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손봉호 (14) 가난한 나라 여권의 설움… 가는 곳마다 비자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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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가 아니라 교육을 위해서 신학교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목회학 담당 교수가 왜 목회를 하지 않으려느냐고 물었다.
나라들이 가까이 붙어 있는 북유럽에서는 이웃 나라에 갈 일이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여행국 비자를 받아야 했고 국경에서는 까다로운 조사를 받아야 했다.
"아니요. 당신의 그 대단한 나라 비자, 난 필요 없소"라고 큰소리치면서 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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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자유대학교 들어가 철학 전공
목회가 아니라 교육을 위해서 신학교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목회학 담당 교수가 왜 목회를 하지 않으려느냐고 물었다. 나는 목회자가 될 만큼 성숙한 인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때까지 나는 오직 윤봉기 목사님 한 분 밑에서만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분의 삶이 워낙 엄격해서 나는 도저히 그만큼 될 수 없다고 느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3년간 신학을 공부하면서 군대에서 버렸던 학문에 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났다. 특히 조직신학에서는 사람의 지식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문제가 나를 괴롭혔다. 거기에 반틸 교수의 변증학과 현상 논문을 준비하면서 읽은 키르케고르의 철학서들은 기독교 철학에 관한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신학교 졸업 후 당시 개신교계에서 널리 알려진 기독교 철학자 도여베르트가 가르쳤던 네덜란드 자유대학교 철학부에 가서 공부하기로 작정하고 지원했더니 입학을 허가했다. 전공을 두 번째 바꾼 셈이고 우물을 세 개나 파게 된 것이다.
비용이 상대적으로 싼 여객선을 타고 8일간 대서양을 건너 도착한 네덜란드에서 가난한 나라의 여권이 당하는 서러움이 시작되었다. 두 줄로 서서 입국 조사를 받는데 나에 대한 심사가 시작되자 그 줄은 완전히 정지되었다. 입학허가서가 있는데도 돈 벌러 온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유효 기간을 매년 연장해야 하는 단수 여권이었으므로 수많은 도장이 찍혔는데 그 관리는 그 모든 것을 일일이 다 들여다보고 옮겨 적었다. 수백 명 입국자 가운데 꼴찌로 통과하는 나를 보고 승객 하나가 “당신 여권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 좀 하자”고 했다.
그런 서러움은 유럽 체류 8년간 반복됐다. 나라들이 가까이 붙어 있는 북유럽에서는 이웃 나라에 갈 일이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여행국 비자를 받아야 했고 국경에서는 까다로운 조사를 받아야 했다. 단체 여행에서도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나 때문에 버스가 기다려야 했다. 스위스에 가기 위해서는 독일을 통과해야 하는데 1967년 동베를린 사건이 터지자 평소에 요구하지 않던 통과 비자를 요구했다. 평소처럼 비자 없이 기차를 탔는데 독일 경찰에게 들켜 돌아갈 때는 비자를 받아 온다는 조건으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찾아간 제네바 주재 독일 영사는 여행자에게는 비자를 줄 수 없다고 버텼다. 한참 승강이를 벌이다가 그때 프랑스와는 비자협정이 맺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좋소. 지금 당장 제네바 역에 가서 프랑스 통과로 기차표를 바꾸겠소” 하고 나왔다. 영사는 갑자기 비자를 주겠으니 다시 오라 했다. “아니요. 당신의 그 대단한 나라 비자, 난 필요 없소”라고 큰소리치면서 나와 버렸다. 그동안 비자 때문에 쌓인 울분이 터져 나온 것 같다. 요즘 한국 여권이 세계 곳곳에서 우대를 받고 있으니 눈물겹도록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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