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몸의 기둥
어느 날 아침이었다. 주민회관에서 요가수업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는데 갑자기 배가 아팠다. 나는 화장실로 뛰어가 급히 서두르다 변기 앞에서 미끄러졌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허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침 한번 맞으면 좋아지리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한의원을 찾았으나 통증은 하룻밤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물 한 컵을 마시려 해도 두 팔꿈치로 엎드려 기어야만 했다. 순식간에 장애인 신세가 된 것이다. 직원을 통해 내 사정을 들은 친구는 자초지종을 듣고 나더니 당장에 S 병원으로 날 데려갔다. 담당 의사는 CT 검사 후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간 건 아니고 충격으로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 약 처방을 해주었다.
1주 후의 재진 날짜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힘들어 이번엔 A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신경주사를 맞고 왔으나 통증은 여전했다. 고객들의 예약 문의가 잇달아 들어오는 데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사 날짜까지 잡혀있었다. 겉은 멀쩡한데 꼭 꾀병이나 엄살을 떠는 것 같아 주변 분들에게 민망하기까지 했다. 해외 출장길에서 돌아온 아들은 측은한 듯 나를 바라보더니 뼈를 다친 것 참기 어려운 고통이라고 진통제도 순간뿐이라며 내 아픔을 위로했다. 아들은 지난해 중국 공연 중 어깨 골절을 입어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반드시 정밀검사결과에 따라 치료를 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아들이 검사예약을 다시 했다. 며칠 뒤 미국 교포 친구가 내 업소를 찾아와 다치자마자 섬세한 검사부터 하는 것 최우선이라고 아들과 동일한 말을 했다. 고마운 친구는 예약된 병원 날짜에 동행 하고 MRI 비용까지 지불해주었다. 검사결과는 척추 4~5번이 신경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뒤늦게 허리 다쳤다는 내 소식을 들은 며느리도 촬영이 마무리되자마자 달려왔다. 이런 어려운 일에 자식들에게 연락 안 하시면 어떡하느냐고 섭섭하다고 했다. 최고의 명의라는 압구정 K 척추 병원에서 치료받는 내내 함께 해 주었다.
도수 치료와 신경주사도 다시 맞았다. 나름대로 운동을 충분히 해 왔다고 믿었으나 허리 근육이 튼튼하지 못했다. 또 평소에 무거운 것을 많이 들고 다녔던 것도 큰 이유였으리라. 물리치료가 끝난 어느 날 담당 의사는 모니터 앞에서 등뼈를 차근차근 짚어가며 뼈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해 주었다.
“허리를 잘 타고 났습니다.” 라는 칭찬과 함께 관리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는 것도 섬세하게 말해 주었다, 그는 호기심에 찬 내 눈빛을 보더니 “이렇게 다친 것은 아주 경한 사고입니다.”나이가 들어갈수록 소모되어가는 우리 몸의 요구 사항을 잘 느껴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
척추의 세계 그것은 이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답고 웅장한 성의 계단이었다. 잘 다듬어진 상아 조각품 같은 서른세 계단의 등뼈를 오르내리며 신비한 세계를 감상하였다.
일곱 개의 경추, 열두 개의 흉추, 다섯 개의 요추, 천추 골반, 네 개의 미골 등, 잘 쌓아 올려진 아치성벽이다. 목뼈의 볼록한 유연성과 허리의 선 마디마디 추간판과 그사이 부드러운 물렁뼈가 연결되어 떠받치고 있다.
마치 벽돌을 쌓아 올릴 때 사이사이에 시멘트를 매지를 삽입한 것 같았다. 수액과 섬유질의 띠로 부드러운 곡선을 유지해주는 허리뼈는 내가 걷고 뛰고 넘어져도 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도록 유연하게 나를 버텨준 것이다.
육십 년이 지나도록 나를 지탱해온 내 몸의 기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얼마나 지치고 피곤했는지, 또 이들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저들이 합심해서 내 몸속의 기둥이 되어 나를 참아주고 지탱해 주었다는 것이 진정으로 고마웠다. “긴 세월 얼마나 혹사했는가!” 지난날 30대에 33킬로의 몸무게로 생존의 위기를 당하기도 했었다. 그때도 몸에 과부하가 걸려 여러 번 크고 작은 신호가 왔었지만, 아직 젊음이 있다는 오만 때문에 전반적으로 몸의 균형이 흔들리는 것을 방심하고 지냈다. 결국, 생명이 촌각에 달렸을 때, 그때도 톡톡한 수업료를 지불했었다. 그때도 명의를 만났다. 그분이 내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숨을 몰아쉬며 미용인입니다 라고 했더니 “아! 천직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일평생 허리를 쭉 펴고 서서 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용량이 넘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몸이 행복해야 하는 것을 자주 잊고 살았다. 우선순위를 망각하고 살아온 것이다. 눈앞에 놓인 일을 지나치지 못하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길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단순하지 못한 내 단점이 습관성이 된 것이리라. 매사에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지나친 책임의식 그것은 또한 지나친 욕심이었다. 마치 살던 집에서 홍수를 만나 비가 새야만 집수리를 하듯,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수업료를 내야 했다. 완치가 어렵다는데 차라리 수술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하는 이도 있었다. 어느 날이다. 택시 뒤편에 누워서 신음하는 나에게 명암 한 장을 찾아주면서 뼈를 다쳤으면 여길 꼭 찾아 가라 했다.
7년 전 5월 8일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누군가 날 위하여 기도했을 것이다. 그 고마운 아저씨의 안내를 받았다. 그날 시작한 치료방법은 특이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치료방법 중에 내 등뼈가 가장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장침을 20회 가까이 맞았다. 신경 압박 부분을 열어주어 극한 통증을 막아주고 하루 약 두 시간씩 걸어서 뼈 주위에 근육이 채워질 때까지 인내하라고 하였다.
완치라는 것은 걷고 뛰어도 전혀 아프지 않은 것을 말한다는 확신과 믿음을 안겨주었다. 스트레칭과 주 3회 아쿠아를 병행하며 날마다 나를 길들이고 있었다. 일상생활은 여전히 불편하고 오래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 영화 관람도 거북했지만 매일 두 시간씩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렇게 소중한 체험을 통해 몸의 기둥이 되는 뼈의 통증으로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가장 단순하고 초자연적인 치료방법을 안내해 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
21세기에 사는 우리에게는 꿈에 나타난 천사보다 사람 천사를 만나야 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리 주변을 맴돈다. 우리는 그 천사들을 자주 만나야 한다. 우리의 마음가짐에 따라 언제나 어느 모퉁이에서나 만날 수 있다. 사람 천사를 만나 교제하며 누리는 삶은 확실한 믿음 안에서만 존재한다.
어제 M 여성병원에서 4개월 만에 골다공증 금식 검사를 했다. 지난번보다 수치가 훨씬 더 좋아졌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기적이라고 말한다면서 격려까지 해주었다. “사고 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입니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 환자를 만난 것이 저에게도 행운입니다.” 참으로 감사했다. 환자에게 칭찬을 해주시다니…. 뛸 듯이 기뻤다.
이젠 매일 아침저녁 걷는 것을 습관으로 길들여가고 있다. 통증이 휘몰던 두려웠던 기억이 완전히 다 지워지지 않게 일부분은 내 마음에 담아놓으려 한다. 그날들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기 위한 마음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아침이면 식탁에서 조상들이 먹고 지냈던 그 맛없는 빵을 떼며 개척자 정신을 이어간다고, 나 또한 힘들었던 시간을 떠 올리며 허리 때문에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더 많았음을 감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몸속에 신비한 호 신경 기둥이 나를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다. 톡톡한 값을 치르고서야 얻은 이 감동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려고 오늘도 희망을 담고 걷는다.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시 139:13, 14)
<물처럼>
나뭇잎이 물 위에 떠
있습니다 고요하고 부드러운
물의 결 탁류와 오물도 감싸
안고 도랑과 개울과 대양을
지나 부딪히고 깨어지고
몸부림치며 하늘을 열어
무지개 펼치고
가다가 고이면 웅덩이가 되는
물 낮은 데로 고개 숙이는 물
흔적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 물
흐르다 산 위의 안개로
아지랑이로 먹구름으로
흐르다 다시 물이 되어
웅덩이로 돌아오는 천성
나도 그 뒤를 따르고 싶습니다
◇김국애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계간 현대수필 운영이사, 수필집 ‘길을 묻는 사람’ 저자. 이메일 gukae8589@daum.net
정리=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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