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배우라서' 30년 차 김소연의 부활 성공기
[이준목 기자]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 tvN |
누구나 인생에서 슬럼프를 겪을 때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미워하는 것 같고, 혼자만 외롭게 고립된 느낌에 힘든 순간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견디고 극복하면서 한결 더 성숙해진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
5월 3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생애 뜨거운 만남'편을 통하여 뮤지션 에픽하이, <전국노래자랑>이 배출한 일반인 스타 곽은진-이보미, 배우 김소연이 출연해 힘들었던 시간을 극복해낸 자신만의 비결을 전했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에픽하이는 최근에는 유럽, 북미 등 7개국 36개국 도시에서 월드투어를 마쳤다는 근황을 전했다. 20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 투컷은 "누구 하나 특출나게 잘나가지 않아서"라는 냉철한 자기객관화로 폭소를 자아냈다.
원래 각자 솔로를 준비하던 타블로와 미쓰라는 한 팀이 되었고 DJ로 투컷이 영입되면서 지금의 에픽하이가 탄생했다. 에픽하이는 2001년에 처음 결성되었지만 첫 앨범이나 나오는 데는 무려 2년여가 걸렸다. 사기를 당해 앨범을 완성하고도 비용을 내지 못하고 멤버들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야 했던 힘든 시절도 있었다.
에픽하이는 데뷔 초기에는 음악보다는 개인 방송활동으로 더 주목받았다. 특히 리더인 타블로는 각종 예능과 시트콤, 라디오를 누비며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로 인하여 당시만 해도 편견과 고정관념이 더 심했던 국내 힙합씬으로부터 '가짜 힙합', '연예인'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멤버들간에도 방송활동에 이견이 있었다. 하지만 타블로는 "힙합으로 인정받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다른 방법으로라도 우리 음악을 알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2005년 에픽하이는 'Fly'로 음악 순위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며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최고의 인기그룹 BTS 멤버들도 에픽하이를 보면서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고 고백하며 큰 화제가 됐다. 타블로는 "월드투어를 할 때 BTS의 팬들도 많이 와줬다. 이제는 오히려 그 친구들 때문에 음악을 더 오래하게 될 수도 있다"며 감사를 전했다.
타블로에게 큰 상처 남긴 학력논란
에픽하이의 트레이드 마크는 역시 그 시대 청춘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감성적인 가사이다. 특히 '팬', '러브러브러브' 등이 수록된 4집은 MKMF '올해의 음반상'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음반상' 등을 수상하며 지금도 대한민국 힙합 역사의 명반으로 불리우는 전설이 됐다.
에픽하이에게도 큰 위기가 있었다. 바로 타블로의 학력논란이었다. 2010년 '타진요'라는 한 온라인 모임에서 타블로의 학력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것이 일파만파로 번지며 뉴스에까지 오르내릴 만큼 사회적 이슈가 됐다. 다행히 진실이 밝혀졌고 타블로를 비방했던 누리꾼들은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타진요 카페는 잘못을 사과하고 폐쇄됐다. 하지만 타블로는 긴 시간에 걸쳐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미쓰라는 "비난한 이들은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당한 사람은 계속 삶을 살아가야 하니까. 그런 부분에서 화가 많이 났다"고 동료로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심경을 전했다. 타블로는 "그때는 사회에서 생활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까. 지금도 가끔식 괴로운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안전할까'라는 두려움이 들기도 한다"면서 후유증을 고백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타블로는 당시 "그저 내 가족부터 지킬 생각만 갖고 매일매일을 살았다"고 밝히며 "얼마나 오래 걸려도 다 이겨내서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돼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버텼다. 이렇게 몇 년이나 오래 갈 줄은 몰랐지만"이라고 힘든 시절을 회상했다.
당시 학력논란을 조명한 한 방송사 다큐에 직접 출연하여 타블로가 남긴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것"이라던 어록도 큰 화제가 됐다. 그런데 타블로는 투컷이 짓궂게도 하필 해당 장면에서 울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캡처하여 전화번호와 함께 등록해놓았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폭소를 자아냈다. 투컷은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켜야 진정한 치유"라고 너스레를 떨며 찐친다운 짓궃은 면모를 드러냈다.
타블로는 학력 논란 당시 유재석을 비롯한 지인들이 찾아와 격려하고 웃음을 주었다며 그 때문에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제는 오히려 심적으로 힘들거나 위기에 맞선 친구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위치가 된 타블로는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고 느낄 때 위로가 된다. 그게 어쩌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설명하며 "살면서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그래도 괜찮다"라는 조언을 전했다.
산후조리원 동기로 인연을 맺어 <전국노래자랑>에 함께 출연하며 화제에 오른 일반인 스타 곽은진-이보미씨가 다음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두 사람은 문희옥의 '평행선'을 맛깔나게 소화하며 프로 가수 못지 않은 쇼맨십과 유쾌한 에너지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2020년 불과 5일 차이로 조리원에 입소했던 두 엄마는 당시만 해도 코로나19 시기라 큰 교류가 없었으나, 퇴소 9개월 후 문화센터에서 재회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중학교 때 가수가 꿈이었던 은진씨는 <전국노래자랑>이 동네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보미씨에게 동반 도전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유튜브를 보며 창작댄스와 커플 의상까지 준비했고 연습실을 빌려서 함께 맹연습에 돌입했다. <전국노래자랑>에서 <유퀴즈>까지 모두 같은 의상을 입고 출연했다고. 두 엄마는 500여 팀이 참가한 1차에선부터 16팀이 오르는 본선무대까지 당당히 올라 본상 수상까지 성공했다.
두 사람은 MZ세대 엄마답게 각자의 연애와 결혼 스토리를 이야기하면서도 시종일관 넘치는 흥과 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국노래자랑> 출연 이후 달라진 점에 대하여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계속 죽기살기로 해보고 싶은 마음"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 tvN |
선과 악을 넘나드는 반전 매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명배우 김소연이 마지막 자기님으로 출연했다. 김소연은 대표작 <펜트하우스> 이후 차기작으로 K판타지 액션활극 <구미호뎐 1938>로 복귀를 앞두고 있는 근황을 전했다. 연기할 때의 이미지와는 달리 긴장한 모습의 김소연은 <유퀴즈> 섭외를 받고 나서 예능 출연도 공부처럼 열심히 준비했다는 내용을 고백하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김소연은 15세 때 부모님을 졸라서 연기 학원에 갔다가 2주 만에 PD의 눈에 들어 드라마에서 캐스팅되며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데뷔작인 SBS 학원물 <공룡선생>에서 김소연은 신인이고 데뷔작임에도 비중있는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당시만 해도 소속사나 매니저 시스템이 열악하던 시절이라 학생이었던 김소연은 방송국 스태프 버스를 타고 이동하거나 새벽에 첫차를 타고 귀가하는 등, 모든 일을 혼자 알아서 처리해야 했다.
김소연의 연기인생에는 '최연소'라는 단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김소연은 최연소 주말극 여주인공, 최연소 가요프로그램 MC 등의 기록을 세우며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받은 스포트라이트가 항상 좋았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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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은 20살에 출연했던 <이브의 모든 것>에서 극강의 악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메인 히로인을 능가하는 신드롬을 일으킨다.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48%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김소연은 처음 캐스팅을 제안받고 본인이 먼저 악역을 자원했다고. "처음에는 악역같지 않다고 혼이 많이 났다.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 그랬더니 중반부터는 너무 못되게 나오더라"며 미소를 지었다. 당시 김소연이 연기한 '허영미' 캐릭터는 훗날 <펜트하우스>에서 또다른 역대급 악역 '천서진'을 소화할 수 있는 연기적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이브의 모든 것> 이후 김소연은 한동안 뜻하지 않은 슬럼프에 빠졌다. 김소연은 20대 때 한동안 '연예인병'에 걸렸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전작으로 유명해지고 기회가 들어왔을 때 미니홈피나 패션에 더 신경쓰고 연기에만 집중하지 못했다고.
김소연은 "준비도 안 되고 노력도 안 하면서 '난 왜 캐스팅이 안 되지?'라고 바보같은 생각을 했다"고 돌아보며 "어느날 TV에서 제가 나오는 방송을 봤는데 연기를 너무 못하더라. 예뻐보이려고만 하는 게 느껴지고 제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다시 연기공부를 시작했다"라고 반성했다.
김소연은 "24~25세 쯤부터 성적이 저조해지다가 언제부턴가 아무도 찾지 않은 순간이 왔다. 왜 캐스팅이 안 되지라고 생각하다가 정신차리고 나서는, 연기 잘하는 분들을 장르별로 다 보고 따라해보면서 연습했다. 회사에는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부탁하며 재기를 꿈꿨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슬럼프를 이겨낸 비결을 밝혔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파격 노출' 드레스 패션의 뒷이야기도 언급됐다. 공백기에 촬영한 단편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며 김소연도 레드카펫을 밟게 됐다. 오랜만의 공식석상이라 더 신경써서 준비했던 김소연은 "한번 이슈가 되보자. 김소연이 있다는 걸 다시 보여주자"라고 결심하고 과감한 노출 드레스를 선보였다고. 일각에서는 여배우가 연기보다 선정적인 옷차림으로 시선을 끌려 한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김소연의 잊혀진 존재감을 되살리는 데 기여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김소연은 이후 첩보액션 대작 <아이리스>에 출연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트레이드마크인 긴 생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고난도의 액션연기를 소화해낸 변신은 호평을 받았다. 김소연은 "캐스팅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알겠더라. 정말 열심히 해보자라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김소연은 촬영 중 다리 부상을 당하여 수술까지 받아야 했지만,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운동을 시작할 만큼 남다른 프로의식을 보여줬다.
가족 드라마 <가화만사성>에서는 평생의 인연이 된 배우자 이상우를 만났다. "사람이 너무 선하고 좋더라"고 이상우의 첫 인상을 회상한 김소연은 공교롭게도 극중 함께 연기한 커플의 러브라인 변화와 같은 흐름으로 조금씩 서로에 대한 호감을 키워갔다고 밝혔다.
한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시기에 어느날 이상우가 아침에 술이 얼큰히 취한 채로 전화를 걸어 "요즘 소연씨와 언제 다시 만날지 스케쥴표만 본다"고 고백하며 진심을 전했다. 이미 호감이 있던 김소연은 "내일은 그럼 인사할 때 잘 좀 받아달라"고 귀엽게 화답하는 것으로 못이기는 척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당시 제작진은 두 사람의 연애 감정을 이미 눈치채고 러브라인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하기 바빴다고.
작품을 할 때는 오직 연기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김소연에게 이상우는 "연기자 김소연도 중요하지만 인간 김소연도 소중하게 여겨달라"라고 조언했다고. 이상우는 연기밖에 모르고 살던 김소연을 더 넓은 세상 밖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줬다.
재기에 성공한 김소연은 <펜트하우스>에서 '코리안 조커' 신드롬을 일으킨 천서진 역할로 인생 캐릭터를 만나게 된다. 이 작품으로 김소연은 2021년에는 SBS 연기대상까지 수상한다.
김소연은 "전년도 이미 같은 역할로 최우수상을 받았기에 대상은 예상 못했다. 대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대기석에서부터 눈물이 나오더라"고 회상했다. 김소연은 당시 "28년 전 보조출연자로 연기를 시작했다. 앞으로도 한 신 한 신 더 소중하게 여기는 더 노력하는 배우가 되겠다"는 수상소감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그녀의 노력과 재기를 지켜봐왔던 지인들과 팬들도 모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김소연의 수상 이후 데뷔 때 조감독으로 함께했던 지영수 감독이 SNS에 그녀의 평소 인성을 극찬하며 "대상보다 더 큰 상이 없다는 게 아쉬울 만큼 축하하고 또 축하한다"며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소연 역시 그 글을 읽고 나서 감동에 눈물을 흘렸다고.
어느덧 연기인생 30주년을 맞은 김소연은 "예쁘고 꽃다운 20대에 소중한 기회들을 지나가게 한 것을 처절하게 반성하고 후회했다. 이 신은 돌아오지 않는다. 내일보다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계속 연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김소연은 자신이 생각하는 '톱스타'의 기준으로 "주위를 아우를 수 있는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사람"으로 정의했다. 그럼 본인이 톱스타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김소연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소연은 "제가 뛰어난 재능이 있지는 않다. 그런데 누군가의 연기를 보고 나도 저 장면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잠을 못 잔다. 그럴 때 내가 연기를 좋아하는구나, 정말 사랑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이번 생에는 배우가 됐고,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왔으니 계속 죽기살기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라며 여전히 배우로서의 열정을 드러냈다. 또한 지금의 연기자 김소연이 가능하기까지 그 시작이 된 데뷔 당시 15세 시절의 김소연을 떠올리며 "아무것도 몰랐는데 웃으며 버텨줘서 고맙다"고 힘든 시절을 굳건히 이겨내준 스스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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