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한없는 기쁨이자 좌절인 가족, 참 어렵다
의사로 가업을 이으려던 장남이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숨진다. 10년 후 장남의 기일에 가족들이 모인다. 그 자리에 한 청년이 참석한다. 장남 덕에 목숨을 건졌던 아이가 20대가 된 것이다. 청년은 영정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 “정말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걸어도 걸어도’는 ‘가족 영화’다. 하지만 훈훈함 같은 건 없다. 외려 가족을 조금은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최고의 컷은 기일 날 저녁 어머니(키키 키린·사진)와 차남(아베 히로시)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차남이 “(청년을) 이제 그만 부르자”고 하자 어머니가 되묻는다. “왜 그래야 해?” “왠지 불쌍해서요. 우리 보는 거 괴로워하는 거 같고.” “그래서 부르는 거야. 겨우 10년 정도로 잊으면 곤란해. 증오할 상대가 없는 만큼 괴로움은 더한 거야. 그러니 그 아이한테 1년에 한 번쯤 고통을 준다고 해서 벌 받지 않아. 내년, 내후년에도 오게 만들 거야.”
한마디 한마디에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다. 10년이 지났건만 가슴에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아이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으니까” 청년이 ‘살아서 죄송해하는’ 모습을 계속 봐야겠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도무지 가족이란 이름 앞에선 애(愛)든, 증(憎)이든 어느 쪽으로도 무던해지기가 쉽지 않다.
영화에는 서로에게 ‘고집불통’이 돼버리는 부자(父子)의 뒤엉킨 감정도 울컥울컥 불거진다. 실업자인 차남은 죽은 형과 자신을 비교하는 아버지가 넌더리 난다. “형도 살았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사람이란 게 다 그래요.” 독한 말들이 오고 가지만 식사 땐 옹기종기 밥상에 둘러앉는다.
가정의 달이다. 가족은 어쩌면 유일하게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다. 끔찍한 사랑인 동시에 부담이고, 한없는 기쁨이자 좌절인, 가족 참 어렵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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