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패션 아이콘 아네스 베의 마법 같은 저택

2023. 5. 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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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패션 디자인의 살아 있는 아이콘인 아네스 베. 그의 무한한 창의성이 마법처럼 펼쳐진 베르사유 외곽의 저택에 <엘르> 를 초대했다.
조경에 관심이 많은 아네스 베는 잘 손질된 정원과 자연 그대로의 정원을 모두 추구했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아네스 베는 패션 위크에 참석하거나 자신의 브랜드를 광고하지 않는다. 그저 본능대로 행동한다. 1975년, 그는 과거 정육점이었던 곳에 파리의 첫 매장을 오픈한 이래로 전형적인 프렌치 룩을 만드는 대표 디자이너가 됐다. 아네스 베가 디자인한 아이코닉 스냅 카디건은 전 세계 230개 매장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인맥이 넓은 아네스 베는 음악가 패티 스미스와도 친분이 두터운 사이. 둘은 종종 남성복 매장에서 옷을 사며 쇼핑을 즐겼다. 아네스 베는 다양한 자선활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고, 국제인권감시기구(Human Rights Watch) 같은 비영리단체에도 후원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로 30년 동안 활동 중인 아네스 베는 베르사유 외곽에 있는 2층 저택의 주인이다. 과거 루이 14세가 소유했던 땅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네스 베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있다. 루이 14세가 주치의 기-크레상 파공에게 이 땅을 하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네스 베는 우연히 신문 광고에서 그 땅에 지어진 저택을 보게 됐고, 그 광고를 오려 책 속에 꽂아두었다. 몇 개월이 흘러 책을 펼치다 바닥에 펄럭이며 떨어진 광고를 다시 본 아네스 베는 집주인에게 연락해 방문 일정을 정했다. 하루빨리 집을 보고 싶은 충동을 못 이겨 약속 날짜 전에 홀로 저택을 찾았고, 높은 돌담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집 내부를 보기 위해 펄쩍펄쩍 뛰며 기웃거렸다. 결국 이 역사적 건물을 갖게 된 아네스 베는 그곳을 편안한 보금자리로 만들었다. 시대와 문화를 융합한 그만의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주방 수납장은 모로코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직접 조색한 블루 컬러로 칠했다. 식탁은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구매했고, 의자는 아네스 베의 할머니가 물려주신 유품이다. 주방 기구는 으 드일랑(E. Dehillerin) 제품.

그의 과감한 선택은 건물 측면을 19세기 건축 스타일처럼 붉은색으로 칠한 것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서재와 음악실도 마찬가지다. 반면 현대적 터치를 가미한 흔적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여섯 개의 침실은 내부 구조를 크게 개조하지 않았다. 기존 양식인 석회암 바닥과 플로럴 문양의 석고로 장식한 벽 몰딩, 연철로 된 중앙 계단은 그대로 두었다. 식당의 채광 창도 그대로 뒀다. 아네스 베는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이 집이 자연스럽게 진화할 수 있기를 바랐다.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해 현관문을 열면 녹음이 우거진 숲이 보인다. 야외 수영장은 한쪽에 은밀하게 감춰져 있다. 조경에도 관심이 많은 아네스 베는 잘 손질된 정원과 자연 그대로인 정원 스타일을 추구했다. 아네스 베의 집을 방문했을 때, 아네스 베는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큰 진열장을 보여주었다. 그곳에서 낡았지만 보관 상태가 양호한 냅킨, 식탁보 그리고 테이블 러그까지 꺼내며 가족을 위해 요리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자녀가 다섯 명이고 손자는 열여섯 명인 그의 삶을 상상하게 됐다.

현관 입구에는 디자이너 컬렉션의 빈티지 식기류 세트가 앤티크 진열장에 보관돼 있다. 진열장 위에 있는 그림은 시프리앵 가야르(Cyprien Gaillard)의 작품.

아네스 베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처럼 집을 꾸미는 일을 취미로 즐겨왔다. 특히 앤티크한 것과 모던한 것, 일상에서 자신이 아끼는 오브제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걸 즐긴다. 벽난로 위에는 손자의 장난감을 장식하고, 고대의 유리병인 듯 섬세한 모양으로 대량생산된 현대판 피규어와 아네스 베의 할머니가 물려주신 18세기 시계가 함께 놓인 것처럼. 아네스 베의 집 곳곳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들, 가령 장-미셸 바스키아, 시몽 앙타이(Simon Hantaï), 알리기에로 보에티(Alighiero Boetti)의 작품이 곳곳에 걸려 있다. 그는 수년간 예술품을 수집해 온 아트 컬렉터이기도 하다. 지난 2020년 파리의 라 파브(La Fab)라는 이름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한 적도 있다. 팬데믹 동안 아네스 베는 대부분의 일상을 프랑스의 집에서 보내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취미로 예술 프로젝트를 구상하기도 했다.

빨간 벽이 인상적인 음악실에는 어린 미켈란젤로를 조각한 골동품 동상이 있는데, 에밀리오 초키(Emilio Zocchi)의 작품이다. 샹들리에 조명은 아네스 베가 직접 제작한 것.

어린 시절 아네스 베의 아버지는 아네스 베와 두 자매를 ‘유별난 여자애들(Les Dro^lesses)’이라 불렀다. 딸을 향한 부성애가 담긴 애정 어린 별명이었다. 아네스 베는 그 별명을 제목으로 붙인 작품을 만들었다. 옷장에 보관된 엄청나게 많은 옷 가운데 엄선하여 완성한 룩을 정원 풀밭에 펼쳐놓고 자신이 ‘뮤즈’라고 칭송하는 여인들을 그린 초상화 한 쌍을 가져와 옷과 배치했다. 실제로 두 초상화는 현관문 양쪽에 장식돼 있다. 번진 립스틱 자국이 입가에 묻어 있고 눈빛이 매우 단호한 젊은 두 여자를 묘사한 초상화. 프랑스 태생이지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화가 클레르 타부레(Claire Tabouret)의 작품이다. 수년에 걸쳐 아네스 베는 꽃, 물 그리고 건축디자인에 대해 본인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이미지를 패션과 접목하는 섬유 프린트 작업을 여러 번 시도했다. 이끼 덮인 계단이나 잔디밭 위에 옷을 펼쳐놓고 아이폰으로 자신이 결합한 이미지를 촬영하는 예술 프로젝트를 실시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네스 베다운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아네스 베는 이렇게 말한다. “저들이 내 진짜 모델인 걸요.” 아네스 베가 찍은 사진은 〈유별난 여자애들〉이라는 책에 삽화로 수록됐다. 아네스 베에게 집은 무엇보다 사랑하는 장소이자 끝없는 영감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이제 아네스 베는 파리 10구에 있는 사무실을 다시 열고 매일 출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이 집은 여전히 그녀에겐 최고의 안식처이자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실험실 같은 곳이다. 야생화가 만발한 들판에 자리 잡은 정원 스튜디오에서 온전히 개인 예술 프로젝트에 몰두할 때는 가족과 친한 친구 외에 외부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 그의 창작활동은 결국 넥스트 패션 프로젝트의 초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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