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이상한 책을 찾는 손님

2023. 5. 6.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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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은 유난히 이상한 책을 찾는 손님이 자주 온다.

손님이 그런 책을 찾으면 예전엔 "에이, 손님. 그런 책이 어디 있어요?"라며 되물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헌책방에서 일하다 보니 이젠 멀쩡하게 생긴 손님이 '외계인과 인사하는 법'이나 '간단하게 만드는 타임머신' 같은 책 제목을 말해도 제법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됐다.

세상엔 책에 빠져 살다 돈키호테처럼 정말로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도 있지만, 내 경험상 그런 손님이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손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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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헌책방은 유난히 이상한 책을 찾는 손님이 자주 온다. 새 책을 파는 서점의 사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헌책방은 역시 그렇다. 도무지 없을 것 같은 책도 찾아보면 나오는 게 헌책방이다.

손님이 그런 책을 찾으면 예전엔 “에이, 손님. 그런 책이 어디 있어요?”라며 되물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헌책방에서 일하다 보니 이젠 멀쩡하게 생긴 손님이 ‘외계인과 인사하는 법’이나 ‘간단하게 만드는 타임머신’ 같은 책 제목을 말해도 제법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됐다. 그런 책이 없다는 걸 증명하지 못한다면 일단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누군가 책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서 “코 후비는 방법에 관한 책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헌책방 주인이라면 그를 정신 나간 사람 대하듯 쫓아내면 안 된다. 세상엔 책에 빠져 살다 돈키호테처럼 정말로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도 있지만, 내 경험상 그런 손님이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손님이니까. 그리고 미국 작가 롤랜드 플리켓이 쓴 ‘코파기의 즐거움’이란 책은 실제로 존재한다. 개그가 아니다. 그 책은 코 후비는 방법을 고찰한 제법 진지한 연구서다.

언젠가는 한 손님이 ‘장기이식 쉽게 하는 법’이라는 책을 찾는다기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뭐라고? 장기이식? 게다가 그걸 책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나? 설마 저 사람, 요즘 뉴스에 심심찮게 나오는 무서운 범죄자는 아닐까? 나는 손님 얼굴을 쳐다보며 오만 가지 상상을 다 했다. 물론 당시엔 내가 책 제목을 잘 못 알아들은 거였다. 손님이 말한 책 제목은 ‘장기 쉽게 이기는 법’이었다. 그러나 장기이식이라고 해도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 책이 아닌가. 다른 손님은 ‘접골(接骨) 배우기’라는 책을 찾았다. 그런 책은 정말로 있었다. 그런데 접골이라니? 어긋난 뼈를 맞추는 기술을 애초에 책으로 배울 수 있기는 한 걸까?

‘포커에서 무조건 이기는 법’을 찾던 손님도 기억난다. 당연히 그 책도 실제로 존재하는 책이지만 우리 책방에는 없었다. 그런데 포커에서 무조건 이기는 방법이라니…. 내가 그런 신묘한 수단을 알고 있으면 굳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책까지 쓴 걸 보니 마음이 선한 사람인가 보다. 아니면 허풍쟁이 사기꾼이거나.

요즘 나오는 신간을 때때로 살펴보면 예전처럼 이상한 제목을 달고 나오는 책이 드물다. 옛날 독자들의 현실감각이 지금보다 낮았기 때문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독자들이 너무나도 현실이라는 세계에 붙들려 사는 게 문제가 아닐는지.

혁명가 체 게바라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지자”라고 말했다. 장기이식이나 접골을 책으로 배워보자는 말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크고 넓은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복잡하고 불확실한 이 세상은 현실에 묶여 있기보다 확실한 꿈을 가지고 살아야 풍요롭다. 현실을 만드는 이는 언제나 꿈을 꿨던 몽상가였음을 잊지 말자.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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