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답하는 마음" 강조한 기시다, 트라우마·강경론 뚫고 ‘호응 조치’ 나설까

정진우 2023. 5. 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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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총리가 오는 7일 한국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지난 3월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이후 50여일만에 답방이 성사됐다. 이번 방한은 셔틀외교 재개의 일환으로, 양 정상이 친교를 강화하고 미래지향적 협력 의제를 발굴하는 데 초첨이 맞춰졌다. 사진은 지난 3월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정상회담 당시 악수를 나누는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7일 한국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지난 3월 16일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셔틀외교 재개에 합의한 이후 52일 만에 방한하는 일정이 성사됐다. 일본 총리의 양자 방한은 2011년 10월 당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서울 방문 이후 12년 만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3일 윤 대통령을 접견한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을 통해 “한·일 관계 개선을 주도한 윤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을 높이 평가하며, 이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번 답방을 결심하게 됐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주도적으로 도출·이행한 데 대한 일본 측의 호응 조치가 기시다 총리의 방한으로 구체화했다는 의미였다.


12년 만에 셔틀 외교 방한, '친교 강화'에 방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3월 정상회담 직후 만찬에 이어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방한에서도 윤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에서 친교를 위한 홈파티로 기시다 총리를 대접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기시다 총리는 1박2일 일정 중 첫날엔 윤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교를 강화하기 위한 일정에 집중한다. 한국 도착 직후 현충원을 방문해 참배하고 이후 한·일 정상회담→공동 기자회견→만찬→관저 홈파티 순으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만찬에 이어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열릴 홈파티 형식의 친교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숯불 불고기와 청주를 대접한다. 이는 윤 대통령의 지난 3월 방일 당시 기시다 총리가 만찬에 이은 2차 친교 자리를 만들어 환대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당, 진보당과 함께 지난 4일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번 방한에서 한일의원연맹의 여야 간사단을 만나기 위한 초청 의사를 전달했지만, 민주당 측은 아직 참석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 뉴스1

이튿날엔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양국 간 의회 외교를 상징하는 한·일의원연맹 회장단을 만나는 일정이 준비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연맹의 여야 간사단에 초청 의사를 전달했지만, 윤 대통령의 대일(對日) 외교를 ‘굴욕’으로 규정한 더불어민주당 측에선 아직 참석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

이후 기시다 총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및 일본 경제단체연합회(經團連·게이단렌)와 함께 한·일 경제인이 참여하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다. 이 자리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포함한 6개 경제단체장이 참석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한 양국 공동 대응방안을 중심으로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분야를 한·일 미래협력의 핵심 분야로 확대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개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의 문' 열렸는데…미래만 보는 日


일본 측은 ▶셔틀외교 복원 ▶한·일 정상 간 신뢰 강화 ▶반도체 등 미래 협력 의제 발굴을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방한의 3대 과제로 꼽았다고 한다. 한·일 관계 정상화에 이은 협력 관계 강화를 위해 기시다 총리가 첫발을 내딛는 상징적 방한이라는 게 일본 측의 기류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3월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하며 "물컵에 비유하면 물이 절반 이상 찼다. 나머지 반을 채우는 것은 일본의 몫"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문제는 미래만 바라보는 일본과 달리 국내에선 과거사 문제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시선이 강하단 점이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지난 3일 “기시다 총리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과를 강요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한·일 정상이 미래의 문을 연다고 과거의 문이 닫힌 건 아니다”라고 말한 것 역시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기시다 총리는 이번 방한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전된 사죄를 표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협의 과정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담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기시다 총리가 직접 언급하는 방안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 측은 추가적인 사죄에 대해 선을 긋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사죄 불가론’을 강조해 온 자민당 강경파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셈이다. 자민당 강경파 사이에선 사죄 문제와 관련 “기시다 총리가 추가적인 사죄를 표명할 경우 과거사의 짐을 후대에 물려주는 결과가 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위안부 합의가 남긴 '과거사 트라우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15년 당시 외무상 자격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합의의 핵심 결과물인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됐고,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무효화됐다. 사진은 2015년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외교장관 회담 직후 위안부 합의 사실을 발표하는 모습. 중앙포토
기시다 총리가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었단 점도 전향적인 사죄 표명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꼽힌다. 기시다 총리는 2015년 당시 외무상 자격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도출하는 데 역할했다.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설득한 끝에 이뤄낸 성과였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명시한 이 합의는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무효화하며 한·일 갈등의 상징적 요소로 자리 잡았다.

외교 소식통은 “기시다 총리로선 자신의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도출된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뒤집어지고 한·일 갈등의 최전선에 서는 모습을 바라보며 과거사 문제 자체에 대해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이라며 “강제징용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기존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은 채 강경했던 것 역시 위안부 합의의 여파였다”고 말했다.


오염수 방류, 한·일 추가 검증 논의


일본은 후쿠시마 오염수를 올해부터 해양 방류할 예정이다. 저장탱크의 용량이 포화 직전인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사진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 오염수 저장 탱크가 빼곡한 모습. 연합뉴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처리수) 문제 역시 이번 기시다 방한의 뇌관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증 절차에 따라 올해부터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인접국인 한국에선 방사능 공포가 여전한 탓이다. 이에 따라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선 오염수 방류 전 안전성을 추가로 검증하고, 한국 국민이 이를 납득할 수 있는 조치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실은 지난 3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해 “한국이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한·일 간 여러 정서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방류 오염수에 대한) 한·일 간 별도의 과학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모니터링과는 별도의 검증 절차가 필요하단 의미다. 다만 일본은 한·일 간 별도의 검증 절차를 신설할 경우 다른 국가에서도 연쇄적으로 양자 간 추가 검증을 요구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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