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시각각] 한국 덮친 설익은 선진국 증후군
나라의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고 경제성장률은 1%도 힘겨워졌다. 개인에 비유하면 저축은 없는데 소득은 제자리걸음이다. 결국 부족한 돈은 마이너스 통장에 기댄다. 대한민국이 이런 처지다.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넘었고, 공무원·군인연금 충당금까지 포함한 국가부채는 지난해 2326조원에 달했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1965조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올해는 저성장 터널에 접어들어 세금 수입이 크게 줄자 정부 예산 639조원보다 세수가 20조원 넘게 모자랄 전망이다. 경제 규모 10위 국가에다 반도체 강국이자 K컬처로 우쭐했던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국민은 잘못이 없다. 지금도 멕시코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장시간 근로한다. 요컨대 진영 싸움으로 끝없이 다투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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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규모 10위, K컬처에 우쭐 한국
정치권 세금 펑펑 쓰더니 곳간 구멍
반도체 휘청하고 경제 1%대 저성장
」
특히 최근 나라 곳간이 바닥을 드러낸 데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 나랏돈이 화수분인 양 재정을 펑펑 퍼줬다. ‘(GDP 대비) 국가채무 40%의 근거가 뭐냐’고 했던 2019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대한민국의 건전재정 기조가 무너졌다. 재임 5년 만에 국가채무가 400조원 넘게 불어났고, 국가채무 비율이 단박에 30%대 후반에서 50%에 이르렀다. 남미에서나 봤던 급격한 정부 지출 확대로 나라 곳간이 바닥을 드러낸 결정적 시기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 정책의 폭주를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자 마땅한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정교하지 못한 정책 조율에다 총선까지 앞두고 있어 노동·연금·교육 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싸우면서 닮는다고 전임 정부 못지않게 재정을 소홀히 하는 듯한 정책 기조다.
포퓰리스트 허경영이 오래전부터 외쳤던 병장 월급 200만원 정책을 보자. 부사관은 물론 장교의 급여도 연쇄적으로 인상 압박이 크다고 한다. 은행의 독점 구조 타파와 근로시간제 유연화 정책 역시 목소리를 높였지만 허술함을 드러내고 용두사미가 됐다. 보고서만 그럴듯하게 잘 쓰는 관료나 폴리페서에 둘러싸여 현실성을 간과한 탓이 크다. 법인세와 부동산 세금 부담을 낮춘 정책은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먹구름이 잔뜩 몰려오는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경기 침체를 예측하지 못했다면 무능이고, 알면서도 감세 정책을 폈다면 우파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윤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세수 감소 누적액은 2023~2027년 64조4000억원에 달한다. 혹자는 전 국민에게 1000만원씩 기본대출을 해주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정책 폭주보다는 안정감이 있지 않으냐고 한다. 이 대표의 정책은 논할 가치도 없으니 비교 대상이 아니다. 요컨대 3류 정치를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강의 기적은 한강의 몰락이 될 수 있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라는 자만에서부터 깨어나야 한다.
미·중 대립 격화로 한국의 수출 환경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현실을 봐야 한다. 지난해 세계무역에서 한국의 수출 비중은 2.7%로 쪼그라들었다. 해마다 성과급 파티를 벌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는 적자 수렁에 빠졌다. 미국이 직접 생산에 나서자 한국 반도체의 독주에 제동이 걸린 것도 비상이다. 이렇게 된 건 한마디로 사공일 전 경제수석이 쓴 표현처럼 ‘설익은 선진국 증후군’ 탓이 크다. 화수분인 양 재정을 남발하고 반(反)시장 정책으로 기업을 해외로 등 떠밀어 나가게 한 결과다. 이 병을 고치는 것은 정쟁 대신 일하는 정치인이 국회에 들어오게 하는 것 외엔 답이 없다.
윤 정부도 당장의 지지율에 연연하지 말고 초심대로 과감하게 직진해야 한다. 취약계층을 배려하되 전기요금부터 정상화하고, 쌀 강제매수법(양곡관리법)처럼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포퓰리즘부터 끊어야 설익은 선진국 증후군에서 깨어난다.
김동호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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