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같은 게 우리 인생"

최미향 2023. 5. 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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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웃사이드의 왕이 되고 싶다'는 권동혁 작가

[최미향 기자]

▲ '아웃사이드의 왕이 되고 싶다'는 권동혁 작가 .
ⓒ 최미향
 
"기초생활수급자 형님이 정부에서 지원해준 쌀과 라면을 가져가라고 하길래 이게 웬 떡이지 하며 짊어지고 가다가 빵 터졌어요. 아니 홍길동은 의적인데 전 뭐죠?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벗겨 먹다니' 생각하며 깔깔 웃었어요."

권동혁(42) 작가 말을 듣는데 같이 배를 잡고 웃다가 왜 갑자기 가슴이 먹먹한지. 그는 자신을 트라우마, 애정결핍 덩어리라고 했다. 세상에 나와 겪었던 차별과 무시, 마음 속에 생겨버린 자격지심, 열등감 그럼에도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굴레, 퇴근 후에 작업을 하며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외로움과 쓸쓸함.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그는 활짝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뱉어냈다.

"저는 그런 사람을 그려요. 저랑 비슷한 사람 말이에요. 측은지심인지 연민이지... 어쩌면 그들을 보며 '그래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잖아. 나는 행복한 거야'라며 저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한 가지 확실한 건 비극일 거라고 생각한 모습들이 코미디가 따로 없다는 거죠. 찰리 채플린이 말한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이런 말인가 봐요."
 
▲ 권동혁 작가 작품 '빼애액' .
ⓒ 최미향
 
- 그림과의 인연을 말해달라.
"어릴 적에 관심받고 싶었어요. 정말 사랑받고 싶었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20대를 보냈어요. 그 시절에 취미로 이것저것 해보다가 찾은 게 그림이었죠. 노래는 무대 공포증 때문에 할 수 없었고 춤은 몸치라 안 되다 보니 그림이 만만했던가 봐요.
그림은 아무도 없이 혼자만의 싸움이니 얼마든지 제가 하고 싶은 짓거리를 할 수 있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그려서 갤러리에 걸어만 놓으면 되니까요. 물론 시작은 쉽지 않았죠. 나름대로 고통과 인내의 시간도 있었고요. 마음만 조급해서 실수도 많이 했죠. 취미로 시작해서 작가로 가는 것인데 취미냐 작가이냐의 경계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림의 근본은 그리는 행위라고 생각하니까요."
 
▲ 권동혁 작가 작품 '눈물의 햄버거' .
ⓒ 최미향
 
- 작품 하나하나가 참 재미있다.
"저는 코미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요. 주성치의 영화는 서민의 애환과 사랑을 담았고, 찰리 채플린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들어냈죠. 이미 영화 속에 제가 있고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 있잖아요.

사실 우리 인생은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 아닐까요? 별거 아닌 일들로 우리는 웃고 울고 살아가잖아요. 그 모습에서 부부싸움, 주차 문제로 싸우는 사람, 술 먹고 싸우는 사람,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적 부패, 척하며 사는 사람들의 군상들 등.

얼마나 우스워요. 더 우스꽝스러운 것은 본인이 우스꽝스러운 줄도 모르는 사람이에요. 저는 그런 사람과 사회의 풍자를 그리고 있어요. 주변에 아이디어가 쏟아집니다. 오늘도 누군가를 바보 만들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막 벅차올라요(웃음).

주인공인 당사자는 불쾌함을 드러내며 저를 욕하겠죠. 그래도 뭐 어때요. 저는 계속해서 희생양을 만들 거거든요(웃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현자처럼 우리 주변에서 우연히 발견한 해프닝을 나만의 시선으로 웃고 울고. 저는 이런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 권동혁 작가 작품 '안될 놈은 안돼' .
ⓒ 최미향
 
- 일과 작업을 병행하면서 힘든 점도 많을 텐데.
"가만 보면 저는 아마도 한량의 유전자를 타고났나 봐요. 그림만 그리면서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어요. 누가 그러데요. 잘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라고요. 현실은 정말 녹록지 않아요. 일을 하면서 제일 힘든 것은 회의감이더라고요. 돈 문제보다 저의 삶에 대한 회의감이 제일 무서워요. '난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게 아닌데'와 같은 생각 말이에요. 사실 이런 생각을 하며 괴로워 할 때쯤 시계를 보면 퇴근시간이더라고요. 참 징하죠(웃음). 반복되는 일상과 의미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 제일 괴롭고 힘들어요."
 
▲ 권동혁 작가 작품 '해바라기' .
ⓒ 최미향
 
- 작업을 통해 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 개인이, 자기가 처한 상황이 괴로운 이유는 어쩌면 자기 스스로가 상상했던 멋진 모습과 자기의 모습이 현실에서 일치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저는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가벼웠으면 좋겠어요.

무겁게 세상을 바라보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에요. 우리 모두는 어차피 동등하잖아요. 누구 위에 있지도, 아래에 있지도 않고요. 자고로 세상은 이래야 되지 않아요? 계급, 성별, 학벌 모든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전. 그냥 한 인간만 있을 뿐이죠.

자기 자신의 거울을 볼 줄 모르는 사람에게 작업을 통해 본인의 행동이 얼마나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지를 알려주고 싶어요. 남을 약 올리기 좋아하는 저의 눈에 들어온다면 악당을 무찌르는 히어로의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주겠어요. 마치 배트맨이 고담시민을 구하는 것처럼요."

- '나에게 그림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제게 그림은 계륵(鷄肋) 같은 존재죠. 버리고 새로운 걸 하자니 딱히 할 게 없고, 돈도 안 되고, 그렇다고 그동안 했던 작업들은 아깝고, 그렇다고 또 없으면 심심하고 허전하고. 마치 그림은 풀리지 않는 공식을 푸는 느낌이 들어요. 모든 작업을 완성하고 보면 마치 유레카 같은 느낌은 있어요. 

언제쯤이면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근사한 이유를 갖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전 아무래도 그럴만한 그릇은 아닌 거 같단 생각이 들어요. 나중에 노인이 되어서 힘이 없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노후대책으로 국민연금보다는 쓸만해 보이지 않을까요."
 
▲ 권동혁 작가 작품 '관종 히어로'? .권
ⓒ 최미향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영화 히어로에서 히어로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누구인지도 모르는 선한 사람들을 구하고 홀연히 사라지잖아요. 더군다나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못 듣고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죠.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히어로는 칭찬받고 싶지 않을까? 차라리 돈을 버는 히어로라면 수지타산이 맞을 텐데 말이야.' 물론 자본주의에 찌든 저의 뇌 속에는 오로지 돈돈돈이라 가능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히어로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비영리 활동을 하는 것일까요. 총알이 날아와 오늘 죽을지도 모르는데 구해준 사람에게 칭찬 한 마디 듣지도 못하고 매일매일 묵묵히 자신의 신념대로 히어로 활동을 지속하잖아요.

저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적어도 제 그림은 아웃사이더에 B급의 그림이라고 봐요. 주위에서 인정해 주지 않아도 좋고 싸구려라도 상관없어요. 욕하면서 비난하고 미움받을 각오도 하고 있죠.

저는요. 그래도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묵묵히 할래요. 모두 알고 있지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말 그대로 그리는 것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잖아요. 그냥 묵묵히 그림을 그릴 뿐이고 무지성의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죠. 현재 지금의 저는 취미생활도 되고 작가도 되는 것이라고 봐요."
 
▲ 권동혁 작가 작품 '쉰내' .
ⓒ 최미향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의 목표는 아웃사이드의 왕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 철학적인 이야기들보다 가볍고 일상에 녹아있는 해프닝들을 저만의 시선으로 그리고 싶거든요. 그리고 돈을 많이 벌게 된다면 1층에 갤러리, 2층에 만화방을 차리고 싶어요. 물론 돈이 없어서 현실성이 떨어지긴 하지만요(웃음). 동네 형 느낌으로 막대 아이스크림 빨면서 동네 애들이랑 수다 떨고, 그림 그리고, 음악 듣고. 와우! 그런 생각을 하면 생각만으로도 짜릿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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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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