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비 부메랑…적자에 한숨 쉬는 ‘발·트·머’ [위기의 명품 플랫폼]
김혜수, 김희애, 주지훈.
한국을 대표하는 명배우이자 광고업계를 주름잡는 ‘톱스타’들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셋 모두 온라인 명품 플랫폼 모델로 기용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김혜수는 ‘발란’, 김희애는 ‘트렌비’, 주지훈은 ‘머스트잇’ 모델로 활약했다. 이른바 ‘발·트·머’로 불리는 ‘명품 플랫폼 빅3’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국내 명품 시장은 전에 없는 호황을 누렸고, 명품 플랫폼 3사는 억 소리 나는 광고비 지출을 불사하면서까지 치열한 경쟁을 이어왔다.
하지만 엔데믹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경기 불황에 소비 시장이 침체하면서 거래액과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것. 막대한 광고비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고 투자 시장도 얼어붙었다. 발·트·머가 지난해 나란히 수백억원대 적자를 기록하면서 명품 플랫폼업계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짝퉁’ ‘꼼수 마케팅’에 신뢰 ‘뚝’
명품 플랫폼업계 위기는 실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매출 기준 업계 1위 발란은 지난해 영업손실 37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186억원) 대비 적자폭이 두 배 이상 커졌다. 머스트잇 역시 같은 기간 영업손실이 100억원에서 168억원으로 늘었다. 2020년 기록한 14억원 흑자가 무색할 지경이다. 3사 중 트렌비가 유일하게 전년 대비 적자폭을 줄였지만 지난해 기준 영업손실이 233억원에 달한다. 매출(225억원)보다 영업손실이 더 큰 상황이다.
단순히 수익성만 악화된 것이 아니다. 그간 명품 플랫폼을 이용하던 소비자도 대거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매출과 직결되는 앱 사용자 수 자체가 쪼그라들었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발란 1~3월 평균 월간 순이용자 수(MAU)는 59만8000명에서 올해 같은 기간 36만3000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트렌비와 머스트잇은 더 사정이 안 좋다. 트렌비는 72만명에서 34만3000명으로, 머스트잇은 31만명에서 18만명까지 감소했다.
단순히 소비 침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진이다. 소비 심리가 식었다지만 오프라인에서는 명품 인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 명품관마다 늘어선 대기줄은 여전히 길고 올해 1분기 백화점 3사 명품 매출은 전년 대비 7~9% 늘었다. 그동안 터져 나온 여러 사건 사고 탓에 명품 플랫폼 시장이 ‘신뢰’를 잃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명품 플랫폼 시장을 강타했던 ‘짝퉁 논란’이 대표적이다. 무신사를 비롯해 여러 플랫폼에서 가품을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신뢰가 크게 추락했다. 지난해 5월 발란에서 판매된 ‘나이키 에어조던1 × 트레비스 스캇 레트로 하이 모카’ 운동화가 가품으로 드러났고 4개월이 지난 10월, 역시 발란이 판매한 ‘스투시 월드투어 후드집업’이 가품 논란에 휩싸였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조금 싸게 사고 불안에 떨 바에야, 오프라인에서 구입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한 번 부정적으로 변한 소비자 인식을 되돌리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도 있었다. 발란은 지난해 3월과 4월, 외부 해킹으로 약 162만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며 5억원 가량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트렌비 역시 지난해 시스템 접근 권한을 제한하지 않는 등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360만원 과태료를 물었다.
최근에는 ‘꼼수 마케팅’으로도 뭇매를 맞았다. 발란이 특정 브랜드 운동화를 ‘30만원’에 판다고 표시했지만, 한 치수에만 해당 가격을 적용했을 뿐 나머지 운동화는 70만원대에 가격이 책정돼 있었다. 그마저 할인가를 적용한 크기는 재고가 부족해 소비자가 구입할 수 없었다. 공정위는 발란의 이런 소비자 유인 행위를 눈속임 상술로 보고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 밖에도 머스트잇과 트렌비가 KC인증을 받지 않거나 표기가 되지 않은 어린이 제품을 판매하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투자 환경도 악화됐다. 한 자본 시장 업계 관계자는 “금리 인상으로 가뜩이나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적자폭이 늘어나고 있는 명품 플랫폼에 다들 투자를 꺼리고 있다. 신규 투자를 자제하면서 기업가치가 더 떨어지기를 지켜보고 있는 VC가 많다”며 “자금난에 시달리는 몇몇 업체는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올해 안에 명품 플랫폼 구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발란 ‘업체 관리’, 머스트잇 ‘신사업’
발·트·머 3사 모두 현재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준비한 위기 타개책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발란은 ‘비용 절감’에 돌입했다. 올해부터 신규 이용자 확보보다는 재구매율 등 수치 관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리스크가 큰 신사업은 축소했다. 국내 중소형 사업자에게 명품을 판매하는 B2B 사업 ‘발란 커넥트’가 대표적이다. 명품 부티크(해외 도매상)로부터 구입한 명품을 국내 병행수입 업체에 되파는 방식으로, 적잖은 운전자금이 필요한 사업이다. 발란은 장기적으로 B2B 사업 비중을 최소화하고, 입점 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오픈마켓에 집중하겠다는 방침이다. 최수연 발란 최고전략책임자는 “불황일수록 업의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입점 업체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그동안 제각각이었던 입점 업체 판매·배송·반품 방식을 표준화하는 등 고객 만족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최근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입점 업체를 위해 20억원 규모 ‘상생자금’을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머스트잇은 방향이 조금 다르다. 오히려 신사업으로 수익 개선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직매입 상품’ 판매를 확대하고 풀필먼트 서비스 사업을 새로 시작할 계획이다. 물건 판매를 희망하는 업체에 상품 배송과 보관, 포장 등 물류를 대행하는 서비스다. 다만 광고비 등 마케팅에는 허리띠를 졸라맨다. 머스트잇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부터 브랜딩과 오프라인 광고를 축소했고 온라인 마케팅 영역에서도 CRM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효율화를 진행 중”이라며 “노력의 결과 지난해 12월 광고비는 상반기 월평균 대비 약 80% 절감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트렌비는 급증하고 있는 ‘중고 명품 시장’을 겨냥한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중고 명품을 새 명품으로 교환해주는 ‘셔플’ 서비스다. 이용자는 갖고 있던 명품을, 동일한 가치를 지닌 트렌비 상품으로 교환할 수 있다. 바꾸고자 하는 명품이 더 비싸다면 차액을 지불하고 구매할 수 있고 반대로 더 저렴한 명품을 살 때는 차액을 환급받을 수 있다.
업계 최대 불안 요소로 꼽히는 ‘가품’ 문제 해결에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트렌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기반 감정 시스템, 구입·유통·감정 이력이 기록된 NFT 보증서 등 그동안 트렌비가 고도화해온 기술로 시장 신뢰를 높이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실제 트렌비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품으로 이슈가 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07호 (2023.05.03~2023.05.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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