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끌' 투자한 비트코인, 두 사람의 욕심이 부른 결말
[조영준 기자]
코리안시네마 섹션
한국 / 2023 / 23분 / 컬러 /
감독 : 이소현
출연 : 백종현, 조혜림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비트코인 하우스> 스틸컷 |
ⓒ 전주국제영화제 |
서로 다른 확률이 존재하는 게임에서 100%를 장담할 수 있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제일 단순한 동전 던지기 게임, 각각 50%의 확률이 존재하는 이 상황에서조차 다음에 나올 동전의 면을 100% 확률로 맞추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성을 갖고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확률의 판 위에서 우리는 꽤 많은 확신을 하고, 또 그런 근거 없는 타인의 확신에 내 몸을 던진다. 왜? 대체로 그런 확신 아래에는 장밋빛 미래가 깔려있고, 그런 황홀한 상상은 사람의 두려움을 애써 외면하게 만드니까. 영화 <비트코인 하우스>는 그런 인간의 심리, 깊은 바닥에서부터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작품이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을 하는 제이(백종현 분)는 두 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 낮에는 게스트 하우스의 운영을 관리하는 스태프로, 밤에는 가상화폐 코인을 사고파는 개미 투자자로. 하루빨리 코인 대박을 맞아 이 지긋지긋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그는 사실 스태프로 일을 하는 도중에도 시간만 나면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코인 시세를 확인한다. 주식 시장과는 다르게 코인 시장에는 밤낮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 그의 실력이 주변에 알려지기는 했는지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도 정보를 물어오고, 몇몇 친구들은 투자를 위해 돈을 맡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비트코인 하우스> 스틸컷 |
ⓒ 전주국제영화제 |
"공포에 사고 환호에 팔아라. 워렌 버핏 형님이 그랬다."
정보를 얻었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시드 머니(Seed money)다. 이번에는 이 종잣돈이 더 중요한 것이 저점에서 코인을 매수할 때 순간적으로 많은 자금이 투입되어 한꺼번에 사재기가 되면 될수록 해당 코인의 가격 또한 더 큰 폭으로 급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제이는 자신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이 한탕에 집어넣을 돈을 구하기 시작한다. 사회 초년생인 친구를 꼬드겨 학자금 대출을 위한 적금을 받기도 하고, 게스트 하우스의 장기 투숙객인 반달(조혜림 분)의 어렵게 되찾은 보증금을 빼앗기도 한다. 투자 명목이라고는 하지만 당장 몇 초 이후의 상황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비트코인 시장을 두고 '이번에는 반드시 오른다'는 말 한마디로 주위 사람들까지 끌어들인 셈이니 엄밀히 따지면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전세 사기를 당할 뻔해서 그 전세금 천 만원을 받을 때까지 집도 없이 게스트 하우스에 투숙하던 반달도 처음에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의심을 드러냈지만 이건 못해도 10배의 타이밍이라는, 지금 가진 돈의 금액 뒤에 공짜로 숫자 0이 하나 더 붙게 될 것이라는 제이의 말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사람의 욕심이 그렇지 않나. 월세보다는 전세를 살고 싶고, 전세보다는 내 집을 갖고 싶고.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마음이 그 불안을 자꾸 지우고 빛나는 허상만 쥐고 싶어 한다.
03.
막상 수중에 있는 돈을 맡기고 나니 이제 더 적극적인 건 반달이다. 더 큰 한탕을 노리기 위해 인터넷 방송으로 자신들의 코인을 주제로 한 인터넷 방송까지 시작하는 두 사람. 거짓 소문을 풀어 사람들이 해당 코인을 더 많이 매수하도록, 그래서 가격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자신들은 언제 최고점이 되는지, 매도를 언제 하면 수익을 제일 많이 볼 수 있는지 알고 있다고 의심의 여지없이 믿고 있으니 말이다. 확정된 미래가 현재 자신들의 손안에 있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무서울 게 뭐가 있을까.
▲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비트코인 하우스> 스틸컷 |
ⓒ 전주국제영화제 |
비트 코인의 문제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 영화는 더 나아가 지금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병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단계를 밟아가기보다는 한 번의 잭팟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한탕주의의 문제와 쉽게 부풀었다 그만큼 또 쉽게 가라앉는 문화의 버블 현상, 개인 방송과 페이크 뉴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단편 영화의 특성상 각각의 문제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수는 없다. 대신 이 다양한 문제들이 어느 한 곳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 속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뿌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네가 이거 아니면 어디서 집 살 돈 모았겠냐? 정상적으로 일해서 집 사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냐?"
비단 이 시대만이 만들어낸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각자의 시대가 곳곳에 산적해 있는 더 큰 문제를 해결하고 고민하는 동안 숨죽이고 있던 문제는 서서히 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던 것은 아닐까?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문화를 쉽고 다양하게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형성할 수 있게 한 기술의 발전 또한 그 안에서 또 다른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세대가 느끼는 어려움은 점점 더 커지기만 하고 이를 벗어날 기회는 더 줄어들기만 하니, 시대의 선택 또한 그런 방향으로 자꾸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 또한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그런 문제의식과 연결된 장면을 놓지 않으며 현재의 우리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사람들은 이런 거 좋아해요. 자극적인 거.' 반달의 마지막 대사가 참으로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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