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시험 ‘5탈자’ 경찰7급 채용? 당사자들도 반대 왜
국가수사본부는 최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졸업 후 5년 동안 변호사 자격증을 따지 못해 더는 변호사시험을 볼 수 없는 이른바 ‘오탈자’들을 현장 팀장급에 해당하는 경사직(7급)으로 특별채용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늘어난 수사 범위와 업무에 수사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투입하는 방안으로 거론된 아이디어였다. 경찰 입장에선 감소세인 변호사 특채 지원자 대신 일정한 법 지식을 갖춘 이들을 수사 역량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고, ‘오탈자’들에겐 구제책이 될 수도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탈자’ 모임 등에선 “명예훼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경찰은 이미 국가수사본부가 출범한 2021년부터 변호사 특채 인원을 기존의 2배인 40명으로 늘렸지만 지원자 수가 줄어들고 경쟁률도 급감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청이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변호사 특채 지원자는 2018년 227명에서 지난해 70명으로 줄었고 경쟁률은 11.3대 1에서 1.8대 1까지 내려왔다. 이런 상황에 대한 여러 대안 중 하나로 오탈자 특채 카드가 제출된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오탈자들도 법 공부를 오래 했기 때문에 시험은 통과하지 않았어도 법적 전문성은 어느 정도 갖춘 인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탈자’들은 오히려 반발하고 있다. 선택지가 늘어난 게 아니라, 로스쿨의 근본적 문제를 외면하는 미봉책이라는 것이다. 로스쿨 4기생이자 ‘오탈자’인 최모(41)씨는 “변호사 시험 응시제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회유책이 아닌지 의심된다. 일부를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더는 시험에 응시할 수 없게 한 현행 제도하에선 ‘오탈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1·2회 변호사시험을 제외한 나머지 회차 시험의 합격률은 50%~60%대였고, 올해 실시한 12차 변호사 시험 합격률은 52.99%였다. 올해 기준 누적 오탈자 수는 15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변호사 시험 응시 횟수를 제한한 변호사시험법이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며 7차례 헌법소원을 청구했지만, 기각 또는 합헌 취지의 판단만 나왔다.
‘오탈자’ 모임 등의 반응은 더 강경하다. 지난 2일 오탈자 특채 반대 성명을 낸 평생응시금지철폐연대 이석원 회장은 “경찰은 경찰대, 간부후보생 등 출신을 중시하는 조직”이라며 “오탈자 특채는 사실상 처음부터 탈락자라는 낙인을 찍은 상태로 일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탈자’들 사이에서는 경찰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오탈자’들이 부정적 존재로 인식되고, 비판의 대상이 됐다는 이유다.
경찰 내부에서도 정반대 이유로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의 한 일선서 과장은 “특채는 전문성을 요구하는 자를 뽑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출소에 근무하는 한 순경은 “시험을 통해 자격을 얻지도 않은 사람에게 과도한 특혜를 주려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안팎에서 반발이 일자 경찰은 난감해하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일 “역량 있는 사람을 외부에서 채용하는 것은 수사 역량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다. 아이디어 차원일 뿐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이찬규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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