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당신도 포괄임금?
“기자도 대표적인 포괄임금 직종 아닌가요?” 노동 분야를 취재하다보면 이런 질문을 종종 듣는다. 특히 요즘처럼 근로시간 제도가 이슈인 때는 더욱 그렇다. 실제 국내 언론사는 상당수가 시간외수당을 급여에 포함해서 지급하는 포괄임금 계약을 활용하고 있다. 추가 근로가 상시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가정해 몇 시간 일했는지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연장·야간 근로수당 등을 일정 금액으로 ‘퉁쳐서’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포괄임금제라는 용어는 없다. 산업현장에서 만들어진 관행을 1974년 대법원이 처음 인정하면서 법에 정해 놓은 제도처럼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을 뿐이다. 대법원은 그간의 판례를 통해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고’ ‘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으며’ ‘여러 사정에 비추어 정당하다면’ 포괄임금 계약의 효력이 있다고 판단해왔다.
다수의 언론사가 포괄임금제를 유지하는 데에는 취재기자의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명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와 ‘불가능하다’는 다르다. 어려울지언정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닐 수 있다. 이미 언론계에서는 주52시간제 도입 당시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시급제를 적용한 사례가 나왔다. 엄밀히 따지면 어려운 건 ‘어디까지가 근로시간인지’를 두고 노사가 합의하는 과정이지, 근로시간 산정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는 매우 제한적일 거라 본다.
문제는 포괄임금제가 특정 업계가 아닌 산업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2017년 한국경제연구원 조사 결과 대기업 195곳 중 절반이 넘는 113곳이 포괄임금제를 도입했다고 답했다. 이중 94.7%는 일반 사무직에도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었다. 포괄임금제를 실시하는 이유(복수 응답)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워서’가 60.2%로 가장 많았지만, ‘임금계산의 편의를 위해서’(43.4%) ‘기업 관행에 따라서’(25.7%)라는 응답도 높았다.
고용노동부의 ‘2020 포괄임금제 실태조사 보고서’에선 10인 이상 사업장 2522곳 중 749곳(29.7%)이 포괄임금제를 적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부는 문재인정부 시절 포괄임금제 규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려 했지만, 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제도에 대해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맞는가 하는 혼란 속에서 끝내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을 선언하고 올해 최초로 근로감독에 나선 고용부가 ‘포괄임금제 폐지’에 대해서는 발을 빼는 것도 그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일 테다.
현 정부가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근로시간 제도 개편 관련 ‘주69시간’ 논란이 포괄임금제 논의에 다시 불을 붙인 건 환영할 일이다. 근로기준법이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대해 더 많은 수당을 주도록 규정한 것은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도록 유도하고 장시간 근로를 억제하기 위함이다.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시간’을 규제하는 근로기준법과 실제 몇 시간 일했는지 관계없이 수당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는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포괄임금 계약이 ‘근로자에게 불이익’한지 판단하기 위한 기준은 결국 실근로시간이다. 대법원은 근로자가 실제 일한 시간에 따라서 법정수당을 계산하고, 이 금액이 포괄임금 계약에서 정한 정액 수당보다 적다면 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출퇴근 기록은 노사 분쟁이 발생했을 때 노동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다.
그런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199시간을 더 일하는 장시간 노동국가인 한국에서 자신이 일한 시간을 매일, 매주, 매월 단위로 정확히 알고 있는 근로자는 드물다. 근로시간 기록·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데 필요한 비용이나 인력의 문제도 있겠지만, 이러한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도 부족한 게 사실이다. 무분별한 포괄임금제 도입이 낳은 또 다른 부작용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었던 김기선 교수는 2020년 논문에서 포괄임금제 규제에 따른 근로시간 기록·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제 우리는 사무실에 얼굴을 비치고 앉아 있는 시간을 측정하는 비생산적인 문화와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상실된 장시간 근로가 계속되는 한 우리는 항상 시간에 쫓기는 시간빈곤자에 머물 것”이라고도 했다. 오늘도 일터로 향하는 당신, 당신의 ‘시간 주권’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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