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타인의 트렌드보다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라

서믿음 2023. 5. 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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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카피 선보이며
제일기획 첫 여성 부사장 올라
현재 7년째 최인아 책방 대표
진정한 브랜딩의 의미는
실체를 바탕으로 인식을 만드는 것
남 도움 되도록 쓰이는 것이 동력
날 위해 일할 때 개인·조직 함께 성장
책방 성장동력은 '차별화'

‘최인아 책방’의 최인아 대표는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여성 최초로 부사장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커리어우먼의 존재가 흐릿했던 시절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란 카피로 여성을 향한 편결에 균열을 가했고, 2002년 월드컵 때는 히딩크 당시 대표팀 감독을 모델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란 카피를 선보이며 4강 신화에 일조했다. 2012년 29년 광고 생활을 뒤로 하고 퇴직할 때까지 그는 수많은 ‘최초’의 기록으로 업계와 사회에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쯤 되면 천생연분 광고인이라 할 법하지만, 광고와의 인연은 사랑 없는 ‘중매결혼’과 같았다. 여성에게 척박했던 1980년대에 ‘여자도 뽑는다’는 회사에 무작정 지원해 "운 좋게" 자리 잡은 곳이 광고회사였을 뿐이다. ‘카피라이터’란 생소한 외피를 두르고 시작한 결혼(직장) 생활은 부침의 연속이었다. ‘여성’이란 편견 어린 시선과도 싸워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내 이름 석 자가 브랜드’라는 마음으로 퍼스널 브랜딩에 몰두했고, 결국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수십 년을 공들인 브랜딩은 퇴직 후 책방을 운영하는 데도 유효했다. 2016년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선보인 ‘최인아 책방’은 책이 주목받지 않는 시대 속에서 7년을 견뎌냈다. 색다른 도서 배치로 선택 피로를 줄였고, 책 속에 편지를 담아 독자에게 정성을 마주하는 기쁨을 선사했다. 이처럼 오프라인 동네 서점만이 할 수 있는 최초의 시도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최인아 대표가 성장을 위해 일을 대하는 자신의 관점과 태도를 담은 책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해냄)’를 펴냈다. 그를 지난 2일 최인아 책방 선릉점에서 마주했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를 출간한 최인아 책방 최인아 대표.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책 제목이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이다. 책을 관통하는 주장이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본인은 세상이 원하는 어떤 가치를 가졌다고 생각하나.

▲안쪽을 보는 힘이다. 우리는 모두 하루하루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해결책이 될 만한 인사이트를 발견해야 한다. 문제의 겉은 눈이 있는 누구나가 보지만, 핵심을 보려면 안을 꿰뚫어야 한다. 널리 통용되는 통념은 강하지만 의외로 허술하다. 정색하고 달려들어 ‘왜’라고 질문하기 시작하면 껍질에 가려졌던 본질이 드러난다. 거기서부터 아이디어가 출발할 때가 많은데, 제겐 그걸 보는 역량이 있는 것 같다.

-누구나 저마다의 역량을 지니지만 모든 역량이 화려하지만은 않은데….

▲책 제목인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앞에 생략된 부분이 있는데, 그건 ‘무조건 세상에 맞추지 말고’이다. 이건 20년 넘은 제 지론이다. (역량이 어떠하든) 본인이 가진 걸 가지고 승부해야지 무조건 시류를 좇아서는 안 된다. 해마다 연말이면 내년도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이 쏟아진다. 알아야 하고, 필요한 내용이지만 먼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는 균형이 필요하다. 대개는 그런 노력에 상당히 소극적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다움’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돈 잘 버는 길’로 획일화하는 모습도 엿보인다.

▲물에 들어가면 수압을 느끼듯, 사회 속에서도 느껴지는 압력이 있다. 집단주의적 문화가 세면 셀수록 압력도 센데, 우리나라는 집단주의적 문화가 지배적이다. 10명이 각기 다른 길로 간다면 부담이 없겠지만, 9명이 같은 길로 가고 1명만 다른 길로 간다면 당연히 눈치를 보게 된다.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만 나를 안다는 것, 나만의 길을 찾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나를 들여다봐야 하나.

▲일상에 집중해야 한다. 드라마를 본다고 하면 ‘저 배우 연기 잘하네’가 아니라 내가 어떤 부분에서 어떤 이유로 재밌다고 느끼는지, 오늘 하루 기분이 좋았다면 왜 그러한지, 본인의 기쁨을 느끼는 포인트는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평가로 끝내지 말고 의식될 때마다 계속 자신에게 돌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럴 때 나는 왜 기쁜가, 저럴 때 양보되지 않는 이유는 뭔가. 이런 걸 계속 자신에게 묻다 보면 결국은 찾아진다.

-‘내 이름 석 자가 브랜드다’라고 했다. 좋은 브랜딩이란 무엇인가.

▲요즈음 인정받기 위해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걸 업으로 삼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흔히 ‘좋아 보이게 하는 것’을 브랜딩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80점짜리를 90점처럼 보이게 하는 게 좋은 브랜딩이란 인식이 농후하다. 진정한 브랜딩은 실체를 바탕으로 인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실체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사랑 받는 브랜드가 되려면 ‘그래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래야’ 한다.

-무엇에서 기쁨을 느끼나. 최인아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한때는 맡은 일을 잘 하는 거였다. ‘저 사람하고 하면 일이 돼’ 그게 제 자존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근데 언제인가부터 ‘못했어’보다 ‘성의 없다’는 지적이 훨씬 더 아프게 느껴지더라. 그때부터 성의 없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남에게 도움이 되도록 쓰이는 것도 동력이다. 내 도움으로 결과가 좋게 나오고, 상대가 웃을 때 그게 그렇게 기쁘더라. 이건 나를 갈아 넣고 희생하는 이타(利他)와는 다르다. 나도 함께 좋자고 하는 거다.

-최인아라는 브랜드는 어떤 위치에 놓여 있나.

▲누군가는 저를 삼성그룹의 첫 여성 임원이라고들 하는데, 그 이전에 그런 기회를 얻을 만한 무엇이 제게 있었다. 20년 훨씬 이전부터 전 ‘내 이름이 브랜드’라는 걸 인지하고 클라이언트나 소속 조직이 당면한 복잡한 문제의 해법을 찾는 데 집중했다. 이건 장기전이다. 시간이란 엑스축, 성과란 와이축에 우상향 그래프를 그려내야 한다. 100세 시대에는 개인에게도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이유가 필요하다. 나란 브랜드로 어떤 가치를 내놓을지 답을 찾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회사를 위해 일하지 말고 나를 위해 일하라’고도 했다.

▲직장인이든 프리랜서든 돈을 벌기 위해 억지로 일하기보다 나를 위해 일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건 이기적인 것과는 다르다. ‘돈 받았으니 회사 일을 해주자’가 아니라 ‘나를 위한 내 일’을 하는 거다. 물론 회사에 좋은 선배나 어른이 없어 좋은 경험을 얻지 못했을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내 일’에 임하는 태도가 유익할 때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한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를 출간한 최인아 책방 최인아 대표.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태도 관점에서 기존에는 업무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협업 능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게 통념이었으나, 요즈음은 천재 한 명이 범재 1000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도 있다.

▲사람을 다양하게 쓸 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평가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관리 책임자에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원칙을 정해서 일괄 적용하는 거다. 그래야 뒷말이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스티브 잡스가 그런 환경에 놓였다고 한다면 과연 성과를 낼 수 있겠나.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자꾸 숫자 뒤에 숨으려고 하는데 그건 객관의 오류다. 객관식 문제 채점이 아니라 주관식 리포트 검사라고 생각하고 점수를 줘야 한다. 그리고 반발이 있을 때 욕먹을 각오 하고, 명확한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내가 지금까지 현업에 있었다면 블라인드에서 욕 많이 먹었을 거다.(웃음)

-차가운 선배였지만, 울 때는 모두 최인아 앞이었다는 후배들의 고백이 있었다.

▲전무였을 때 200명, 부사장이었을 때 400명을 관리했다. 그때 가장 중시했던 건 직원들이 제 방문을 열고 들어오게 하는 거였다. 제가 당사자보다 정보도 많고 영향력도 크기에 초기에 찾아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았다. 근데 혼자 끙끙대다가 문제가 커져 퇴사하기 전에 인사하러 오면 너무 가슴 아팠다. 직원들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당신에게 그 일을 해주기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이란 인식을 심는 것이었다. 결과가 나쁠지라도 진심으로 듣고, 같이 해결책을 찾았다. 선택과 결정에 비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뜻밖에 굉장히 내 말을 열심히 들어주네’ ‘진심으로 내 말을 듣고 함께 고민하려 애쓰는구나’란 진심이 통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전문가를 어떻게 정의하나.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직장인이나 프리랜서나 동일하다. 일이란 문제 해결이고 전문가는 그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제일기획 퇴직 후 책방을 열어 7년을 이어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책방이 도산하는 시기에 책방 전문가로서의 비결이 궁금하다.

▲오프라인 책방을 내고 줄곧 자신에게 ‘어떻게 생존할 수 있나’를 질문했다. 디지털 시대에 오프라인 책방이 지닌 가치를 고민했고 그 답은 차별화였다. 온라인과 차이를 두기 위해 책에 저자 사인을 넣고, 편지를 끼워 넣었다. 도서관식 책 분류 대신 테마별로 배치하고, 저자 북토크를 열었다. 30년가량 제일기획에서 경험하고 훈련한 모든 걸 서점에 쏟아붓고 있다. 기획의 중요성은 책방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서점 공간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콘텐츠다. 하드웨어라면 한 번의 경험으로 족하지만 콘텐츠라면 가야 할 이유가 계속 업데이트된다. 서점으로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다.

-수익은 성장 궤도를 그리고 있나.

▲코로나19 이전에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꽤 괜찮았는데 코로나19 시기에 매출이 60% 이하로 떨어졌다. 만 7년을 통틀었을 때 약간 흑자 수준이다.

-제일기획을 퇴직하면서 페이스북에 ‘자유, 안식, 평화를 누리겠다’고 적었는데, 목표를 이뤘나.

▲지속적이진 않고 순간적으로 누리고 있다.(웃음) 고생해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도 10분 남짓 있다가 내려오는 것처럼, 세상사 이치가 다 그런 것 같다. 은퇴하면 다를 수 있겠지만, 서점은 ‘최인아 책방’이 통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할 예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글을 좀 더 적극적으로 쓸 예정이다. 그간에는 청탁받은 원고만 썼는데, 생각을 적어내지 않고 자연 발화시킨 게 후회되더라. 생각을 꺼내 집필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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