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린이를 즐겁게” 되돌아 본 100년 전의 방정환 선언

2023. 5. 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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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외벽에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판을 설치한 모습. 연합뉴스


청소년 87% “행복하지 않다”, 사교육도 큰 부담


어린이 행복·안전 지키는 데 국가 미래 달렸다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를 잘 키우는 데 있을 뿐입니다. 다 같이 내일을 살리기 위하여 이 몇 가지를 실행합시다.” 1923년 5월 소파 방정환이 발표한 ‘어린이 선언’의 일부다. 10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 다시 돌아봐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유엔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국제연맹 총회의 ‘제네바 아동 권리 선언’(1924년)보다도 앞선 선구적인 발표였다. 한 해 전인 1922년에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에도 어린이라는 미래에 주목해 어린이날을 선포했다. 오늘은 어린이날 선포 101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날이다.

방정환은 어린이 선언에서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현재도 이런 목표를 충분히 이뤘다고 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경제적인 생활 여건은 좋아졌지만 어린이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행복감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여덟 명 중 일곱 명꼴(87%)은 행복하지 못한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1~12월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아동·청소년 2231명을 조사한 결과다. 학교 밖 사교육 시간은 초등학생이 중·고교생보다 약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돌봄 공백으로 인한 ‘학원 뺑뺑이’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이의 일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인 안전은 곳곳에서 위협받고 있다. 어린이 보호를 위해 설정한 스쿨존조차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달 8일에는 대전시 서구 둔산동의 스쿨존을 걸어가던 9세 어린이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고 말았다. 지난달 28일에는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대형 화물이 비탈길을 굴러와 등굣길 어린이를 덮치는 사고도 있었다. 이 일로 10세 어린이 한 명이 숨지고 다른 세 명은 부상을 당했다. 부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어린 자녀까지 동반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도 잇따른다. 명백한 살인이고 최악의 아동 학대다. 어린이는 결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다. 여성 한 명당 평생에 걸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한때 100만 명을 웃돌았던 연간 출생아 수는 지난해 25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시대와 장소에 상관없이 모든 어린이는 소중하지만 저출산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어린이날을 맞아 우리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도록 기성세대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어린이의 안전과 행복에 국가의 미래가 달렸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친 시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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