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 횡행…반지성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 [尹, 새로운 국민의 나라 ③]
시대정신 부상했지만 해결책 요원
野 지지층 70% '청담동 술자리 사실'
尹 "민주주의 지킬 용기와 연대" 호소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반지성주의'였다. 윤 대통령은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단 두 차례만 등장할 정도로 빈도는 높지 않았지만, 윤 대통령이 막판 원고를 수정하며 직접 적어 넣었을 정도로 소신이 함축적으로 녹아 있는 표현이었다. 대신 대통령의 연설에 으레 등장하는 '통합'은 아예 없었다. 근저에는 분열과 극단적 대립의 원인인 '반지성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통합'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는 분석이다.
'반지성주의'는 1963년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미국 정가의 매카시즘 광풍 현상을 관찰하고 펴낸 책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통해 알려졌다. 오늘날에는 확증편향에 기반한 진영논리 혹은 편 가르기로 개념이 정립되고 있다. 또한 반지성주의의 확대 배경으로 디지털 혁명에 편승한 '가짜뉴스 선동'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정권 출범의 '시대정신'으로 '반지성주의 극복'을 첫 손가락에 꼽는 이가 적지 않다. '조국 사태'라는 단면에서 문재인정권의 위선과 내로남불, 진실과 사실 검증 대신 극단적 진영대립과 내편 감싸기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최대 피해자였던 '검찰총장 윤석열'로 투영됐다는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책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에서 "진보와 어용과 지식인이 한자리에 설 수 있는 놀라운 광경은 반동적 반지성주의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을 비판하면서 "80년대 운동권 조직을 적의 공격에서 보위하기 위해 내부 성폭력 사건까지 밖에 알려서는 안 된다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조직 보위론이 다시 나타났다"고 했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반지성주의 극복' 외침은 1년이 지났지만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긴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위 '청담동 술자리 의혹'이다. 당사자와 제보자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으나, 처음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정정은커녕 사과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원금 계좌를 가득 채웠다"며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조롱했다. 김 의원과 '협업'한 유튜브 채널 '더탐사' 역시 같은 행태를 보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민주당 지지자들 대다수가 이를 사실로 믿고 있다는 점이다. 케이스탯리서치가 지난해 12월 26~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층의 69.6%가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대해 '사실일 것'이라고 답했다. 반지성주의가 힘을 발휘한 대목이다. 여론조사의 개요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밖에도 최근 윤 대통령 미국 순방 과정에서 있었던 넷플릭스 '투자 유치'를 야당의 정치인이 '투자'로 읽고 비판을 하거나, 화동의 볼에 입맞춤을 한 것을 두고 '성적 학대'라는 선동을 하는 일도 있었다. 역시 사과나 정정은 없었으며, SNS에서는 여야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를 향한 증오와 혐오를 발산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긍정적인 것은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비춤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28일 한국의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하버드 대학 강단에 선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상식과 진실, 그리고 양심으로 대표되는 지성에 기반하는 제도"라며 "거짓 선동과 가짜뉴스라는 반지성주의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협하고 위기에 빠뜨린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직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흔들고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용기와 연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언론인 출신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반지성주의 극복은 제도 뿐만 아니라 정치인의 정제된 발언, 진실을 밝히는 언론, 뉴스를 분별하는 국민의 지성 등 국가 전체적인 성숙도와 연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문제 해결의 첫 단추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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