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 평안하기를

서윤경 2023. 5. 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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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 하나님을 만나다] <22> 강화도 교동 순례자의교회
강화군 교동도 순례자의교회는 교회를 찾은 이들이 2.4평(약 7.9㎡)의 작은 예배당 안에서 ‘평안’과 ‘쉼’을 얻으며 하나님과 독대하는 공간이다. 교동도(강화)=신석현 포토그래퍼


문은 좁고 낮아 방심하면 정수리를 찧기 일쑤다. 그래서 붙은 이름도 ‘좁은 문’이다. 문을 지나서 길을 따라 만난 교회는 한 사람이 들어가면 조금 여유롭고 두 명이 들어가면 좁다.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으니 비로소 보이는 풍경, 창 너머 십자가다. 바깥에 세워진 십자가는 바람과 비를 맞아 색이 바랬다.

순례자의교회 종탑은 마태복음 8장 말씀 속 ‘새집’에서 가져왔다. 교동도(강화)=신석현 포토그래퍼


지난달 28일 찾은 강화군 교동도 순례자의교회(김한윤 목사) 종탑에 쓰인 ‘길 위에서 묻다’라는 질문이 보인다. 교회를 찾는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답을 찾기 위해 예배당 문을 열었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공간

예배당 문 위엔 ‘평안’이라 적힌 명패가 있고 문을 열면 물고기 모양의 종에서 소리가 난다. 교동도(강화)=신석현 포토그래퍼

예배당 입구 명패에 쓰인 ‘평안’이라는 글귀를 보며 문손잡이를 잡으니 문 위에 달린 물고기 모양의 종에서 ‘딸랑’ 소리가 난다. 문을 여는 순간 ‘세상에서 제일 작다’는 수식어는 의미 없이 느껴진다. 2.4평(약 7.9㎡)의 예배당 공간은 작지만 크다.
예배당 정면 벽은 회색 파벽돌로 로마시대 지하교회인 ‘카타쿰바’를 표현해 경건함이 느껴진다. 창 너머로 바깥에 세워진 십자가가 보인다. 교동도(강화)=신석현 포토그래퍼


문을 열면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은 회색 파벽돌로 구성했다. 유럽의 지하교회 ‘카타쿰바’를 떠올리게 한다. 종교가 있건 없건 예배당을 찾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교감하며 종교적 감흥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꾸몄다. 대신 다른 쪽 벽과 천장은 원목으로 마감해 따뜻함을 준다.

정면 벽의 작은 창으로는 예상 못 한 풍경이 펼쳐진다. 창 너머 외부에 세워진 십자가다. 무릎을 꿇고 앉으니 색바랜 십자가가 보인다.

경건함과 엄숙함 속에서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는 예배당이 작지만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평안’과 ‘쉼’도 경험한다.

그래서 교회 밖 풍경은 반전이다. 미색의 외벽, 박공지붕에 적벽돌로 포인트를 준 벽면 모서리는 ‘테마파크’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예쁘다. 눈길을 끄는 건 외벽 하단이다. 제주도에서 가져온 현무암이다.

이 교회의 모델인 제주도 한경면 용수리 순례자의교회와 설계도. 순례자의교회 제공


교동도 순례자의교회 시작을 보여주는 게 이 현무암이다. 제주 올레길 13코스에 속한 한경면 용수리에 똑같은 모양의 교회가 있다. 정확히 설명하면 2011년 세워진 첫 번째 순례자의교회다.

김태헌(58) 목사가 ‘작은교회’를 지향하며 세운 게 순례자의교회다. 2018년 제주 동회천에 지은 두 번째 순례자의교회는 모양도 크기도 다르다. 교동도 순례자의교회가 첫 번째 교회의 형태를 따라간 데는 이유가 있다.

김태헌 목사는 “지역에 맞게 형태를 달리하자고 생각했는데 순례자의교회를 보면 사람들이 평안을 기억하면 좋겠다 싶어 같은 형태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첫 교회를 설계하며 김태헌 목사가 염두에 둔 건 ‘예수님의 삶’이었다. 광야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예석건축연구소 김상구 소장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나 김 소장이 설계도를 가져왔다. 눈여겨볼 곳이 ‘종탑’이었다. 김 소장은 “설계하며 기도하던 중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새들도 거처가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마태복음 8장 20절”이라며 “새집 모양으로 종탑을 지어 교회를 찾는 이들이 위안받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김태헌 목사는 “교회를 예쁘게 꾸민 건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정원, 말씀 담은 전도의 공간

순례자의교회 건축은 조경에서 시작된다. 테마파크처럼 느껴지는 교회 외관이 경건함을 잃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주와 교동도 순례자의교회 조경은 더숲연구소 이상근 소장이 맡았다.

이 소장은 “처남인 김태헌 목사한테 얽혔다”는 말로 조경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어 “제주는 김태헌 목사가 구상해 놔 크게 관여하지 않았고 교동도는 김한윤 목사와 함께 구상했다”며 “모래시계처럼 허리가 잘록한 땅인 데다 단차가 있고 면적은 작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전했다.

오르막은 길을 내면서 야트막한 계단을 통해 올라가도록 했다. 길을 따라 발목 높이의 얕고 하얀 담이 굽이치듯 이어졌다. 정원 공간을 꾸민 건 식물이다. 이 소장은 “사계절이 늘 보기 좋아야 하는데 건조해도 잘 자랄 수 있는 그라스 등을 심었다”고 설명했다.

교동도 순례자의교회 정원은 하얀 ‘좁은 문’과 길을 따라 만들어진 하얀 담장, 식물로 꾸몄다. 길 곳곳 타일로 동그랗게 표현한 곳은 쉼을 의미하는 ‘참’이다. 교동도(강화)=신석현 포토그래퍼


교동도 순례자의교회를 섬기는 김한윤(57) 목사는 ‘춤추는 정원’이라고 표현했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2m 높이의 그라스와 길 따라 난 하얀 담을 보고 천사들이 춤추는 모습을 떠올렸다. 이 소장도 “적절한 표현”이라고 공감했다.

7개, 7개, 3개의 계단도 의미가 있다. 완전함을 뜻하는 7, 삼위일체의 3이다.

교회를 찾은 사람들이 김한윤 목사와 대화할 수 있는 곳은 교회 초입의 단층 건물에 마련된 ‘순례이야기’ 공간이다. 주전자와 커피 원두를 담은 통, 커피잔 때문에 카페처럼 보인다. ‘순례 차림’이란 이름의 메뉴판엔 커피, 개복숭아차, 밀크티가 쓰여 있다. 그런데 가격은 없다.

김한윤 목사가 “직접 볶은 에티오피아산 커피”라며 커피를 내리자 커피 향이 공간을 채운다. 방문객들도 스스럼없이 오간다. 서울 치유하는교회에서 왔다는 성도들은 “커피 마시러 왔다”며 들어섰고 또 다른 방문객은 “화장실 좀 사용하겠다”며 들렀다.

‘순례이야기’를 나와 길을 걸으니 바닥에 타일로 동그랗게 꾸민 게 보인다. 김한윤 목사는 ‘길(道)’이라는 뜻의 ‘참’이라고 했다. 김한윤 목사는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을 해석해 만들었다”며 “3개의 참은 쉬어가는 공간이자 계획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좁은 문’도 시선을 잡는다. 김태헌 목사는 “처음엔 ‘좁은 문’이 없었는데 교회가 알려지면서 몰려온 사람들이 관광하듯 사진만 찍고 떠났다”면서 “‘이러려고 만든 게 아닌데’ 싶었고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하도록 기회를 주자는데 생각이 미쳤다”고 했다.

몸을 숙여 문을 통과한 뒤 허리를 펴면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제주 순례자의교회가 현무암의 사각형 문이라면 교동도는 하얀색의 아치형 문이다.

교회다움을 고민하다

김태헌 목사가 작은교회를 짓는 데 힘을 쏟는 건 이유가 있다. 주는 힘, ‘영성’ 때문이다. 김태헌 목사는 “작은교회를 세우는 건 기독교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며 “비기독교인도 작은 공간에 앉아 기독교의 영성을 느끼고 간다”고 말했다.

“자신도 비기독교인의 삶을 살았다”는 김태헌 목사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늦깎이 목회를 시작했는데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 안에서 교회다움을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교회다움’의 목마름을 느끼던 그는 “차별 없이 다가와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건축물을 통해 나타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기도했는데 ‘네가 한번 해 보라’는 응답을 받았다”고 했다.

덕분에 그저 예뻐서 찾은 방문객 중엔 평안과 쉼을 얻고 ‘영성’을 경험했다. 김태헌 목사는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는 교회가 되기를 희망했다”며 “가끔 교회에 들어갔다가 회심한 이들을 만나는데 그들에게 건네준 성경책만 280권이 넘는다”고 말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교회에 온 뒤 마음을 돌린 사람도 있다. 김태헌 목사는 “직접 전화를 걸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교회를 찾았다가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한윤 목사도 “마음의 짐을 안고 예배당에 들어갔다가 눈물을 흘리고 나오시는 분들이 많았다”고 첨언했다.

제주 순례자의교회엔 매년 3만5000여명이 찾고 있다. 교동도엔 2020년 6월 건축 후 현재까지 1만5000여명이 방문했다. 이들 중 30% 이상이 비기독교인이다.

김태헌 목사는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17개 작은교회를 세운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 교회들을 선으로 연결하면 십자가 모양이 된다. 첫 번째가 교동도 순례자의교회다. 파주의 임진각 순례자의교회도 기초공사를 마쳤다. 오는 8월쯤이면 문을 열 것으로 보인다. 전남 무안과 강원 원주, 경남 통영에도 순례자의교회를 준비하고 있다.

교동도(강화)=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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