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美’ 할수록 ‘遠中’ 고착… “더 늦기 전 對中 소통 나서야”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미국 국빈방문을 통해 한·미는 더욱 밀착하게 됐지만 한·중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로워졌다. 윤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관해 원론적으로 언급한 것을 두고 중국 정부는 심한 말로 비난하는 등 몹시 예민하게 반응했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서도 중국은 비판을 이어가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중국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선을 한국이 넘었다고 판단해 이처럼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입장에서는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가 건드려서는 안 될 선인 셈이다. 아울러 중국은 북한뿐 아니라 자신들까지 겨냥한 한·미·일 3국 공조의 강화를 견제하기 위해 3국 공조의 ‘약한 고리’인 한국을 길들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더욱 강해질 경우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경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일각에서 나온다.
전문가들은 중국에 대한 ‘원칙적 대응’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자칫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균형 있는 외교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난달 19일 윤 대통령의 로이터통신 인터뷰가 보도된 뒤부터 한·중 간 설전이 불붙었다. 윤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대만해협 긴장 상황을 두고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다음 날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인 자신의 일”이라며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의 ‘부용치훼(不容置喙)’는 강한 어조로 상대방을 비판할 때 쓰는 표현인데, 이를 상대국 정상에게 내뱉은 것이다. 한국 외교부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이라며 “국격을 의심케 하는 심각한 외교적 결례”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친강 중국 외교부장은 포럼 연설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 불장난을 하는 자는 반드시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이나 윤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윤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중국은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지난달 26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해서도 항의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과 한국은 대만 문제의 실제를 똑바로 인식하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며 대만 문제에서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관영 CCTV는 한·미 정상회담에 관한 한국 내 부정적 의견을 집중 보도했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한국 정부가 ‘압도적인 친미정책’을 펼친다고 비판했다.
한·중 수교 30주년이던 지난해에는 중국과의 관계가 지금처럼 나쁘지는 않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3월 윤 대통령에게 당선 축전을 보내 “중·한 양국은 가까운 이웃이자 중요한 협력 동반자”라고 밝혔고, 윤 대통령은 “한·중 관계가 더 발전할 것을 확신한다”고 화답했다.
양국 고위급 교류도 비교적 활발히 이뤄졌다. 지난해 9월 중국 공산당 서열 3위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국회의장 격)이 방한했고, 11월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미 정상회담 2주 전인 지난달 12일에는 시 주석이 광저우의 LG디스플레이 생산기지를 ‘깜짝’ 방문해 한·중 간 우의를 강조하는 덕담을 했다. 시 주석이 한국계 기업을 찾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 안유화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는 “중국으로선 나름 잘 지내보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대만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을 두고 “섬세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는 “대만 문제는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부분인데 불가피하게 건드린다고 해도 수위와 표현의 방식을 조절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도 “윤 대통령이 굳이 건드리지 않아도 될 것을 건드린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당장은 중국이 발언 수위를 높인 정도지만 상황이 악화된다면 경제 보복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요소수 사태 때처럼 세관 통과 지연 등의 방식으로 중국이 작은 경제 보복부터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도 “요소수와 같이 우리가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핵심 자원만 1000여개에 달한다”며 “이런 부분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산업계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해 대응 수위를 조절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전문가들은 한·미, 한·미·일 협력도 중요하지만 우리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중국과의 관계 역시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황 교수는 “중국의 핵심 이익은 직접 건드리지 않고 한·중 관계를 자극할 수 있는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우리 정부가 미국에만 매달리고 중국을 적으로 대하는 건 아니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외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지금부터라도 중국과 관련한 이슈를 갖고 외교 소통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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