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에 없는 정책으로 효과 분석한 '양두구육' 탄소중립계획
[최기원 기자]
▲ 기후위기비상행동을 비롯한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 3월 22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환경부의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정부안' 첫 공청회에 참석해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의 발언 때 기습 손팻말·펼침막 시위를 벌이고 있다. |
ⓒ 연합뉴스 |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부터 '일본 무릎 발언 주어 생략 논란'에 이르기까지 이 정부가 천연덕스럽게 국민을 기망하는 사례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부처들까지도 영향을 받는지, 이태원 참사에서 행안부는 책임 회피를 위해 거짓말을 하다 장관이 탄핵까지 당했고, 기재부는 숙원 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2월 12일 기재부는 최상대 2차관을 면담한 영국 예산책임청 의장이 한국의 재정준칙 법제화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으나, 영국 예산책임청은 의장이 한국의 재정준칙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고 밝힘)
이번 건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대통령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작성한 탄소중립 국가기본계획에 관한 일이다.
실제 계획 아닌 엉뚱한 전제로 경제효과 분석
▲ 정부 발표 탄소중립기본계획 181쪽 <경제적 효과 분석> |
ⓒ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
그런데, 이 보고서가 전제한 정책은 기본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즉 시행할 계획이 없는 엉뚱한 정책을 놓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보고서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다.
(정책수단) 탄소가격의 세수는 고용지원에 집중 투자한다고 가정하여 분석
* 고용비용(근로소득세 인하 등)을 낮춘다고 가정
그러나 182쪽에 이르는 기본계획 속에 이런 정책은 없다. 탄소배출에 가격을 매겨 배출을 억제하는 대표적인 정책은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인데, 탄소세는 현재 한국에서 시행하지 않을 뿐더러 시행을 검토하겠다는 언급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배출권거래제는 시행 중이기는 하나, 거래수익 전액으로 고용을 지원하지도 않고 그럴 계획도 없다. 오히려 기본계획에는 '온실가스 감축기업을 대상으로 시설·공정개선 지원 확대' 내용만 있다. 즉 정부 계획은 탄소가격 수익(기후대응기금)으로 기업 지원을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탄소가격 수입을 고용지원에 집중 투자할 경우 생산 활성화로 경제성장률에 큰 변동 없이 유지 가능'
그렇다면 왜 계획은 이렇게 세우지 않았나? 대한민국 정부의 직무유기와 거짓말을 가장 유려하게 포장하는 방식은 전통적으로 '유체이탈'이었다. 해야 할 의무를 진 자가 평가하는 역할로 가면을 바꿔 쓰는 식이다.
▲ 전국에서 모인 환경단체 회원들과 시민들이 14일 오후 세종 정부세종청사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앞에서 ‘414 기후정의파업, 함께 살기 위해 멈춰’ 집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의 기후위기 가속화 정책에 반대하며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를 향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
ⓒ 유성호 |
탄소세·배출권거래제, 진작 제대로 했어야
윤석열 정부가 일종의 '망상'을 기초로 한 분석을 내놓은 이유는 '맞춤형 결론'을 위해서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대규모 에너지 산업 전환 투자와 재정 정책이 수반되지 않은 현 정부의 탄소중립계획으로는 탄소 감축이 전통적 고배출 탄소집약 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도드라질 것이고, 성장과 고용 외 도통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보수주의자들의 경제관 하에서 탄소중립에 따른 GDP와 고용 감소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러니 쥐꼬리만한 탄소가격 수입이라도 고용에 '몰빵'한다는 거짓 가정을 통해 경제에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끔 만들게 할 동기가 충분한 것이다. 실제로 2021년 한국은행은 탄소가격 정책 부과시 GDP성장률이 연평균 0.08~0.32%p 하락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평균 0.02~0.09%p상승한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BOK 이슈노트 기후변화 대응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 2021년 9월 17일)
지금까지의 대한민국 탄소가격제는 효과가 미미했다. 배출권거래제는 유상할당 비중이 10%에 불과하고 탄소고배출 산업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서 감축효과가 없다시피 했다. 가령 포스코는 국내 탄소배출의 12%를 차지하는데 배출권은 98%를 무상으로 할당받는다. 석탄, 정유업, 시멘트, 반도체 같은 대표적인 탄소집약 업종도 무상할당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배출권 수익 전액으로 기업과 국민에게 재정지원을 한다 해도 수익 자체가 미미해서 실효성이 없다. 지난해 잠정 배출권 수입은 4451억원으로 지난해 명목 GDP 2151조원의 0.02%인데, 이 정도 규모로는 경제에 유의미한 변화 자체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 올해 완공돼 가동에 들어갈 삼척화력발전소의 사업비만 해도 5조원에 달하는데 연간 배출권 수익이 여기의 10분의 1도 못 미치는 현실이다. 정부가 발표한 탄소중립기본계획에서 유상할당 확대는 윤석열정부 4년차인 2026년부터고, 얼마나 확대할지 언급은 없다.
탄소세 도입은 더욱 요원하다. 정부가 예상하는 톤당 탄소가격 6만원을 상정해 탄소세를 부과한다면 휘발유는 리터당 130원, 경유는 160원 추가 과세를 해야 한다. 그만큼 가격이 올라간다. 대한민국은 공급망 위기 이후 OECD에서 유류세를 가장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깎아준 나라인데, 전기와 가스 요금까지 동결해 공기업에 천문학적 적자를 쌓아두는 방식으로 물가를 관리할 정도로 화석연료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정부가 추가 부담을 감내할 리 만무하다.
탄소 고배출자들은 낮은 탄소가격으로 큰 혜택을 누리면서도 기후위기에 따른 고통은 주로 탄소 저배출자들인 저소득층이 짊어지는 구조가 정착됐다. 탄소세를 도입하고 물가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세수를 이용해 대규모 지원을 하는 입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기본소득당 용혜인 안, 정의당 장혜영 안)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거짓말이 문제적인 건, 그들도 이미 탄소가격제가 전례없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해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해법을 필사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려는 계획을 정당화하는 데 해법의 일부를 활용하는 기만적 태도 때문이다.
현대과학은 지금 즉시 전면적이고 급속한 탄소감축 정책을 이행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원전이 다 지어질 때까지, 탄소포집기술이 상용화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가장 효과적인 감축 수단부터 활용해야 한다. 알면 용기있게 행하라. 윤석열 정부가 거짓말과 졸속 계획을 만회할 유일한 길이다. 양머리를 내걸었다면 지금이라도 양과 관련된 무언가를 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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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국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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