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선물을 직접 고르게 해봤습니다

박여울 2023. 5. 4.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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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고 결정하고 후회해 보는 것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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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여울 기자]

어린이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남편과 상의하여 세 아이들이 직접 선물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전의 어린이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첫째가 어릴 때에는 내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가성비를 따져 미리 결정했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서 배송 온 장난감을 정성스럽게 포장해 두었다. 5월 5일이 되면 어린이날이 어떤 날인지도 잘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순진한 아이에게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함박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건네는 그런 나였다.

하지만 첫째가 자라고 아이가 둘, 셋으로 늘어나는 동안 우리 부부의 어린이날 선물 준비 방법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바뀌었다. 이제는 장난감이라고 할 만한 건 잘 사주지 않는다. 장난감이 많을수록 집정리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에게는 자연물이라는 멋진 장난감이 지천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설사 집 안에서는 장난감이 부족하다 해도 생활 도구를 창의적으로 활용해 훌륭한 놀잇감으로 만들어내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에 최소한의 장난감을 지향해 왔다.

그래서 어린이날, 생일 그리고 성탄절. 일 년 중 이 3일에만 아이들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한다. 가끔씩 가는 마트에서도 장난감 구경을 할 수는 있지만 계획된 소비가 아니기에 구입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어린이날 선물 직접 고르기
▲ 셋째가 고른 장난감 수차례 집었다 내려놓았다를 반복한 뒤 고른 장난감
ⓒ 박여울
 
그런 우리가 올해는 어린이날을 맞이해 집 근처 대형 장난감 전문 매장으로 직접 장난감을 고르러 가기로 한 것이다. 사실 가기 전에 남편과 나는 걱정이 앞섰다. 규모가 큰 매장인 만큼 우리 아이들이 쉽게 제 선물을 고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그런 걱정이었다.

매장을 둘러보기 전 아이들에게는 고를 수 있는 선물의 조건을 간단하게 일러주었다.

1. 1인당 1개
2. 3만 원 내외의 금액
3. 화장품 관련 장난감은 곤란

호불호가 확실한 성향을 지닌 둘째는 장난감 매장을 둘러본 지 15분 만에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병원놀이 세트를 골랐다. 올해 초등학교를 입학한 첫째는 장난감을 신나게 고르는 둘째의 모습을 보며 반응이 시큰둥했다. 아이는 이제 장난감은 유치하게 느껴져서 사고 싶지가 않다고 했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했다. 그래서 장난감 매장이 아닌 다른 곳에 가서 골라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다만 이왕 이렇게 온 김에 여기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보기나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매장을 크게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여전히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해 실망감을 안고 여기저기를 대충대충 둘러보던 아이였는데 특정 코너에 이르자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 자리에서 딸은 5분 정도 고민한 끝에 한 인형세트를 골랐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형의 이웃으로 설정해 가족 역할놀이를 할 계획이란다.

이제 만 26개월이 된 막둥이만 남았다. 아직 선물의 개념을 이해하긴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그저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피규어 하나 정도만 사주면 되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을 가졌다. 아이에게는 내 나름대로 어린이날 선물의 의미를 설명해 주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엄마가 사주겠노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셋째의 모습이 가장 의외였다. 누나들이 고른 선물을 멀뚱이 지켜보던 막둥이도 누나들 못지않게 심각한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곁에서 누나들을 살펴보던 막둥이는 무엇을 살지 몰라 이걸 집었다 저걸 집었다 하며 부산스럽게 카트와 전시된 장난감 코너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결정을 하지 못하는 아이를 지켜보던 내가 점점 지쳐갔다. 아직은 무언가를 고르기에 이른 나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가 다음에 우리 아들 더 크면 좋은 선물을 사주겠노라고 이야기를 하며 그냥 집에 가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 OO이(본인을 말함)는 뭐를 사서 집에 가져갈까요?"라고 말을 했다. 26개월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나도 야무지고 고민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멘트라서 순간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무언가를 사고 싶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이가 내뱉은 한 마디를 그저 귀엽다며 웃고 넘길 수가 없었다. 자신의 결정을 내게 미루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와닿았기 때문이다. 순간 결정이 어려웠던 나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른이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셋째와 다름없이 행동했던 내 모습도 함께.

나는 어릴 적 무언가를 고민하고 선택한 경험이 많이 없다. 가정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내가 입을 옷을 직접 고르고 사본 경험이 적다. 대학도 점수에 맞춰 수시모집으로 수월하게 간 터라 적성과 진로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경험도 없다. 하지만 정작 이런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되었다.

어느새 어른이 되고 나자 나도 인식하지 못한 내 안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결핍들이 마치 맛집에 끝없이 줄지어 있는 인파들처럼 내 인생에 끝없는 문제 상황으로 다가왔다. 성인이 되고 나니 결정을 할 기회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없이 많았다.

하다못해 직장에서 입을 옷을 사기 위해 백화점을 가도 어떤 옷을 사야 할지 몰라 다리가 아플 정도로 두세 시간을 돌아다녔다. 그러고도 사지 못한 날이 숱했다. 돈을 열심히 모아 해외여행을 가기로 한 때에도 어떤 나라를 가야 할지 몰라 함께 가는 친구의 의견을 우선해서 들어보곤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핸드폰 케이스 하나를 고르는 것도 무엇이 예쁜지 남편의 생각을 묻곤 했다. 내가 마음에 드는 게 아니라 남편이 보기에 내게 어울려 보이는 것을 골라달라고까지 이야기한 나였다.

고민하고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는 기쁨

결정을 하는 것에 있어서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 있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는 책임이 따른다. 만족할 만한 결정을 하든 불만족스러운 결정을 하든 이후의 결과는 오로지 결정한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타인에게 선택의 기회를 미루고 마는 유아적 어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 아이 중 가장 진지하게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장난감을 고민했지만 결국에는 내 생각을 묻고 마는 그 아들의 모습이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고민하는 그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끝내 아이가 한 개의 장난감을 고르길 기다렸다. "OO이가 좋아하는 빠방이는 뭐지?", "집에 어떤 빠방이를 가져가고 싶어?" 아이가 자신을 돌아보고 진짜 좋아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도록 자세를 낮추어 아이와 눈을 맞추며 가며 함께 고민했다. 결국 아이는 대여섯 개의 장난감을 집었다 내려놓았다를 반복하다 덤프트럭과 트럭 믹서 2개로 자신의 선물을 결정했다.

집으로 돌아와 세 아이는 각자 자기가 고른 선물을 뜯어서 신나게 논다. 부모로서 어린이날을 기념해 아이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에도 작은 감동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내 마음이 뿌듯했던 건 아이들에게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기회'를 줬다는 점이다.

수많은 장난감들 사이에서 내가 필요하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그리고 함께 할 때 기분이 좋아지는 장난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선택할 시간을 주었다는 점이 가장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앞으로도 아이들에게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가장 만족스러운 결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깨닫게 하고 싶다. 내가 우동이 먹고 싶은 건지 짜장면이 먹고 싶은 건지 피자가 먹고 싶은 건지 자신의 니즈를 정확하게 알고 현명하게 판단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길 원한다.

때로 만족스러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또한 인생 경험의 일부가 될 것이며 배움으로 남을 것이다. 다음에는 더 나은 결정을 해야지라고 다짐하며 지난날의 아쉬움이 남는 결정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훌훌 털고 그 자리를 일어설 수 있는 지혜로운 아이가 되길 바란다. 이전의 나처럼 스스로를 위한 결정에 오랜 시간 주저하고 어려움을 겪으며 나의 결정을 타인에게 미루는 연약함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다.

어쩌면 실패한 결정이라 할지라도 괜찮다. 또한 결정하는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려도 된다. 다만 내가 선택한 결과를 시간을 두고 스스로가 오롯이 받아들이는 그 경험들이 아이들의 성장에는 큰 자양분이 되리라고 믿을 뿐이다.

세상의 어린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할 때 기쁜지 선택의 기로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지닌 삶을 살길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흔쾌히 제공해 주는 멋진 어른들이 많은 세상도 더불어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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