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용기 있는 결단에 보답하는 답방"…주목되는 기시다의 입

박현주 2023. 5. 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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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의 방한과 함께 한ㆍ일 셔틀 외교가 12년만에 복원된다. 전문가들은 "3월 16일 도쿄 회담 이후 52일 만에 서울에서 또 회담이 열리는 만큼 짧은 준비 기간에 많은 성과를 이루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일본의 호응 조치에 대해 기시다 총리의 답방 이후로 미뤄온 측면이 있는 만큼 조금이라도 진전된 입장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중앙일보가 취재한 신각수 전 주일대사,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제언과 관련 협의 동향.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후 악수하는 모습. 뉴시스.


기시다, 서울에선 다를까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시다 총리의 과거사 관련 발언"이라며 "최소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담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취지를 반영한 피해자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발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제는 기시다 총리가 '후손들에게 언제까지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할 수 없다'고 했던 2015년 8월 '아베 담화'를 의식하는 보수 우파들의 반발을 넘어설 수 있을지 여부"라고 지적했다.

기시다 총리는 3월 16일 도쿄 회담에서 "1998년 10월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 전체를 계승하고 있음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기존 입장을 반복하는 데에 그쳤다는 지적과 함께, 일본이 계승한다는 역대 내각의 입장에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나 무라야마 담화뿐 아니라 아베 담화까지도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신 대사는 또 "기시다 총리는 조기에 한국 답방을 하고 이달 말 G7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지지율이 비교적 높을 때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국내 정치적 부담이 있지만, 이번 방한에서 강제징용 해법의 완결성을 담보할 호응 조치를 취하는 결단을 통해 힘들게 만들어진 한ㆍ일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고 기업 책임 잊지 말아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3월 6일 정부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 직후 일본 피고 기업의 호응 조치와 관련해선 감감무소식"이라며 "이들 기업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기금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은 잊지 않고 꾸준히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의 입'만 바라볼 게 아니라 피고 기업의 책임 있는 조치와 관련해서 진전이 있는지 짚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은 '제3자 변제'의 주체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출연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전경련과 게이단렌 등 양국 재계가 조성하기로 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도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게이단렌 회원사로서 회비를 내며 우회적으로 기여하는 게 전부다.

피고 기업의 역할 등 강제징용 해법 관련 후속 조치 논의가 회담 테이블에 정식으로 오를지도 미지수다. 4일 대통령실이 "아직 협의 중"이라며 밝힌 정상회담 의제는 안보, 첨단산업, 과학기술, 청년, 문화협력 등이었다.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연합뉴스.


한편 윤석열 정부가 '주요 8개국(G8)' 등극을 목표로 G7 국가와 외교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그간 비협조적이었던 일본의 지지를 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교수는 "오는 19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G7을 한국까지 포함해 G8으로 늘리는 논의가 이뤄질 경우 일본도 지지 의사를 밝힐 수 있도록 사전 설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 박진 외교부 장관이 프랑스·독일·캐나다 등 G7 외교장관을 연이어 만난 데 이어 오는 19일 히로시마 정상회의 전후엔 G7 정상들의 방한이 예상된다. 정부 소식통은 "일본이 'G7 중 유일한 아시아 국가'라는 지위를 양보하고 이번 G7을 계기로 한국의 가입에 힘을 실어준다면 이는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방류 '뇌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이 오는 7월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통해 미리 윤 대통령의 이해를 구하고 사전 정지 작업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한국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검증과 정보 공유가 이뤄진 뒤 방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이번 정상회담 공식 의제로 오를 전망이다. 한ㆍ일 정상회담 뿐 아니라 G7 회의에서도 일본의 최대 관심사는 오염수 관련 지지 획득이다. 일본은 지난달 16일 G7 환경 장관 회의에서도 "주요국이 오염수 방류 및 일본의 대응을 환영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독일 측의 공개 반박을 받았다. 당시 공동성명은 "일본의 투명한 노력을 환영한다"는 대목이 담겼는데, 당초 일본은 '오염수 방류를 환영한다'는 문구를 넣고자 했다.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국제원자력기구(IAEA) 모니터링과 별개로 한ㆍ일 양자 간 독자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고 일본과 소통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4일 "일본에 오염수 배출 관련 정보를 요청하고 자료를 받아 계속 검토·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리적 인접국인 한ㆍ일 차원의 별도 공동 조사나 협의체 창설 등도 거론된다.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지난 2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오염수 저장탱크를 설명는 모습. 연합뉴스.


한편 지난 3월 도쿄 회담 직후 독도 문제 거론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진 만큼 이번 회담에선 영토 문제를 둘러싼 감정 소모전이 없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양 교수는 "독도 문제는 애초에 의제에서 배제하거나 일본이 언급할 경우 우리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 앞두고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독도 방문(2일)→일본 외무성의 항의(3일)→한국 외교부의 반박(3일) 등 한 차례 공방이 있었기 때문에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이젠 협력 상징으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한ㆍ일 갈등과 대립의 상징이었던 반도체를 협력과 공존의 상징으로 바꾸는 역발상이 필요하다"며 "양국 모두 경제안보 정책의 핵심이 반도체이므로 협력을 도모하고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공조를 약속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협력은 정상회담 이튿날인 오는 8일 기시다 총리와 6개 경제단체장 면담에서도 논의될 전망이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메모리 반도체 제조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강국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협력체 '칩4'(미국ㆍ한국ㆍ일본ㆍ대만)의 일원이다.

지난 3월 일본이 반도체 소재 3종 수출 규제를 철회한 데 이어 지난달 28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 복귀시키면서 양국 간 경제 협력의 발판은 마련됐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3일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국장과 한ㆍ일 경제안보대화를 열었다.

지난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 파인그라스에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아키바 다케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이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 대통령실.


"윤 대통령의 용기 있는 결단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답방을 결심했다"는 기시다 총리가 부담 없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경제 및 안보 분야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기시다 총리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방한하는 첫 일본 총리인 데다, 문재인 정부에서 유명무실해진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외무상이었던 만큼 개인적인 리스크를 지고 서울에 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치적 고려가 덜하고 한ㆍ미ㆍ일 공조로도 이어질 수 있는 북핵 대응, 경제 안보 분야에 상대적으로 초점을 둘 거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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