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있어 내 가난한 인생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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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에 가까운 나태주 시인이 딸에게 편지를 쓴다.
아버지는 시인, 딸은 산문가.
충남 공주에 사는 아버지와 대학 진학 이후 죽 서울에서 살아온 딸은 대화가 많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딸은 그런 아버지가 밉다가 애처로웠다가 지금은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 눈을 감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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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나민애 지음
앤드, 320쪽, 2만2000원
팔십에 가까운 나태주 시인이 딸에게 편지를 쓴다. 사십이 넘은 나민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문학평론가)는 에세이로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전한다. 둘은 부녀다. 아버지는 시인, 딸은 산문가. 둘 다 문장의 고수들이다.
“그래 나에게도 이런 딸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살아가기 힘든 날에도 용기가 생겼고 가슴이 펴졌고 다리에 힘이 주어졌다… 실상 딸은 누구나 아빠 된 사람에게 현실이 아니고 하나의 환상이며 동경 같은 존재.”(나태주)
“거미줄 같은 지하철 역사 안에서 내가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느껴질 때, 거기 벤치에 앉아 울 때에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서울이 나를 괄시할 때에도 나는 아버지의 진지한 얼굴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을 수 있었다. 아버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가 여기 앉아 있네. 여기서 조금만 울다가 집에 갈게요.”(나민애)
나태주 나민애 부녀의 편지 에세이집 ‘나만 아는 풀꽃 향기’가 출간됐다. 가족이라는 작고 눈물겹지만 무엇보다 강력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준다. 독자들은 때론 부모의 자리에서, 때론 자식의 자리에서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게 된다.
“아들아이가 뻣뻣하게 뒤로 몸을 버티는 스타일이라면 딸아이는 차악 가슴에 안겨드는 자세다. 물올라 부드러운 나뭇가지처럼 낭창낭창 제 몸을 상대방의 몸에 기대어 온다. 그럴 때면 가슴이 간질간질해지고 눈빛이 새몰새몰 아득해질 정도다.”(나태주)
“내 얼굴에 부모의 얼굴을 함께 지니고자 희망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 아빠 없이는 내가 아닙니다.”(나민애)
충남 공주에 사는 아버지와 대학 진학 이후 죽 서울에서 살아온 딸은 대화가 많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 시인이 쓴 서문과 나 교수가 쓴 에필로그를 보면, 두 사람은 함께 지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서로를 향해 글을 썼다.
“멀고 먼 아버지가 나에게 왔고 어색해하던 내가 아버지에게 도착했으니 우리는 무릎을 마주 대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우리는 멀지 않은 시기에 다시 헤어질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세상으로 가고, 나는 나의 세상에 남을 것이다.”(나민애)
나 시인은 딸의 생애를 이루는 주요 장면들을 하나 하나 꺼내놓고 그 때 자신이 얼마나 미안했는지, 그리고 딸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들려준다. 나 교수는 그동안 말하지 못했고 어쩌면 앞으로도 말할 수 없을지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두 부녀의 삶에서 가난은 지독했다. 아버지는 가난했고 의지할 곳이 없었고 몸이 약했다. 그래서 딸에게 미안했고 딸이 씩씩하게 자란 게 대견했다. 딸은 그런 아버지가 밉다가 애처로웠다가 지금은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 눈을 감을까 걱정이다.
“딸아, 고맙다/네가 있어서 내 가난한 인생이/오래 좋았단다.”(나태주)
“아버지, 가난이 반갑지는 않았지만 원망스럽지도 않았어요. 그건 ‘우리’의 것이었으니까요. 아버지가 나 대신 가난을 다 막아 줬으니까요.”
책은 나 시인이 쓴 편지 30여편과 나 교수의 에세이 10여편을 수록했다. 나 시인이 딸을 생각하며 쓴 시 17편도 만날 수 있다.
“딸아이의 머리를 빗겨 주는/뚱뚱한 아내를 바라볼 때/잠시 나는 행복하다/저의 엄마에게 긴 머리를 통째로 맡긴 채/반쯤 입을 벌리고/반쯤은 눈을 감고/꿈꾸는 듯 귀여운 작은 숙녀/딸아이를 바라볼 때/나는 잠시 더 행복하다.”(나태주 시 ‘행복’ 중)
책을 읽다 보면 사진집 ‘윤미네 집’을 떠올리게 된다. 토목공학자이자 사진작가였던 전몽각 교수가 딸 윤미가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의 모습을 찍은 사진집이다. 나 시인은 글로 딸의 생애를 기록했다. 아마도 딸은 오래도록 이 글로 된 앨범을 들춰볼 것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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