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출입금지'…7조 부자 권혁빈이 만든 특별한 공간 [팩플]

심서현 2023. 5. 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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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스마일게이트 캠퍼스 퓨처랩에서 아동들이 자연을 관찰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판교 IT 기업 빌딩들 속 스마일게이트 사옥 지하 1층에는 여닫이 문 하나 없이 한 쪽 입구가 뻥 뚫린 공간이 있다. 오후 3시가 지나자 7~9세 아동이 하나 둘, 뚫린 입구로 거리낌 없이 쪼르르 들어오며 외쳤다. “고무고무, 나 왔어요!”

‘고무고무’라고 불린 중년 남성과 아동들은 친구처럼 별명을 부르며 인사하더니 뒤 켠 정원으로 나갔다. 10명의 아이들은 각기 다른 나무 앞에 엎드리거나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고 스케치북에 나무를 그리기도 했다. 성인 여성 ‘나나’가 7살 김민재에게 “지난주와 좀 달라진 게 있느냐”라며 말을 걸자 민재는 “꽃이 좀 커지고 이상해졌다”며 설명을 이었다. “이 안에서 씨앗을 만드나 봐요. 열매가 맺히려면 꽃이 져야 돼요. 그 안에 씨앗이 있거든요.” 너덧 아이들은 정원을 떠나 공유 주방에 가서 계란을 까먹으며 ‘왜 어린이집 급식보다 초등학교 급식이 맛있는가’ 주제로 즉석 토론을 벌였다. 오숙현 퓨처랩 실장은 “이곳은 노키즈 존이 아닌 노 페어런츠 존”이라고 했다.

이곳은 스마일게이트그룹의 사회공헌 재단 ‘희망스튜디오’가 운영하는 창의 학습 공간 ‘퓨처랩’이다. ‘고무고무’라 불린 남성은 놀이기획자 조재경씨, ‘나나’라 불린 여성은 그림작가 이은아씨다. 이들과 아동 10명은 퓨처랩의 어린이 자연 관찰 6주 프로그램 ‘태양 따라 노는 아이들’에 참여 중이다.

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삼평동 스마일게이트 캠퍼스 퓨처랩에서 아동들이 그림작가 이은아 씨와 토론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

누가 뭘 하고 있는 거야


게임 ‘크로스파이어’와 ‘로스트아크’로 유명한 스마일게이트는 지난 2012년 희망스튜디오 재단을 세웠고, 재단은 2016년 퓨처랩을 열었다. 퓨처랩은 아동·청소년 창의교육을 위한 약 661㎡(200평) 남짓의 공간으로, 공유주방과 철물점, 책방, 토론실 같은 공간에서 참여자들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각종 기기를 만든다. 예컨대 아이들이 모터와 전선, 바퀴, 핸들 등으로 간단한 전기 자동차를 직접 만들고, 퓨처랩 실내 운전용 면허 시험도 아이들이 만들어 치르는 식. 퓨처랩에는 14~16세 청소년을 위한 물리 프로그램, 12~16세용 목공 프로그램 등 다양한 연령대와 분야 프로그램이 분기·반기 단위로 진행된다.
퓨처랩에 따르면 지난 7년 간 총 2만 7783명의 아동·청소년이 이곳을 거쳤다. 이를 위해 1112명의 교육자(교사, 예술가, 기획자 등)들이 774회의 워크숍을 가졌다.
창의 교육 공간 퓨처랩 안에는 전문 공구를 구비한 철물점이 있어, 아동 스스로 각종 기기를 기획하고 만들 수 있다. 심서현 기자

창의 교육을 연구하는 교육자 연수도 진행한다. 지난해 8월 퓨처랩은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과 협업, 창의 교육자 커뮤니티 ‘퓨처 러닝 콜렉티브(FLC)’를 구성했다. 창의 교육에 관심 있는 현직 초중고 교사 등이 FLC에 참여해 온·오프로 배우고 토론한다. 오숙현 실장은 “요즘은 지자체마다 아동용 공방이 있고 초등학교 마이크로비트(초소형 교육용 컴퓨터) 재고가 쌓여 있는 등 창의 교육을 위한 하드웨어(HW)는 풍부하지만, 콘텐트가 없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퓨처랩이 커리큘럼과 콘텐트 같은 소프트웨어(SW)로 공교육을 지원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퓨처랩에서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간단한 전기 자동차. 자동차를 만든 뒤에는 운영 규칙과 운전면허 시험도 스스로 정했다. 심서현 기자


스마일게이트는 왜 이런 걸 하나


퓨처랩은 지난 7년 궤적을 담아 만든 다큐멘터리 ‘창의는 어디서 오는가 : 세상에 없는 학교, 퓨처랩’(이욱정 PD 제작)을 5일 공개했다. 스마일게이트 창업자인 권혁빈 희망스튜디오 이사장은 이 영상에 출연, 퓨처랩을 시작한 계기를 밝혔다. 선배 창업자로서 대학생 창업 팀들을 육성·지원하며 얻은 깨달음에서였다. 대학생 창업 팀의 창의성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들에게 뭔가 만드는 경험과 기회를 줘봤지만, 기존 것을 재현하는 경우가 많고 창의성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았다는 것. 이는 그가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서 창의성이라는 문제를 해결해 봐야겠다”라고 다짐한 계기가 됐다.
권혁빈 희망스튜디오 이사장이 퓨처랩 다큐멘터리에서 퓨처랩 설립 취지와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

퓨처랩은 지난 2020년부터 어린이 SW 프로젝트 창작 행사 ‘마이크로비트 글로벌 챌린지’(MGC)를 열고 있다. 영국 BBC 마이크로비트 교육재단이 전 세계 청소년 대상으로 여는 글로벌 SW 대회 ‘두 유어 비트(do your :bit)’의 아태 지역 공식 파트너가 된 것. 퓨처랩의 MGC에 입상하면 자동으로 글로벌 대회에 나간다. 지난해에는 국내 중학생 2명이 8~14세 아이디어 부문에서 처음으로 글로벌 수상했다.

본업인 게임과는 무슨 상관이지


퓨처랩은 올해 온라인 플랫폼 ‘퓨처랩 메타’를 선보이려고, 얼마 전 시범 운영을 마쳤다. 퓨처랩 메타는 메타버스에 구현한 창의 학습 공간으로, 참여자는 가상 공간의 창조자가 되어 캐릭터를 만들고 스토리를 기획하거나, 간단한 코딩이나 음향 채집·믹스 등으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 백민정 퓨처랩 센터장(상무)은 “판교를 넘어 더 많은 아동을 위해 창의 환경을 확산하기 위해 퓨처랩 메타를 만들었다”며 “메타버스라 가능한 몰입과 경험에 집중하며, 타 언어권 아이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확장도 게임 회사답게 하겠다는 것.

퓨처랩은 인디게임(소규모 개발사가 만든 게임) 개발자도 지원한다. 퓨처랩에 따르면, 현재까지 경연대회와 장학 제도 등 인디게임 지원 프로그램에 개발자 1376명이 수혜를 봤다. 백민정 센터장은 “청년 창작자 대상 프로그램은 회사에도 여러 방면으로 인사이트를 준다”며 “창작을 지원하는 문화가 스마일게이트그룹 직원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라고 덧붙였다.


이것도 알아야 해


스마일게이트그룹은 지주사(스마일게이트홀딩스)가 스마일게이트엔터테인먼트(크로스파이어 개발사), 스마일게이트알피지(로스트아크 개발사) 등 주요 자회사 자분을 100% 보유하고, 창업자 권혁빈 이사장이 지주사 지분 100%를 보유해 완전 지배하는 구조다. 지난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권 이사장이 자산 68억5000만 달러(약 9조원)를 보유한 한국 5위 부호라고 보도했다. 현재 포브스는 권 이사장 재산을 51억 달러(약 6조8000억원)으로 업데이트한 상태.

스마일게이트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9.4% 증가한 1조5771억 원.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1% 늘어난 6430억원을 기록했다. 중국에서 크로스파이어, 북미에서 로스트아크가 장기 흥행 중이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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