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해야 하나" 엄마들 골칫거리 어린이날 '구디백' 정체

이가람 2023. 5. 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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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4세 자녀를 키우는 유모(37)씨가 준비한 구디백의 사진. 독자 제공

대전광역시에 사는 유치원생 엄마 이모(45)씨는 3일부터 어린이날 선물 준비에 정신이 없었다. 올해는 선물을 18개나 준비했다. 만 5세 아들을 위한 선물 한 개를 뺀 나머지는 아들의 새싹반 친구들에게 줄 것이다. 대단한 선물은 아니지만, 젤리와 손수건 등을 담은 선물꾸러미를 만들었다. 요즈음 유치원생 엄마들 사이에 유행하는 그 ‘구디백’이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내일 아이들에게 나눠달라”며 선물을 전달했다는 이씨는 “아이들이 좋아할 모습에 흐뭇하다”고 말했다.


자녀 친구들 선물 준비하는 ‘구디백’ 문화 확산


어린이날을 맞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즐거운 고민’이 하나 늘었다. 어린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구디백(goody bag)이라고 불리는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확산하면서다.

본래 구디백은 파티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주머니를 말한다. 영어단어 ‘goody’가 “맛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미국에서 생일파티에 참석한 아이들에게 쿠키와 사탕 등을 봉투에 담아 주는 풍습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의 떡 돌리기 등 기념일에 답례품을 나누는 문화와 비슷한 셈이다. 그 문화가 최근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구디백으로 진화한 것이다.

경기도 김포시의 한 어린이집 원장 김모씨는 “과거에도 엄마들이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간식을 가방에 넣어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에는 선물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며 “예쁘게 꾸민 포장지에 아이 이름을 적어서 생일이나 입학식 등 기념일에 돌리는 엄마들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날 앞두고 “구디백 뭐로 준비하나요?”


한 맘카페에 올라온 구디백 관련 게시물. 온라인캡처
최근엔 구디백 문화가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것으로도 확산했다. 만 3세 아들을 둔 박모(39)씨는 “예전에 같은 반 친구의 엄마들이 선물이라면서 과자와 사탕이 담긴 구디백이라는 걸 보내왔다. 처음에는 용어조차 몰라 한참을 검색했었다”며 “나도 한번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인터넷으로 재료를 주문해 어린이날을 위한 구디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 맘카페에선 4월부터 ‘어린이날 구디백 뭐로 준비하시나요?’라는 제목으로 조언을 구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전광역시에 사는 이모(45)씨가 만 5세 자녀의 같은 반 친구 17명에게 돌리기 위해 준비한 구디백의 사진. 독자 제공
학부모들은 직접 만든 구디백의 사진을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려 공유하기도 한다. 만 4세 자녀를 키우는 유모(37)씨는 “유치원에서 어린이날을 맞이해 나눔이라는 주제로 반 친구들에게 나눠줄 소소한 선물을 준비해달라는 알림장을 받았다”며 “예시로는 사탕이 적혀 있었는데, 이왕 내 아이 이름으로 전달되는 선물이면 모두에게 예쁘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구디백을 직접 만들었다”고 말했다. 초콜릿과 젤리, 비눗방울을 포장지에 담아 구디백을 만들어 블로그에 올린 유씨는 “2000원 내외로 만든 결과물을 보니 나름 뿌듯했다”고 말했다.

구디백 열풍에 완성품 파는 업체도 등장


온라인 쇼핑몰에서 ‘어린이날 구디백’으로 검색되는 제품들. 온라인 캡처
구디백에 들어가는 구성품도 각양각색이다. 각종 과자와 젤리 등 간식이 주로 담기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색연필이나 양말 등이 대표적이다. 대전에 사는 이씨도 구디백으로 손수건을 준비했다. 이씨는 “봄에 아이들이 감기에 많이 걸리기도 해서 스카프 겸 손수건으로 쓸 수 있도록 유용한 선물로 준비했다”며 “엄마들은 좋아하겠지만, 직접 선물을 받는 아이들은 실망할 수도 있어 젤리와 비타민C도 넣고 귀여운 동물 모양의 봉투로 포장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구디백이 인기를 끌면서 완성품을 파는 업체도 여럿 등장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어린이날 구디백’으로 검색되는 제품만 5000개에 이를 정도다. 대부분 가격대는 개당 2000원에서 5000원 사이다. 맘카페에선 이러한 구디백의 구매 후기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구디백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워킹맘의 하소연에 “쿠팡에 로켓배송 상품이 있다”는 조언이 달리기도 한다. 수원에서 수제 쿠키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모(39)씨는 “요즘 워낙 엄마들 사이에서 구디백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모양의 쿠키로 구디백을 만들어서 올해부터 팔고 있다”고 말했다.


“나도 해야 하나?” 위화감 조성 우려도


하지만 구디백을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적지 않은 고민도 호소하고 있다. 구디백이 자칫 위화감을 조성하거나 아이 건강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대구의 한 공립유치원 12년 차 교사 김모씨는 “어린이날을 함께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다들 준비하니 나도 해야만 하는 선물이거나 보여주기식 선물로 점점 변화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이어 “포장은 너무나도 예쁘지만, 구성물은 유아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간식도 많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원장 김씨는 “과자 섭취에 민감한 엄마들도 많기 때문에 나눠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될 때가 많다”며 “가급적 이런 선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학부모들에게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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