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이니 “까라면 까”...공기업 직원은 서럽습니다 [오늘도 출근, K직딩 이야기]
한때 ‘신도 못 들어가는 직장’이라 불리던 공기업 위상이 흔들린다. 공기업은 과거부터 ‘취준생’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연봉은 공무원보다 높고 직업 안정성이 일반 사기업보다 좋았던 덕분이다. 한국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국민연금 등 비교적 높은 연봉을 자랑하는 금융 공기업은 채용 시험이 ‘A매치’라고 불릴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그야말로 최고 인재들의 격전지였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등 다른 일반 공기업도 만만찮은 인기를 자랑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위상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원인은 2가지다. 서울, 수도권에서 멀어진다는 점과 사회적 위상이 많이 깎인 탓이다.
사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은 오래 전부터 진행돼온 일이다. 서울에 위치한 공기업들을 지방 혁신도시로 보내는 작업은 10여년간 꾸준히 이뤄졌다. 국민연금(전북 전주), LH(경남 진주), 한국자산관리공사(부산), 한국거래소(부산) 등이 지방으로 이전했다. 기관들은 이전할 때마다 강력한 내부 반발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이전에 성공해도 뒷말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 국민연금이 대표적인 예다. 회사 안팎으로 “전주로 간 탓에 기금을 운용할 우수 인력이 모이지 않는다”는 주장이 아직도 제기된다.
최근 논란이 커진 것은 산업은행 이전 때문이다. 윤석열정부는 국내 최대 국책은행 중 하나인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한다는 정책을 세웠다. 이후 산은 노조를 비롯해 내부 조직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야당인 민주당까지 동원해 반발 여론을 키웠지만 정부 의지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5월 3일 국토부 고시를 통해 이전이 사실상 확정됐다.
산은 직원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불도저 행정’보다 다른 직장인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는 게 더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직장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한 직원은 “자신들은 수도권에 남아 있으니 상관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일부 직장인들의 태도가 견디기 힘들었다. 꼬우면 이직하라는 발언까지 들었다. 그나마 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하는 산업은행 직원들에게 힘내라고 응원을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는 데서 위안을 얻었다”고 느낌을 전했다.
강제 이전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뜻이 곡해된 것에 대한 우려도 컸다. 지역 비하 논란이 대표적이다. 특히 일부 야당 의원이 부산을 시베리아에 빗댄 표현을 하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은행 직원은 “절대 부산시와 시민들을 비하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누구라도 갑자기 연고가 없는 곳에 끌려가면 힘들지 않나. 그런 점을 배려해달라는 것이지, 지방을 비하하려는 뜻은 없다”고 강조했다.
강제 이전뿐 아니다. 낮아진 사회적 위상도 직원들의 사기를 깎는다. 철밥통, 무능력 등 딱지가 붙어 직원들이 힘을 내지 못한다. 사회적 문제가 터지면 정치인들이 ‘공기업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책임전가식으로 들볶는 것도 조직 분위기 저하에 한몫한다.
대표적인 곳이 LH다. 과거 LH 땅 투기 논란 이후 LH 직원들은 ‘너도 미리 정보 듣고 땅 매매했냐’ ‘LH직원이면 부자겠다’ 같은 조롱에 한동안 시달렸다. LH 한 직원은 “일부 직원의 일탈이 마치 전체 조직의 잘못인 것마냥 몰아붙이는 여론을 보면 지칠 때가 많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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