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문건 작성이 조현천 개인 일탈? 수상한 윤 정부 검찰 [김형남의 갑을,병정]
[김형남 기자]
▲ 3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 계엄령 문건 의혹의 핵심 인물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뒤 서울서부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
ⓒ 연합뉴스 |
검찰은 계엄령 문건 작성과 관련된 내란 음모 등의 혐의에 대해서는 아직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치 관여, 업무상 횡령, 직권남용 등 계엄령 문건 작성과는 무관하지만 이미 범죄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판단한 다른 혐의들만을 기소한 상태다. 때문에 8일에 열리는 재판은 먼저 기소된 혐의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검찰이 기소한 내용을 보면 진행 중인 내란 음모 혐의 수사의 향방에 대해 의구심이 생긴다. 조 전 사령관이 기소된 범죄 혐의를 추려보면 이렇다.
내란음모 혐의 수사 방향에 대한 의구심
조 전 사령관은 2016년 2월 치러진 자유총연맹 총재 선거에 개입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부하들에게 친정부 인사로 후보 물색까지 지시한 조 전 사령관은 그 해 총재 선거에서 당선되었던 김아무개 후보 측으로부터 지원을 청탁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는 국회의원을 지내고 박근혜 정부 대통령비서실에서 특별보좌관도 역임했던 인사다. 조 전 사령관은 부하들에게 총재 선거 판세를 확인하게 하고, 김 후보 측 인사들과 접촉하게 하였으며, 김 후보의 선거에 기무사 조직을 동원해 도움을 줄 것을 지시하였다.
2016년 3월에는 급히 현금이 필요하다며 부하들에게 근거를 남기지 말고 기무사 예산에서 돈을 만들어 올 것을 지시했다. 이에 기무사는 허위 사업계획을 세워 정책 첩보 예산을 빼돌렸고, 이를 현금으로 모두 인출하여 총 3000만원의 불법 자금을 만들었다. 조 전 사령관은 이 3000만원의 나랏돈을 용처를 알 수 없는 개인적인 용도로 횡령, 사용하였고 증빙자료도 남기지 않았다.
2016년 7월에는 사드 배치 반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예비역 장성들을 모아 예산을 들여 식사 대접을 한 뒤에 부하들에게 예비역 장성, 단체를 활용해 사드 배치지지 여론을 형성할 방안을 강구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고 부하들의 돈을 갹출하고 자기 돈을 더해 1600만원을 만들어 예비역 장성 8명에게 200만원 씩 '사드배치 찬성 활동비'로 건네고, 기무사 예산 1600만원을 빼돌려 돈을 낸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자기도 가진 것으로 보인다.
▲ 2015년 9월 10일 조현천 기무사령관이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위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 이희훈 |
2016년 10월 최순실 태블릿PC가 발견되고 박근혜 퇴진 촛불이 시작되자 조 전 사령관은 정권 보위를 위해 부하들로 하여금 예비역 장성들과 보수단체를 조직하여 맞대응 하게끔 지시하기도 하였다. 이에 기무사는 예비역 장군들에게 맞불집회, 신문 광고 게시, 언론 기고 요청을 광범위하게 요청하였고, 기무사의 청탁을 받은 다수의 예비역 장군들은 이에 따라 조직적으로 활동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사령관의 범죄 행각은 대부분 국가예산을 위법하게 빼돌려 기무사가 관여할 수 없는 국내 정치 이슈에 공작 자금으로 투입한 일이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고 보면 조 전 사령관의 행위는 나랏돈을 횡령하여 예비역 장성 등 특정 인물들에게 뇌물을 주고 박근혜 정부를 위해 활동해줄 것을 청탁한 행위다. 즉, 누군가는 검은 돈을 받고 조 전 사령관의 청탁을 들어준 것이다. 이 경우 돈을 받고 청탁을 이행한 사람들도 수사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검찰은 조 전 사령관만을 횡령, 직권남용, 정치관여 등으로 기소하였을 뿐 돈을 받고 움직인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범죄를 조 전 사령관 개인의 일탈 행각 정도로 정리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더 중요한 것은 공직자가 부하들까지 동원하여 국가 예산을 횡령하여 보수단체, 예비역 장성에게 쌈짓돈으로 나눠준 대담하고 엄청난 범죄 행위가 과연 조 전 사령관의 독단적인 행동이었느냐는 점이다. 사드 배치, 박근혜 지지 세력 형성 등은 박근혜 정권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문제였다. 조 전 사령관이 과연 윗선, 즉 당시 박근혜 청와대나 국방부와의 교감 없이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일개 기무사령관이 단독으로, 본인 의지에 따라 국고를 횡령해서 정치 공작에 활용하였다는 것은 일반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선은 조 전 사령관에서 멈춘 듯하다. 공소장에 기재된 모든 범죄의 주모자, 지시자는 조 전 사령관으로 갈음되어있다. 윗선이 있는지, 누구와 이러한 범죄를 공모하지는 않았는가에 대해 수사를 하기는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윤석열 정부 검찰의 자기부정
이러한 수사 흐름은 계엄령 문건 수사와 관련한 검찰의 뜨뜻미지근한 태도와도 연결된다. 2018년 계엄 문건 수사를 맡았던 노만석 현 서울고등검찰청장 직무대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전 사령관의 내란음모 혐의는 넉넉히 인정된다"며 신병 확보만 되면 기소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노만석 직무대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검사 시절 측근으로 꼽히는 특수통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 검찰은 기자들에게 내란 음모 혐의 입증이 어려울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내란 음모죄가 성립하려면 타인과의 공모 여부를 밝혀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는 식이다. 검찰이 검찰 스스로를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검찰은 윗선으로의 수사 확대를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계엄 문건도, 정치 개입도, 국고 횡령을 통한 보수세력 지원도 모두 조현천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규정하고 그 선에서 모두 정리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조 전 사령관에게 걸려있는 모든 범죄 혐의는 실상 박근혜 정부가 기무사를 통해 벌인 조직적인 국기 문란 행위다. 5년을 도주하던 범죄자가 정권이 바뀌자 갑자기 당당하게 공항에 나타나 자진해서 수사를 받겠다는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검찰의 수사 행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핵심은 누가 조현천과 공모했는가다. 조현천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이미 명백히 만천하에 드러난 지 오래다. 드러난 혐의들만 주워 담아 대충 처벌하고 마무리할 심산이라면 검찰은 '우리 편 봐주기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을 총칼로 위협해 평화로운 촛불 시위를 진압하려는 가공할 계획을 세운 이들이다. 윤석열 정부와 검찰은 이런 자들과 한 배를 타고 갈 것인가? 조현천 수사가 그 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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