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깎아주면 아이 더 낳을까… ‘n분의 n승 소득세’ 주목
프랑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 합계출산율을 유지하는 비결로 꼽히는 ‘n분의 n승’ 소득세 도입 논의가 국내에서도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현행 소득세제에 대폭 개편이 필요하고 감세 혜택이 고소득자에 쏠릴 우려가 있다며 난색을 표하는 중이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한국의 저출산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검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4일 국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열린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에서 위원들은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에게 저출산 극복을 위해 프랑스식 n분의 n승 소득세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줄 것을 촉구했다.
n분의 n승 소득세란 소득을 가구 단위로 합산한 뒤 구성원 수로 나눠 과세표준을 산출하는 프랑스의 소득세 과세 방식이다. 얼핏 봐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소득세의 특성상 자녀가 많을수록 유리한 세율을 적용받게 되는 구조다.
예컨대 현행 소득세제에서 연소득이 1억원인 직장인은 최대 35%의 소득세율을 적용해 2010만원을 소득세로 납부한다. 하지만 n분의 n승 제도를 도입하면 가족 크기에 따라 세액이 달라진다. 독신자의 소득세는 종전과 동일하지만, 아내와 자녀 2명을 둔 외벌이 가장의 소득세는 약 1176만원으로 절반 가량 줄어들게 된다. 연소득 1억원을 가구 구성원 3인(자녀는 0.5명으로 계산)으로 나눔으로써 세율이 최대 15%로 크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6년부터 이 같은 소득세 정책을 도입하며 인구 증가를 꾀했다. 그 결과 2020년 프랑스 합계출산율은 1.79명을 기록하며 OECD 국가 중 이스라엘, 멕시코 다음으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그 주요 원동력으로 꼽히는 요소가 바로 n분의 n승 소득세제다. 다자녀 가구에 돌아가는 세금 감면 혜택이 그만큼 출산 장려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다자녀 가구에 대한 한국의 세제 혜택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2021년 OECD 평균 2자녀 외벌이 가구의 실질 세부담 수준은 24.6%로 34.6%를 기록한 독신가구의 실질 세부담과 10.0%포인트나 격차가 있었다. 미국은 2자녀 가구가 8.5%, 독신 가구가 28.4%의 실질 세율을 부담해 그 차이가 20%포인트에 육박했다. 반면 한국은 2자녀 외벌이 가구의 실질 세부담이 19.6%로 독신가구(23.6%)와의 차이가 4.0%포인트에 그쳤다.
하지만 기재부는 n분의 n승 소득세제를 한국에 도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구 단위로 소득세를 매기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게 첫번째 이유다. 한국의 현행 소득세제는 개인별로 세금을 매기는 개인단위주의에 입각해 운용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우리 소득세제의 틀을 완전히 바꾼다는 뜻이기 때문에 단시일 내에 끝날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 제도의 혜택이 고소득층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도 반대 근거로 들었다. 소득세의 누진적인 성격 때문에 세금이 감면되면 더 큰 이득을 보는 쪽은 아무래도 고소득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의 극심한 저출산 추세에서 그나마 출산력을 유지하고 있는 계층은 고소득층이라는 점도 기재부의 고민거리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소득분위별 출산율 변화 분석과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소득분위를 3분위로 나눴을 때 상위층인 3분위의 100가구당 출산 가구수가 2.45가구로 가장 많았다. 반면 소득 중위층과 하위층의 출산 가구수는 각각 1.75가구와 0.43가구에 불과했다.
지난 2월부터는 한국 버금가는 저출산·고령화에 시달리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n분의 n승 소득세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세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하는 부담과 고소득자에 혜택이 쏠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재정당국이 도입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과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일본은 여당인 자민당 간사장이 직접 해당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고, 야당에서도 일부 찬성 의견이 등장하는 등 보다 본격적으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이다. 역시 합계출산율이 1.2명 내외에 머무르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최근 다자녀 가구에 아예 소득세를 면제해 주자는 훨씬 급진적인 세제 혜택안이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도 이 같은 ‘특단의 조치’를 더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젊은 세대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야 가족을 결성하고 출산을 할 동기가 생긴다”며 “증세를 통한 출산 지원 확대도 방법이겠지만 걷어들일 때 애초에 적게 걷어들이는 것도 유용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세제 혜택이 고소득자에 쏠릴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직접 수당을 지급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역진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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