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진다는 건 인간이 못 할 일이지만… 지려고만 하면 십자가가 인간을 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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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어린양, 소양(蘇羊) 주기철(1897~1944) 목사는 순교자다.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이를 반대하던 주 목사를 파면시키는 것을 넘어 가족들을 사택에서 내쫓고 그가 시무하던 평양 산정현교회까지 폐쇄시켜 성도들을 흩어지게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강조된 정신은 일사각오(一死覺悟)였다.
실제 주 목사는 일제의 두 번째 검속으로 38년 8월부터 6개월간 경북 의성경찰서에 갇혔다가 풀려난 직후 평양 산정현교회로 돌아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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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어린양, 소양(蘇羊) 주기철(1897~1944) 목사는 순교자다. 일제강점기 한국교회의 자존심과도 같은 옥중 성도들을 대표한다.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이를 반대하던 주 목사를 파면시키는 것을 넘어 가족들을 사택에서 내쫓고 그가 시무하던 평양 산정현교회까지 폐쇄시켜 성도들을 흩어지게 만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강조된 정신은 일사각오(一死覺悟)였다.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한번 죽을 각오를 한다는 비장함이 담겨 있었다.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은퇴 교수는 이런 비장함보다 ‘사랑의 순교자’임에 주목한다. 주 목사가 1924년 신생명에 기고한 ‘기독교와 여자 해방’부터 39년 기도지남에 수록한 ‘겸손하기 위하야’까지 19편의 글을 발굴한 이 교수는 순교 의지보다 십자가와 사랑을 강조했던 명설교가 주 목사를 입체적으로 복원해 낸다. 감리교 역사신학자가 장로교를 넘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순교자 주 목사의 전기를 펴내는 이유다.
“주기철은 나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했고 이별을 슬퍼했다. 다만 그에게는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고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신앙을 포기하고 훼절의 길을 갈 때 차마 사랑하는 그분을 배반할 수 없었다. 그분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노력했고 그분이 그런 그를 도왔다. 그 결과는 그분처럼 십자가 순교였다.”(20쪽)
실제 주 목사는 일제의 두 번째 검속으로 38년 8월부터 6개월간 경북 의성경찰서에 갇혔다가 풀려난 직후 평양 산정현교회로 돌아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인간이 못 할 일이다. 그러나 인간이 십자가를 지려고만 하면 십자가가 인간을 지고 간다. 그래서 갈보리 산상까지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주 목사가 감옥 안에서 혹독한 고문을 견딘 것도 체력이나 불굴의 의지가 아니라 그리스도 사랑의 힘이라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39년 평양경찰서 검속 직전까지 주 목사가 가장 많이 한 설교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열애하라’ ‘십자가의 길로 가자’ ‘십자가의 길로 행하라’ 등이었다. 사랑과 십자가였다.
7년의 수감생활 이후 병세가 완연해진 주 목사는 44년 평양형무소에서 부인 오정모 집사와 마지막 면회를 한다. 주 목사의 신앙적 동지이자 일사각오란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부인 오 집사는 간수 등에 업혀서 면회장에 나온 남편을 향해 “당신은 꼭, 꼭 승리하셔야 합니다. 결단코 살아서는 이 붉은 문 밖을 나올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넷째 아들 주광조 장로가 증언한 아버지 주 목사의 말이다.
“그렇소. 내 살아서 이 붉은 벽돌문 밖을 나갈 것을 기대하지 않소.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오. 내 오래지 않아 주님 나라에 갈 거요. 내 어머니와 어린 자식을 당신한테 부탁하오. 내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산정현교회와 조선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겠소. 내 이 죽음이 한 알의 썩은 밀알이 되어서 조선교회를 구해 주기를 바랄 뿐이오.”(373쪽)
주 목사는 이 면회 후 밤중에 별세한다. 44년 4월 21일이다. 광복 후 부인 오 집사는 주 목사를 순교 영웅으로 만들려는 다양한 시도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찬양해야지, 주 목사가 그것을 가리면 안 된다”며 거부한다. 북조선을 장악한 김일성이 항일 투사인 주 목사를 존경해 금일봉과 적산가옥 문서를 보내왔을 때도 오 집사는 “포상받을 목적으로 순교한 것이 아니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따랐을 뿐이오”라고 답하며 돌려보낸다. 주 목사의 첫째 아들 주영진 전도사는 북한의 인민공화국 주일 선거를 거부하고 긴재교회를 지키다 50년 6·25전쟁 때 체포된 후 공산군에 의해 희생당한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아들도 순교자의 길을 걸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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