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의 시선]간호법 논란, 모두가 패배자

김원배 2023. 5. 5.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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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여당은 갈등 조절에 실패
법안 강행한 민주당은 무책임
간호법 '지역사회' 조항은 모호
김원배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간호법 제정안을 놓고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간호협회는 간호법 통과를 환영하고 있지만 의사협회와 간호조무사협회 등은 법 제정에 반대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조무사 단체의 주도로 지난 3일 부분 파업이 이뤄졌다.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과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4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현수막을 들고 간호법안 수정안 통과를 환영하고 있다. 뉴스1

앞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최종 부결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달리 간호법은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 의원들도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에 제정안을 발의했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은 본회의 통과 과정에서 당론으로 이를 반대했다. 국회 소수당이지만 행정력을 가진 정부와 함께한다는 점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낙제점을 받아 마땅하다.

민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적지 않은 표를 가진 직능 단체의 요구를 들어줬다. 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고민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을 주는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국회의 입법권이 대통령의 거부권에 제한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승자가 아니다.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는 게 끝이 아니라는 점을 모두 안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재가하고, 공포돼야 진짜 법이 된다. 간호법 제정을 위해 서명 운동을 해 온 간호협회는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날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젠 대통령의 거부권에 시선이 집중된다.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에게도 부담이지만 국회의 권위에도 손상을 준다. 게다가 법을 만들어 갈등을 조정하고 논란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립을 불러온다는 점에선 민주당은 너무나 무책임하다.

간호법 제정은 간호사 단체의 숙원 사업이었다. 독자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니 간호사 입장에선 상당한 진전이다. 하지만 간호협회는 왜 간호조무사협회를 우군으로 끌어들이지 못했을까. 만일 간호조무사협회가 간호협회와 함께 간호법 제정에 찬성했다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크게 줄였을 것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4월 30일 곽지연 간호조무사협회장의 단식 현장을 찾았다. [사진 보건복지부]

곽지연 간호조무사협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현대판 카스트(신분제)제가 있다. 간호사들은 현장에서 우리를 무시하고 차별해 왔다"고 말했다. 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조무사의 응시 자격을 고졸로 제한한 것을 고졸 이상으로 바꾸고, 2년제 전문대 간호조무학과를 개설해 달라고 요구한다. 간호법 제정안이 간호사와 함께 간호조무사도 규율하는 만큼 간호조무사의 입장도 일정하게 반영되는 것이 타당하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가 면허를 가진 의료인이다. 간호조무사는 좀 더 넓은 범위인 보건의료인력에 속한다.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의 지도에 따라야 한다. 의료 분야는 면허와 자격의 종류에 따라 책임과 권한이 다르다. 의료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인데 허투루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것이 차별을 공고화하는 ‘신분’이 돼서는 안 된다.

이번 간호법 제정안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게 제1조(목적)에 있는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이라는 문구다. 의사단체는 이를 근거로 간호사의 독립 개업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간호협회 측은 이를 부인한다.

간호협회 홈페이지를 보면 간호법 제정 찬성 집회에서 ‘간호법은 부모돌봄법입니다’라는 구호가 나온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한 법을 보면 왜 간호법이 부모돌봄법이 되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일 간호협회가 별도법을 먼저 만들고 점차 영역을 확대하자는 전략을 세웠다면 이는 온당하지 않은 일이다. 간호사가 지역사회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하겠다면 그것이 어떤 수준이며 의료 소비자에게 어떤 혜택이 가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국민은 이를 제대로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의사들 역시 비대면 진료 등 새로운 변화에 소극적이고, 현안이 있을 때마다 파업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더 이상 파업을 확대해선 안 된다.

간호법 통과 과정에서 모두가 상처를 입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와 관계없이,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역할은 합의에 따라 재정립돼야 한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처우 개선도 해야 한다. 고령화에 따라 보건·의료 수요가 늘고 있다. 과거의 틀을 너무 고집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간호협회 홈페이지엔 나이팅게일 선서가 나와 있었다.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 나의 간호를 받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습니다.' 협조와 헌신, 모두가 되새겨야 할 말이다.

김원배 논설위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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