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어린이날이면 생명의 집에 갑니다

한제원 2023. 5. 5. 2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선물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부하는 우리 가족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제원 기자]

몇 년 전부터, 그러니까 큰 아이가 어린이날과 어린이날엔 선물을 받는다는 걸 인지하고 나서부터 어린이날이면 집 근처에 있는 생명의 집에 찾아간다. 아기 때에도 깨끗이 입은 옷들과 아기용품, 기저귀 등을 기부하러 간 적은 있는데 생명의 집이 집 근처로 확장 이전을 하고, 아이들이 어린이날과 선물의 의미, 기쁨을 알게 된 후로는 쌈짓돈을 모아 아이들의 이름으로 기부를 한다. 벌써 몇 년 되었다.
 
▲ 올 해 어린이날 기부금 전달, 아이들이 훌쩍 자란 기분이다.
ⓒ 한제원
 
너희들이 선물 받는 날은, 너희도 선물을 주는 날이라고 생명의 집에 사는 아기 동생들에게 형아들이 선물을 주자고 말한다. 아이들은 왜 선물 박스가 아닌 기부금 봉투를 선물이라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가 선물을 준비해 주는 건데 너희들이 아기들 엄마가 아니라 아기들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니까 이렇게 기부금으로 주는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이 글씨와 그림을 그리게 된 후로는 간단한 그림 편지도 함께 그린다. 올해는 아기 동생들에게 어린이날 축하한다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메시지를 담은 추상화를 그려 가지고 갔다. 작년까지는 내가 소액이지만 기부금을 챙겨 주었는데 올해엔 세뱃돈을 모아 둔 복주머니를 털었다.
 
▲ 어린이날 그림 편지  아기 동생들에게 건강하게 쑥쑥 자라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 한제원
 
아직 돈 욕심이 없는 아이들이라 복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어 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집에 왔다 갔다 하시는 할머니, 외할머니에게 천 원, 오천 원, 만 원씩 받는 용돈을 모아 둔다. 아직 큰 물욕이 없고 간식도 엄마 아빠가 사주다 보니 돈 쓸 일이 없어서 그런가, 복주머니의 돈으로 아기들 선물을 주자는 나의 말에 선뜻 동의하였다.

내년, 내후년에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만약 복주머니의 쌈짓돈을 기부금으로 내는 것을 아까워 한다면 용돈을 받을 때마다 일부를 기부금 용도로 떼어 놓고 혹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채워주는 방식으로 어린이날 아기 동생들을 위한 선물을 계속 이어 가고자 한다.

내가 선물 받는 날, 다른 친구들도, 동생들도 모두 선물을 받는 날임을 생각하고 혹시라도 선물을 못 받아 슬픈 친구가 있을지 모르니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나는 엄마 아빠와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못하였다. 어린이날에도 특별히 큰 선물을 받아 뛸 듯이 기뻤던 기억은 없다. 6학년 나의 마지막 어린이날에 큰언니가 엄마를 졸라 나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가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때의 기쁘고 행복하고 고마웠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선물의 기억은 없지만 나의 유년과 학령기 시절에 결핍의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나는 행복하게 잘 자란 사람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이렇게 멀쩡하게 키워주신 엄마 아빠께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경제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더 크게 사랑해 주시고, 아껴 주시고 귀하게 키워 주신 덕이다. 이것을 어떻게 기억하냐 하면, 국민학교 시절 어린이날에 같이 놀던 친구가 아빠에게 무엇 무엇 무엇을 사 달라고 해야겠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는데 친구가 말한 그 물건들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우리 언니들도 가질 수 없었던 비싼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난 어린이날이라고 특별한 선물을 받고 있지 않다는 걸, 어린이날에 다른 친구들은 이런 선물을 받는다는 걸 그때 알았지만 나는 괜찮았다. 그 물건이 갖고 싶다거나 선물을 받지 못함에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철이 일찍 들었던 건지, 그냥 물욕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너무 철이 없어 그게 부러운 건지 어쩐 건지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건지 모르겠다.

다만 나의 어린이 시절은 선물의 기억보다는 6학년의 어린이날 그 사람 많고 복잡했던 놀이동산에서 엄마의 피곤한 얼굴, 언니의 에너지 넘치는 얼굴 행복하게 남았다. 두 분 다 나 대신 줄을 서느라 힘들었는데, 요새는 가족 한 명이 대표로 줄 서는 것이 불가능 하지만 그때는 그게 가능했었다. 
 
▲ 1년 전  어린이날 기부금 전달
ⓒ 한제원
 
 
▲ 2년전 어린이날 기부금 전달
ⓒ 한제원
 
▲ 3년 전  어린이 날 기부금 전달
ⓒ 한제원
 

우리 두 아이들은 넉넉하진 않아도 양가 부모님과 고모, 이모들의 사랑까지 받으며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다. 때 되면, 그러니까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두 놈의 생일 (한 명이 생일 이어도 두 놈 다 선물을 받는다), 두 번의 명절에 공식적으로 선물을 받고 그 밖에 소소한 선물들과 용돈을 자주 받는 아이들이다.

선물을 당연히 너무 자주 받기만 하는 걸로 알게 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받아서 기쁜 마음을 다른 친구들에게도 주는 마음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매 년,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엔 가까이에 있는 동생들의 집으로 기부금을 보낸다.

아이들이 원하는 커다랗고 멋진 로봇 하나를 더 살 수 있지만 그 대신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간다.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 주는 것으로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채워주고 아이들은 혹시 소외되는 이웃이 있는지 주위를 돌아보는 눈을 배웠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선물 받는 날은 다른 동생들한테도 선물 주는 거야,라고 하니 "내 생일에도?"라고 되묻는 아이. 아이들의 교육비가 들어가기 전에는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 아이들의 생일에도 기부를 했었는데 솔직히 최근 한두 해는 그것까진 힘들어서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가 그렇게 되물으니 쌈짓돈을 모아서 네 생일에도 동생들 선물 주러 가자고 이야기해 주었다. 엄마는 좋은 마음으로 주는 만큼, 더 크게 너희에게 돌아올 것을 믿는다고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사실 엄마가 너희에게 줄 것은 그렇게 세상을 사는 마음 밖에 없다고 속으로 말한다. 

모든 어린이들에게 행복한 어린이날이길 바라며.
2023년 5월 5일, 비 오는 어린이날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올릴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