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감정은 어떤 이름인가요?
[이정희 기자]
▲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
ⓒ 책 읽는 곰 |
이 생소한 '언어'들은 마리아 이바시키나의 그림책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마리아는 러시아 모스크바 출신으로 독립출판을 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이 책으로 상하이 국제 아동도서전 황금바람개비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세상 모든 언어에는 복잡한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들이 있어요.'
정말 그렇다. 중학교, 아니 요즘은 거의 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우는 우리나라, 영어에 꽤나 익숙한 문화권이라 자부할 수 있는데 '스트라이크히도니아'(strikehedonia)란 말이 신선하다. 일을 다 끝마쳐서 더는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이란 뜻이란다.
▲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
ⓒ 책 읽는 곰 |
이집트, 어둠이 내린 거리에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 두런두런, 마치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한데, 사마르(سَمَر), 해가 저물고 나서도 한참 지난 늦은 시간까지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란다. 그 장면, 그 단어만으로도 오래 전 골목길, 교정...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네덜란드는 어떨까? 석양이 드리운 듯 장밋빛으로 물든 운하의 다리 위에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아이 셋을 앞에 태우고 지나가는 아버지, 거기에 헤젤리흐(gezellig)란 단어가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만들어 내는 감각, 자신보다 더 굉장한 것에 속해 있다는 기분,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이란 게 자신보다 더 굉장한 것에 속해 있다는 기분이구나! 또 이렇게 새삼 발견하게 된다.
스웨덴 말에 스물트론스텔레smultronställe)는 딸기밭이란 단어다. 딸기밭이 어때서? 그런데 이 딸기밭은 세상으로부터 숨고 싶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 찾는 곳을 말한다니, 나의 딸기밭은 어딜까, 이렇게 생각은 흘러간다.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은 묘하다. 작가가 찾아낸 17개 나라의 풍경에, 몇몇 단어와 그 뜻들을 더해놓은 단촐한 그림책임에도, 한 장 한 장 넘기는 순간에 많은 상념들이 오간다. 여러 나라의 단어들을 모아놓은 만큼 그림책은 기승전결의 스토리 라인이 없는데도, 한 나라에서 찾은 단어들은 또 다른 나라의 풍광과 단어들을 만나, 나의 이야기가 된다.
표지에 노년의 두 남녀가 바닷가에 앉아 있다. 그리곤 카푸네(cafuné)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빗어 내리는 일, 노르웨이에는 포켈스케트(forelsket)가 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란다.
인도의 '나즈'란 단어가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자부심과 자신감이라면, 그 옆에 사랑, 헤어지고 나서야 이해하게 되는 것이란 '비라하'가 있다.
▲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
ⓒ 책 읽는 곰 |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그 감정들이 살아숨쉴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감정들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도록 말이지요.
<감정 어휘>를 쓴 유선경 작가는 '인간은 감정이 전부'라고 단언한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자기 감정에, 자기 마음에 종종 길을 잃는다고 한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를 억누르며 살기도 하고, 종종 자신의 감정을 오독하는 경우도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이라는 책의 제목은 절묘하다.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지나온 감정들이, 내 안의 마음들이 읽혀진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간들의 의미를 짚어보게 된다. 읽다보면 저절로 내 마음이 머무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고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그 햇살을 바라보며 느끼는 행복, 황사 속에서도 꽃이 지기가 무섭게 파릇파릇 녹음을 빛내는 5월의 나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 감사할 일이다 싶다.
그리스어의 볼타(Βολτα). 목적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서 들려오는 소리와 풍경을 즐기는 일은 어떤가? 덴마크의 아르바이스글라에데(arbejglaede; 남들이 얼마나 우러러 보는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는 것)와 이집트의 루칸(어떤 일을 서두르지 않고 즐기면서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뿌듯한 마음)에 이르면 지금 나는 어디쯤 있는지 가늠해보게 된다.
사는 게 녹록하기만 할까. 독일어 토아슈루스파니크(torschlusspanik)처럼 잃어버린 기회와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은 만국공통이다. 그래도 바실란도(vacilando;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보다 그 여정이 더 중요하다)란다.
17개국의 언어를 통해 마리아 이바시키나가 하고픈 말은 무얼까? 때론 후회하고, 때론 주저앉아도, 비비르 알 디아(스페인어 vivir al dia)!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오늘에 충실하기!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기! 지금 여기, 나의 시간을 아끼고 사랑하자는 말이 아닐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통령 회식비 공개가 국가 중대이익 침해? 굉장히 미심쩍다"
- "아이는 다 컸지요?" 이 질문이 불편합니다
- 스쿨존 사고의 한국적 대안 : '초품아 영끌' 혹은 '가방 덮개'
- 분신 건설노동자 빈소에 '근조화환' 하나 안 보낸 여권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자유대한의 품으로 왔건만
- [이충재 칼럼] '윤석열 1년' 싸우기만 했다
- 아이 몸에 촘촘히 새겨주고 싶은 기억
- 예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여당 출입기자입니다
- 대통령 회동 재차 거절한 박광온 "대통령, 야당 대표 먼저 만나는 게 순리"
- 검찰, '천화동인 6호' 조우형 보강수사... 영장 재청구 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