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글돈글] 中부자들이 싱가포르에서 돈 뿌리는 법

이지은 2023. 5. 6.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中 부자, 가족법인 700곳 설립
자산관리 규모 1000조원 증가
사치품·부동산 가격 급등
시장 신뢰도 낮아 금융 투자 꺼려

코로나19로 골머리를 앓던 지난 2년간, 중국 부유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트렌드가 있습니다. 바로 싱가포르로 투자 이민을 떠나는 것입니다. 부유한 중국인들은 코로나19로 도시가 봉쇄되고 중국 정부가 세무조사 강도를 높이자 자유를 찾아 싱가포르로 향했습니다. 물론 축적했던 자산도 가족법인을 통해 함께 이전했죠. 이렇게 싱가포르로 투자 이민을 떠난 이들의 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28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싱가포르 정부는 이들의 이주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중국인들이 자산을 금융 상품 등에 투자해 시장에 돈이 돌게 만들기보다는 부동산 매매와 사치품 구입에만 치중하기 때문인데요.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으니 싱가포르 정부로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中 부자, 가족법인 대거 설립…중국 정부 규제 회피

중국 부자들이 싱가포르에 옮긴 자산은 대략 어느 정도일까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2021년 싱가포르에는 700개 이상의 가족법인이 설립됐습니다. 가족법인은 고액 자산가들이 자산을 승계하거나 가족들의 투자금을 관리하는 목적으로 세운 법인입니다.

2018년 기준 50개에 불과했던 가족법인의 수는 불과 3년 만에 14배가 불어났습니다. 싱가포르에서 관리하는 자산규모 역시 2021년 4조7000억원(4533조원) 싱가포르 달러에서 5조7000억 싱가포르 달러(5209조원)로 대폭 늘어났습니다.

중국 부자들이 자산을 대거 이전한 이유는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공동부유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자산 옮길 곳을 찾던 중국 부유층들에게 싱가포르는 최고의 도피처와 다름없었습니다. 코로나19로 홍콩이 중국과 발맞춰 고강도 방역 정책을 시행할 때도 싱가포르는 비교적 운신의 폭이 자유로웠죠. 더욱이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중국어를 공용어로 쓰인다는 점도 중국인에게 큰 매력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中 부유층, 유흥에 대거 소비…골프 회원권 가격 급등

그렇다면 싱가포르로 이주한 중국 부자들은 과연 이 많은 돈을 어디에 쓰고 있을까요? 바로 술과 포커, 그리고 시가입니다.

최근 블룸버그는 싱가포르의 고급 아파트와 비슷한 형태의 단독주택인 '방갈로'를 개조한 고급 와인바와 위스키 바가 중국 부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고풍스러운 중국 골동품과 조형물로 인테리어 된 이 방갈로에서 중국의 억만장자들은 최고급 쿠바산 시가와 보르도 와인을 마시며 포커를 친다고 합니다.

고급 방갈로를 개조해 만든 싱가포르의 와인바 '서클 33' [이디미출처=블룸버그]

이곳에서 중국인들은 먹고 마시며 수억달러 상당의 돈을 어떻게 굴릴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고 하네요. 특히 싱가포르의 스코츠 도로에 있는 '서클 33'이라는 와인바의 경우 싱가포르에 이주하면 한 번쯤 가봐야 하는 통과의례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했다고 합니다.

이들이 이주한 뒤 골프 회원권 가격도 대폭 뛰었습니다. 싱가포르에 있는 센토사 골프클럽의 외국인 전용 회원권 값은 지난해 기준 84만 싱가포르 달러(8억4280만원)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무려 30%가 뛰었습니다.

◆'큰 손' 중국인, 부동산 싹쓸이…금융 시장엔 찬바람

그렇지만 이들이 유일하게 열을 올리는 투자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부동산입니다. 지난해 외국인들은 싱가포르 민간 아파트 물량의 6.9%를 매수했습니다. 정확한 비율은 나오지 않지만, 이중 대다수는 중국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인들의 투기 여파로 주택 가격은 지난해 4분기 0.4% 상승했으며, 올해 1분기 3.2%가 뛰었습니다.

이들은 고급 주택 임대료까지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4분기 싱가포르의 고급 맨션 임대료는 전년 대비 무려 28%가 뛰며 임대료가 비싸기로 소문난 미국의 뉴욕을 제쳤습니다.

싱가포르달러 [이미지출처=블룸버그]

중국인들의 부동산 투기가 심화하자 결국 싱가포르 정부는 규제의 칼을 빼 들었습니다. 이들의 투기가 주거 양극화를 초래해 사회에 불안을 야기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에 정부는 외국인이 주택을 구매할 경우 집값의 60%에 달하는 취득세를 납부하도록 법을 개정했습니다. 기존에 적용되던 세율은 30%였습니다.

반면 중국 부자들은 금융시장에는 극도로 투자를 아끼고 있는 상황입니다. 블룸버그는 싱가포르의 헤지펀드와 은행, 사모펀드 회사들이 중국 재벌들과 소소한 계약 이상의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중국인들의 가족법인 설립에 세금 면제 혜택을 제공하면 이들의 자산이 금융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상은 달랐던 것입니다.

◆곳간으로 전락한 싱가포르…낮은 지명도에 투자 꺼려

대체 이들은 왜 싱가포르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는 것일까요?

프랑스의 투자은행인 나틱시스는 두 가지 이유를 꼽습니다. 우선 싱가포르의 주식시장이 아직 홍콩 증시와 비교해 시가총액 규모가 작고 지명도가 낮아 중국인들이 투자를 꺼린다는 것입니다. 홍콩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은 3조3600억달러인데 반해 싱가포르 거래소는 6500억달러에 불과합니다.

싱가포르 주택 전경

또한 중국 부자들은 좀처럼 쉽게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나틱시스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고객들은 미국의 투자자들에 비해 자금을 맡아 줄 금융사 직원들을 신뢰하는 것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합니다. 중국 부자들 입장에서 낯선 싱가포르 시장에 쉽사리 믿음을 주기 어려워, 실물 자산을 가질 수 있는 부동산 외의 투자는 꺼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현재 싱가포르는 홍콩에서 돈을 벌기 위해 잠시 돈을 보관하는 임시 거처 정도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 투자자들이 한국 부동산 매매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요. 싱가포르의 사례를 볼 때, 한국은 중국 부자들에게 과연 어떤 시장으로 비칠지 궁금해집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