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성 이야기? '성+인물'의 진짜 문제점

김민준 2023. 5. 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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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성+인물>

[김민준 기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성+인물> 포스터 이미지
ⓒ 넷플릭스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다 보면, '야동(포르노) 보는 것의 당연함'이 얼마나 견고하게 정당화되는지를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남자라면 주기적으로 성적 욕구를 '야동'으로 풀어줘야 한다든가, 여자들은 모르는 남자들끼리만 은밀하게 공유하는 다양한 정보들까지. 이 얘기가 대화 소재로 오르내릴 때마다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건 개인의 내밀한 욕망이 너무 쉽게 일반화되고 가볍게 다뤄진다는 점과 '야한 얘기'가 남자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2014년 방영했던 JTBC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은 언제나 침묵했던 주제(성)를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분명 유의미했다. 하지만 부제인 '남자들의 여자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듯, 화자는 언제나 남자였고 여성은 주로 대상화된다는 점에서는 앞서 말했던 '노골적이고 야한 이야기'는 여전히 남성들이 주도한다는 한계를 깨진 못했다. 물론 소위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일컬어지는 물결이 휘몰아치기도 전이었으니 그런 걸 기대하는 게 오히려 무리수였을지도 모르겠다.

성 엄숙주의 vs. 솔직함? 복잡한 맥락을 지우는 이분법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성+인물>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마녀사냥>의 출연자였던 신동엽과 성시경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성+인물>로 돌아왔다.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면서 소위 '섹드립'을 치는 분야의 권위자(?)인 신동엽과 <마녀사냥>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받았던 성시경의 만남이다. <마녀사냥>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AV 배우들과의 만남에 여러 노골적인 이야기들이 공개되면서 <성+인물>은 삽시간에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성+인물>이 의도하는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성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섹슈얼 토크를 시도하는 것. 분명 넷플릭스라는 OTT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시도가 방송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성에 관한 이야기가 남성들에게서, 남성의 시선에서만 유통되는 것은 께름칙하다. 자유로운 섹슈얼 토크를 지향하는 <성+인물>이 착취가 만연한 포르노 성 산업에 대한 옹호로 이어진다는 점만 해도 그렇다. 사실 '한국 사회의 성 엄숙주의가 강하다', '섹슈얼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은 보편적인 욕망인 성욕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점에 도달한다. 다만 그 보편적 욕망이 실제로는 남성의 욕망이라는 점이 문제적이다.

그래서 <성+인물>과 같은 콘텐츠를 통해 '성에 대해 솔직하고 개방적으로 말하자'고 하는 것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솔직하고 어떻게 개방적인지, 누구의 시선에서 솔직하고 개방적인지를 논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인물>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마치 솔직하지도, 개방적이지도 않고 성 문제는 꽁꽁 싸매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AV 배우들과 즐거운(?) 토크쇼를 하는 게 개방적이고 솔직한 것이고, 그것을 비판하면 '성 담론에 대한 논의를 차단하는 일'이 되어버리는 이분법은 너무나 아쉽다.

이 콘텐츠의 성격이 무언가를 조명하고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토크쇼'인 만큼, 논쟁이나 토론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제작진은 무엇을 조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여전히 성적 욕망을 단순히 배출하는 것, 어떻게든 해소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남성적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는 과제는 남는다. 

진짜 성 엄숙주의를 탈피하는 방법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성+인물>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섹슈얼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는 일에) 죄책감을 갖도록 강요받으면서 자라 왔다"는 성시경의 멘트는 참으로 흥미로웠다. 남성으로서, 정말로 그런 죄책감의 강요가 있었냐고 묻는다면, 없지 않았다고 말하겠다. 분명 지난 세월 한국 사회에는 엄숙주의적인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고, 터놓고 섹슈얼 토크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작정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내려놓고 더 노골적으로,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인해 누군가의 피해를 지우고 착취를 지운다면 그게 '성 해방'의 진정한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 성에 대한 이야기는 오히려 더 '사려 깊게' 논의되어야 한다. 반드시 무거워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발화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많은 맥락과 권력 격차의 문제 등을 놓지 않고 '다른 방식의 섹슈얼 토크'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적인 자리에서 남성에게 너무 쉽게 주어졌던 '솔직하고 개방적일 권리'가 모두의 권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원한다면 누구나 재밌게, 하지만 안전하게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는 '19금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것이 진짜 성 엄숙주의로부터 탈피하는 길이다. '그저 더 솔직하고 노골적이기만 한 이야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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