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여당 출입기자입니다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곽우신 기자]
▲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남소연 |
국민의힘이 공영 방송사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의 출연 패널의 편향성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습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몇몇 좌파매체들이 KBS1라디오를 가지고 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아침 출근길에는 전 뉴스타파 기자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오마이뉴스> 출신이 나와서 뉴스를 전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은 지난 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가짜발언을 일삼는 좌파패널 출연자들을 전수조사하고 검증해서 민형사상 모든 고발조치를 끝까지 취할 것을 강력히 경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박대출 의장과 박성중 의원이 지목한 '좌파매체 소속 패널', 바로 접니다. 5년 가까이 여당 출입기자로 일해온 저로서는 출입처에 이런 방식으로 지목되는 경험이 꽤나 생경합니다.
작가들의 하소연 "누구를 섭외해야 하느냐"
박대출 의장 등은 "윤석열 대통령 방미 기간 5일 중 KBS1 라디오에 어떤 출연자들이 나왔는지 분석"한 대한민국언론인총연합회와 KBS방송인연합회의 보도자료를 근거로 저를 비롯한 출연자들을 '좌파패널'로 꼽았습니다. 이 보도자료에 거론된 분류표, 패널 성향 분류 기준이 자의적이란 점은 이미 이전 기사를 통해 지적한 바 있습니다(관련 기사: '좌파가 KBS라디오 점령했다'는 박대출, 질문 받자 "기자들 예의가 없다" https://omn.kr/23rpk ).
다만, 몇 가지는 더 짚고자 합니다. 우선, 대한민국언론인연합회 등이 말하는 '좌파패널'이 다수인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운 좋게도 여러 방송사의 시사 라디오에 종종 나갑니다. 여당 출입기자 특성상 방송 작가들과 소통할 기회도 꽤 됩니다. 작가들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는 '국민의힘의 누구를 섭외해야 하느냐'입니다. '누가 섭외를 거절했다' '누가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다'라는 하소연이 다수입니다. 보수 여권 인사들이 시사 라디오 출연을 꺼리다 보니, 특정 주제를 가지고 여야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지적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는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애초에 보수진영 패널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도망다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주제가 대통령이거나 영부인이면 긴급 펑크 내는 경우도 다반사"라며 "무엇보다 공천 하나만 바라보고 마이크 앞에 서기 때문에 국민들이 바라는 공정한 시각에서의 마음의 소리가 아니라 굴종의 궤변을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러면 청취율이나 시청률이 안 나오고, 그러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이 일상다반사"라고도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지적 지점은 '좌편향 패널들이 윤 대통령 방미 기간 중 외교 순방 성과를 폄훼했다'는 국민의힘의 주장입니다. 사실, 해당 분류표에 등장하는 인물 중 상당수는 아예 외교 순방과 관련한 주제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한번THE뉴스'라는 코너를 맡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출연하고 있는 저도 이 분류표에 한 번 등장합니다. 그런데 분류표에 거론된 지난 4월 25일, 저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사 정원 축소 문제와 엠폭스(원숭이두창) 확진자 증가 이슈를 다뤘습니다.
김준일 <뉴스톱> 수석에디터 역시 같은 점을 지적했습니다. 김 수석에디터도 2일 본인 페이스북에 "관련 없는 주제를 다룬 패널이 다수 포함됐다"라며 "(내가 출연한) 4월 26일 주제는 '수단 교민 구출로 본 한국 정부의 교민 구출 일대기'였다"라고 강조했습니다. "28명 교민을 안전하게 구출한 정부를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나 말고도 '좌파 딱지'가 붙은 상당수는 한미정상회담과 관련이 없는 이슈를 다뤘다"라는 지적이었습니다.
방송에 섭외된 패널의 쏠림 현상에 대해 보수정당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패널이 어떤 주제로 출연했는지, 그래서 무슨 발언을 했고 그 발언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실 왜곡이 있었는지도 함께 설명해야 합니다. 잘 들어맞지도 않는 표를 가지고, 심지어 기자들까지 임의로 '진보좌파' '친야권성향'으로 딱지를 붙이고, 비난의 근거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 건 책임 있는 공당의 자세는 아닐 겁니다.
"기자들 예의가 없다" 그 대화는 이랬습니다
"의장님 안녕하세요?"
"응."
"저희 오늘, 라디오 패널 관련 말씀해주신 것 때문에."
"응."
"그런데 그 패널 분류가"
"응? 뭐가?"
"패널 분류가 사실 조금 부적절한 거 아니냐, 이런 이야기도 있어서요."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빼요."
"왜요?"
"빼라고."
"왜요? 왜 빼... (웃음) 백블 안 해주시는 거예요? 패널 관련해 가지고 발언?"
"그거 빼라고."
"그럼 녹취 안 하면, 답변해주실 건가요? 의장님."
"누구예요?"
"(출입증 보여주며) 네, 오마이뉴스 곽우신 기자이고, 정식 출입기자입니다."
"아아, 오마이뉴스, 그래."
"오마이뉴스에는 답변 안 하시는 거예요?"
"그거 빼라고."
"(휴대전화를 집어 넣으며) 빼면 해주실 거예요? 그럼 안 하겠습니다."
박대출 의장은 저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의장실로 걸어만 갈 뿐, 끝까지 답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패널의 어떤 발언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왜 답변을 거부하는지 계속 물었지만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는 다만, 의장실로 들어가면서 "기자들 그렇게 예의 없이 하면 안 돼"라는 말만 남겼습니다. 그 이후에는 "취재에 대한 기본 예의부터 배우고 오시라"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박 의장이 '예의가 없다'라고 지적하길래, 같이 있던 당 관계자에게 '혹시 무엇이 예의가 없다고 느끼셨을지' 물었습니다. 해당 관계자는 "저도 잘 모르겠다"라고 자세한 답을 피했습니다. 답변을 안 하고 자리를 떠나는 그를 따라가면서 목소리가 조금 커지기는 했지만, 특별히 제 질문이나 발언이 무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과거 여권이 그랬듯 기자의 복장을 문제 삼는 건가 싶었지만, 당시 저는 슬리퍼가 아니라 로퍼(구두)를 신고 있었습니다.
▲ 취재진에 둘러싸인 이진복 정무수석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4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해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예방한 뒤 나서며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에게 공천 문제를 거론하며 한일 관계에 대한 옹호 발언을 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다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 이 때도 기자들은 녹취를 위한 휴대폰과 녹음기 등을 손에 들고 있다. |
ⓒ 남소연 |
혹시, 제 질문을 '엠부시(쉽게 접촉하기 어렵고 취재에 응하지 않는 인물을 주로 지나다니는 길목이나 동선에서 대기하다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며 취재하는 방식)' 취재 일종으로 봐서 '예의 없다'는 말이 나왔을까요?
보통 당의 회의가 끝나면 회의를 주재한 인사가 정식으로 백그라운드 브리핑에 임합니다. 기자들이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면 회의실 밖에서 바닥에 앉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장 이날 마이크 앞에 섰던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관련 질문이 나오자 "충분히 정책위원회 의장께서 최고위원회에서 충분히 설명 드린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자세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발언 당사자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궁금증은 그 뒤에야 풀렸습니다. 국민의힘 공정미디어위원회의 논평 덕분입니다. 공정미디어위원회는 "취재를 위해 질문을 하려면 소속 매체와 기자 이름을 밝혀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라며 "녹음을 할 경우 당사자의 허락을 구해야 함은 물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18년부터 국회를 출입했지만, 국회에서 국회의원에게 개별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요구할 때 '휴대전화 녹음'을 사전 허락받는 게 '예의'였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참고로, 당사자 간 통화나 대화에서 일방이 녹음하는 건 법에도 저촉되지 않습니다. 저의 신분을 억지로 숨기지도 않았습니다. 국회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었고, 박대출 의장의 질문에도 분명하게 제 이름과 소속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취재의 기본도 지키지 않고 시비꾼처럼 질문하고 정치꾼처럼 기사화했다"라며 "이건 좌우를 떠나 기본에 대한 문제다. 정의를 논하기 전에 기본을 지키길 바란다"라는 말을 당으로부터 들어야 했습니다.
기자는 누구에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기자는 정치인에게 어디까지 예의를 지켜야 할까요? 일부 기자들은 의원들에게 '선배'라고 부르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정치인들이 기자들보다 나이도 많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정치인들 중 일부는 기자를 하대하며 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자는 정치인에게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기자는 질문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사람이고, 기자가 예의를 지켜야 할 건 시민과 독자들입니다. "오마이뉴스, 이런 기사 쓰고도 안 부끄럽나"라고 공정미디어위원회가 비난했지만, 시민과 독자 앞에 당당하다면 굳이 부끄러울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대출 의장도 기자 출신이니 당연히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국민의 알 권리'는, 민주주의에서 핵심적으로 보장받는 권리 중의 하나입니다. 국민은 본인의 정치적 의사 결정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고, 이를 위해 기자들은 국민을 대신해 물어야 합니다. 그러니 기자의 질문은 국민의 질문이기도 하고, 국민의 봉사자인 정치인은 그 질문에 필요하다면 답해야 합니다.
당에서는 저를 향해 "박 의장이 지적한 '좌파 카르텔' 중 한 명"이라며, 제 질문과 기사를 "언론 권력을 이용한 사적인 보복" "언론의 사유화"로 규정했지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박대출 정책위원회 의장께서 제 질문에 불쾌하셨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박 의장께서도 굳이 제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집권여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공당의 정치인으로서,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대신 질문하는 자라는 점을 상기시켜드리고 싶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께서 후보 시절 들었던 '좌파입니다, 답변하지 마십시오'라는 조언을 박대출 의장도 따르는 게 아니라면, 최소한 독자와 시민에게, 국민이 궁금해 하는 질문에 대해 답변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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