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떼죽음 당했다"…건설사와 5년 싸움, 대법서 반전
‘공사 소음·진동으로 날마다 앵무새가 죽어갑니다.’
5년 전 ‘앵무새를 살려달라’며 1인 시위를 하던 앵무새 판매업자 A씨가 지난달 대법원 판결을 통해 건설사로부터 배상받을 수 있게 됐다.
A씨는 2012년부터 안양역 근처에서 앵무새 수백마리를 사육·번식·판매를 하는 업장을 운영해 왔다. 2017년 인근에서 B건설사 등의 공사가 시작됐는데, A씨의 앵무새 중 산란율이 저하되거나 죽는 새들이 급격히 많아졌다. A씨는 공사 현장 소음과 진동 때문이라며 건설사에 항의했고 시청에 민원도 넣었다. 이듬해엔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생활소음기준을 지켰고 방음벽까지 설치한 건설사에 앵무새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단 판단이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안양지원 민사1부(부장 김현정)는 “시청 공무원이 공사장 소음을 측정한 결과, 모두 생활소음규제기준 이하였다”며 “A씨가 관상조류인 앵무새를 사육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음 규제 기준을) 달리 볼 수 없다”고 했다.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에서 정한 상업지역 생활소음규제기준은 주간 70dB 이하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환경피해 평가방법 및 배상액 산정기준’도 있는데, 여기선 가축피해에 관한 소음기준을 60dB로 본다. 문제의 공사 현장 소음은 54.0dB ~ 68.5dB였다. ‘가축 기준’ 초과, ‘사람 생활 기준’ 이하다.
법원이 정한 감정인은 가축피해 기준 소음(60dB)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 기준을 넘긴 공사현장 소음과 앵무새 폐사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앵무새가 고통받는 소음의 기준은 사람과 다르단 것이다. “앵무새는 먹이사슬의 최하단에 위치한 피포식 동물로 포식동물의 접근을 조기에 감지하고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소음·진동 등 외부자극에 매우 민감하다”고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1심과 마찬가지로 감정인의 평가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수원고법 민사4부(부장 김태호)는 “소음과 진동에 매우 민감한 앵무새를 보호하기 위해 공사현장 소음을 60dB 이하로 낮추지 않았다고 하여 이를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가축 피해를 주장하는 사건에서는 가축피해 인정기준도 생활소음 기준 못지않게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며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13일 “일반적으로 생활소음규제기준이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수 있으나, 그 기준을 넘지 않았다고 해서 참을 한도를 넘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A씨는 304마리의 국제적 멸종위기종 앵무새가 폐사했다고 신고했는데 이는 A씨 앵무새 사육두수의 절반에 이른다”며 “관상 조류는 60~70dB 소음에서는 10~20%의, 70~80dB 소음에서는 20~30%가 폐사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와 감정 내용을 더해 보면 신축공사 소음이 앵무새 폐사에 기여한 정도는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공사 소음·진동으로 피해를 법원에서 인정받아 배상 판결을 받아내려면,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참아내야 할 한도를 넘는 정도여야 한다. A씨 사건이 ‘참을 한도를 넘는 피해’였는지를 두고 1·2심 법원과 대법원의 판단이 달랐다. 1·2심은 그곳은 상업지역이고, 상업지역 생활소음 기준을 지켰으면 참을 한도를 넘지 않는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국토계획법상 용도만 보면 안 되고 실제 이용 현황도 살펴야 한다고 했다. “(공사장 인근에) 상가뿐 아니라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이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었고, A씨는 공사 시작 이전부터 앵무새 판매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왔으므로 이런 현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8년 4월 시작된 A씨와 건설사의 법정 다툼은 이렇게 5년 만에 반전을 맞았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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