 당할 경우 법원의 개입은 더욱 어렵다. 면접교섭에 관한 재판에서 미성년 자녀의 의견이 주요한 참고 사항으로 고려되기 때문이다. ‘부모따돌림’은 이혼 과정에서 양육권자가 자녀에 영향을 미쳐 결국 자녀들도 떨어져 사는 엄마나 아빠에게 등을 돌리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는 “법원은 면접교섭이 아이의 복리에 필요하다고 보고 예외적으로 제한할 사유가 있는지를 판단한다”며 “면접교섭에서 아이의 의사를 무조건 따르진 않지만 고려할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혼한 부모가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클 경우 아이가 눈치를 보고 면접교섭을 피하는 등 여러 상황이 있는데 법원이 모든 상황에 다 개입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혼가정의 면접교섭이 유명무실화 되는 걸 막기 위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의 경우 민법 제1684조를 통해 부모 중 일방이 면접교섭권을 침해할 경우, 법원의 명령으로 면접교섭보조인을 선임할 수 있다. 면접교섭보조인은 부모 사이를 중재하거나 면접교섭방식 등을 결정할 수 있다. 선진국에는 이외에도 법원이 나서기 전 단계부터 민간단체를 통해 실질적인 면접교섭을 위한 지원하는 환경도 마련돼 있다. 송미강 양육비이행관리원 상담위원은 “면접교섭에 일정한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면접교섭보조인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며 “강제집행 이외에 면접교섭권의 실행을 위한 장치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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