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김 대리, 신상 로봇 봤어?" 장난감 좋아하는 어른들

한승곤 2023. 5. 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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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레고·피겨…장난감 찾는 어른들
인기 피겨는 '완판'에 '리셀가' 붙기도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살 때, 기분이 좋은 그런 거죠."

어린이날을 앞둔 3일 서울 종로 창신동 문구·완구 거리에 있는 한 완구점에 만난 30대 직장인은 자신이 장난감을 사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어 "어릴 때 사고 싶은 프라모델이나, 그런 걸 이제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 그것도 재미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이들도 장난감을 좋아하지만, 어른도 좋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완구점에서 만난 20대 후반 회사원 박모씨는 "저는 레고를 좋아하는데, 어린이날 세일하는지 궁금해서 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성인임에도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키덜트라고 부른다. 아이(Kid)와 성인(Adult)의 합성어다.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만화책, 만화영화, 게임 등을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소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뢰매, 메칸더V, 마징가, 태권브이, 철인28호 등 옛 장난감에도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이런 키덜트 덕분에 관련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키덜트 시장 규모는 지난 2014년 5000억원대에서 2021년 1조6000억원까지 성장했고, 최대 약 11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로 44년째 완구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힌 '승진완구' 송동호(67) 대표는 "어른들이 애들 장난감을 사기 시작한 것은 오래됐다"면서 "보통 레고를 많이 사 간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기적으로 '새로 나온 레고 없냐'고 물어보는 직장인들도 많고, 직접 방문해서 사가는 단골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올해는 주로 포켓몬 관련 제품을 많이 사 갔다"고 설명했다. 또 "그날 제품을 사지 않더라도 '신상품 나온 것 없냐'면서 매장을 찾는 직장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키덜트 취향을 겨냥한 제품들도 출시된 바 있다. 레고그룹(LEGO Group)은 지난해 2월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스타워즈 컬렉션 '레고 스타워즈 헬멧 시리즈' 3종을 출시했다. '루크 스카이워커', '만달로리안’' '다크 트루퍼'로 구성된 제품은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맞춤형 스탠드와 명패를 제공해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서울 종로 창신동에 있는 한 완구점. 사진=한승곤 기자

여기에 영화나 만화, 게임 등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축소해 완벽한 형태로 재현한 인형인 피겨도 인기가 많다. 일부 피겨의 경우 수백만 원에 달했지만 금방 팔려나갔다. 피겨 제조사 JND스튜디오에서 2021년 발매한 '할리퀸'은 259만원이라는 가격에도 판매 오픈과 함께 수 분 만에 완판됐다. '원더우먼' 피겨는 정가(239만원)보다 훨씬 높은 400만원대에 다시 판매되기도 했다.

이런 피겨 수집에 대해 직장인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대체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회사원 박태현(28) 씨는 "결국 자기 취미 생활이다. 구매력이 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김영준(35) 씨는 "고가지만 자기만족, 자기 행복이면 문제 될 게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신상(장난감이나 피겨) 얘기를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40대 직장인 최모씨는 "골프 등 다른 취미에 비하면 오히려 저렴한 취미다"라며 "다만 너무 많이 구매하지 말고, 적당히 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승진완구점 한 직원이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주인공 '슈퍼마리오' 완구를 포장하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키덜트 현상이 성인들의 취미 생활로 자리 잡은 가운데, 완구 업계뿐만 아니라 호텔 업계도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모션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서울드래곤시티는 포켓몬코리아와 협업한 객실 패키지를 출시한 바 있다. 노보텔 앰배서더 서울 동대문은 동심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윈터 네버랜드' 패키지를 내놓기도 했다. 패키지 이용 시 '하리보 골드베렌 100주년 생일 기념전' 또는 '미키마우스 나우 앤 퓨쳐' 전시 관람이 가능한 티켓을 제공해,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캐릭터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자기가 어릴 때 관심 있었던 것, 이런 걸 좋아하는 게 키덜트 현상의 일부다"라면서 "슬램덩크가 다시 인기를 끌었던 배경에도 키덜트 현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으로 힘든 시기에 모든 것을 잠시 잊고, 천진난만하고 행복할 때 그 시간에 몰입하고 싶어하는 심정도 (키덜트 현상) 이유가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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