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녀 부부의 5월은 뭐가 다를까

이정은 2023. 5. 4.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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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을 거둬내면 보이는 것들... 부부만으로도 충분한 가정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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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

가정의 달 5월이 시작되면서 뉴스에서는 연일 나들이 물가에 대한 기사가 나오고 있다. 아이들 선물부터 놀이공원 비용, 외식 물가, 부모님의 용돈에 이르기까지 뉴스 속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에게서 가정의 달 5월을 기대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았다. 오히려 근심이 가득했다. 가정의 달이 아니라 걱정의 달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허전해도 돈 쓸 일 없어 좋겠다는 말
 
 일정으로 가득 차게 될 5월의 다이어리
ⓒ 이정은
 
얼마 전 초등학생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지인과의 통화에서도 한숨이 가득 흘러 나왔다. 그이는 말이 좋아 가정의 달이지 사실은 지갑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달이 바로 5월이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5월은 아이들이 '우리들 세상'이라고 노래하는 어린이날이 있고, 푸른 하늘과 바다보다도 높고 깊은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어버이날이 있으며, 참되고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의 날까지 있는 달이 아닌가. 나아가 부부의 날도 있기는 하지만 자녀와 부모님과 아이들의 선생님들까지 챙기다 보면 정작 나의 배우자나 스승을 챙기는 일은 늘 뒷전이 된다고 했다.

분명 가정의 달이지만 그 속에 나는 없는 것 같고 생각만 해도 부담스러운 마음에 한숨부터 나오니 이게 정말 가정의 달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통화 말미에 내게는 아이가 없으니 어린이날을 챙기지 않아도 되고, 더불어 스승의 날도 챙기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겠냐며 '허전해도 돈 쓸 일 없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이 지인은 굉장히 가볍게 던진 말이지만, 그 속엔 사실 대한민국 안에서 무자녀 부부를 바라보는 선입견이 내포되어 있다. 무자녀 부부. 흔히 말하는 딩크(Double Incom No Kids 또는 싱크 Single Incom No Kids)로 사는 이들에게 갖는 선입견 중 하나가 바로 돈 쓸 일 없으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 없이 부부 둘이 살면 외로울 것이라는 생각도.

이따금 아이가 없는 부부에게는 부모님의 환갑이나 칠순, 조카들의 대학 입학이나 결혼을 앞두었을 때 등 가족 행사에서 지출을 조금 더 하기를 바라는 말을 듣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이건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다고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적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부담이 덜 할 수야 있겠지만 사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아이가 없어도, 혼자 살아도 생활에 들어가는 비용은 다 각자의 삶에 맞게 맞춰져 있는 것인데 말이다.

내리사랑은 없어도 충분한 5월
 
 부부는 연인이자 가장 좋은 친구이다.
ⓒ Unsplash
 
무자녀 부부의 가정의 달은 외로울까. 나는 그걸 외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이날을 어른이날로 삼아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하기도 하고 하고, 어버이날을 앞두고는 연휴를 이용해 부모님과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오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무자녀로 살아가는 이들이 소통하는 커뮤니티에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혹여 불편한 점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서로에게 집중하고 부모님께 더 깊은 애정을 표현할 수 있으니 좋다는 반응이었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하거나 수행해내야만 하는 퀘스트 같은 부담이 덜하니 가정의 달을 가정의 달답게, 긍정적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내리사랑은 없어도 나와 배우자를 향한 수평적인 사랑 그리고 부모님을 향한 치사랑이 가득하달까.

그렇다면 이번 나의 5월은 어떤가. 시어머니는 친목회 분들과 3박 4일 여행을 가신다 하여 1일 근로자의 날에 먼저 만나 시아버지를 모신 곳에 다녀왔다. 그리고 이번 주말 중 하루는 부모님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친정에 다녀올 계획이다. 연휴 중 남은 이틀은 온전히 우리 부부를 위한 시간으로 보내야지. 맛있는 걸 먹으러 가기도, 동네 뒷산에 다녀오기도, 또는 그냥 집에서 쉬기도 하면서.

내 경우 오랜 시간 노력하다 결국은 무자녀의 삶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등 떠밀리듯 무자녀의 삶을 살게 된 처음에는 나 스스로가 위축되어 있었으나 막상 발을 디디고 살아가다 보니 무자녀라고 해서 삶의 모습이 다른 것은 없었다. 선입견을 거둬내니 그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디테일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 사는 건 큰 틀에선 다 비슷하지 않겠나.

우리는 그저 아이가 없을 뿐이다. 물론 아이를 통해 얻는 즐거움을 경험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아이가 없어서 무책임하고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 없이 온전히 부부로 이어진 사이라서 오히려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부부간의 정서적 연대가 더욱 굳건해짐을 느낀다. 그 결과 결혼생활 14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가족이자 연인이며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로 살고 있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아이가 있으면 아이가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온전히 행복한 가정의 달 5월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모두의 눈부신 5월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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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정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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