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답하는 마음" 강조한 기시다, 트라우마·강경론 뚫고 ‘호응 조치’ 나설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7일 한국을 방문해 윤석열 대통령과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지난 3월 16일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셔틀외교 재개에 합의한 이후 52일 만에 방한하는 일정이 성사됐다. 일본 총리의 양자 방한은 2011년 10월 당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서울 방문 이후 12년 만이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3일 윤 대통령을 접견한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을 통해 “한·일 관계 개선을 주도한 윤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을 높이 평가하며, 이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번 답방을 결심하게 됐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을 주도적으로 도출·이행한 데 대한 일본 측의 호응 조치가 기시다 총리의 방한으로 구체화했다는 의미였다.
12년 만에 셔틀 외교 방한, '친교 강화'에 방점
이튿날엔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양국 간 의회 외교를 상징하는 한·일의원연맹 회장단을 만나는 일정이 준비되고 있다. 기시다 총리는 연맹의 여야 간사단에 초청 의사를 전달했지만, 윤 대통령의 대일(對日) 외교를 ‘굴욕’으로 규정한 더불어민주당 측에선 아직 참석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
이후 기시다 총리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및 일본 경제단체연합회(經團連·게이단렌)와 함께 한·일 경제인이 참여하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한다. 이 자리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포함한 6개 경제단체장이 참석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한 양국 공동 대응방안을 중심으로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분야를 한·일 미래협력의 핵심 분야로 확대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개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의 문' 열렸는데…미래만 보는 日
일본 측은 ▶셔틀외교 복원 ▶한·일 정상 간 신뢰 강화 ▶반도체 등 미래 협력 의제 발굴을 이번 기시다 총리의 방한의 3대 과제로 꼽았다고 한다. 한·일 관계 정상화에 이은 협력 관계 강화를 위해 기시다 총리가 첫발을 내딛는 상징적 방한이라는 게 일본 측의 기류다.
문제는 미래만 바라보는 일본과 달리 국내에선 과거사 문제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시선이 강하단 점이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지난 3일 “기시다 총리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과를 강요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한·일 정상이 미래의 문을 연다고 과거의 문이 닫힌 건 아니다”라고 말한 것 역시 이같은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기시다 총리는 이번 방한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전된 사죄를 표명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협의 과정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담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기시다 총리가 직접 언급하는 방안을 요청했다.
하지만 일본 측은 추가적인 사죄에 대해 선을 긋는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사죄 불가론’을 강조해 온 자민당 강경파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셈이다. 자민당 강경파 사이에선 사죄 문제와 관련 “기시다 총리가 추가적인 사죄를 표명할 경우 과거사의 짐을 후대에 물려주는 결과가 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위안부 합의가 남긴 '과거사 트라우마'
외교 소식통은 “기시다 총리로선 자신의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도출된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뒤집어지고 한·일 갈등의 최전선에 서는 모습을 바라보며 과거사 문제 자체에 대해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이라며 “강제징용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기존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은 채 강경했던 것 역시 위안부 합의의 여파였다”고 말했다.
오염수 방류, 한·일 추가 검증 논의
대통령실은 지난 3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해 “한국이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한·일 간 여러 정서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방류 오염수에 대한) 한·일 간 별도의 과학적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모니터링과는 별도의 검증 절차가 필요하단 의미다. 다만 일본은 한·일 간 별도의 검증 절차를 신설할 경우 다른 국가에서도 연쇄적으로 양자 간 추가 검증을 요구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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